이제는 지난해가 된 2006년에 아쉬운 일이 있었다. 한국일보에서 시상하는 국내 최고 권위의 제47회 한국출판문화상 부문별 수상작과 예심 통과 후보작에 이 책이 빠진 것이다.

한국일보에 1986년 견습기자 45기로 입사하여 일간스포츠 문화부, 사회부, 그리고 한국일보 뉴미디어 본부에서 근무하다 2003년 퇴사한 김병훈 기자(1959년생)가 쓴 책이다. 2006년 5월에 출간된 ‘역사를 왜곡하는 한국인- 엉터리 국사교과서를 비판한다’는 342쪽 짜리다.

김 기자보다 20년 연상이요, 견습 기수로 28기나 앞선 선배인 필자가 지난해 11월께 만났더니 “남들이 문필가라고 말한다”며 어설프게 웃었다. 그는 역사에 관한 책을 쓰고도 역사가라 하지 않았다.

옳은 호칭일까. 미국 컬럼비아대학 역사학부 종신교수며 미국역사학자기구, 미국역사학회, 미국역사가협회 회장을 지낸 에릭 포너. 그는 2002년 9·11 사태 전에 ‘누가 역사를 소유하는가- 변하는 세계 속에 과거의 재고찰’이라는 책을 냈다. 그는 이 책의 머리말 끝 부분에서 썼다. “여기에 실린 ‘에세이’(2006년 11월에 번역되어 나온 ‘역사란 무엇인가’의 번역자 박광식 씨는 ‘에세이’를 ‘글’로 번역했다)는 1983~2001년 사이에 쓴 글이지만 어떤 식으로든 한결같이 역사가와 역사가가 살고 있는 세계의 관계를 파고들고 있다”고 썼다.

그는 ‘에세이’를 썼지만 자신을 역사가라고 했지 문필가라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머리말의 마지막 문단에서 역사가든 문필가든 누구나 역사를 쓸 수 있다고 결론 내리고 있다.

“누가 역사를 소유하는가? 역사는 모두의 소유이기도 하고 동시의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 역사 연구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발견해 가는, 결코 끝나지 않는 탐험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에릭 포너는 물론 컬럼비아대학과 영국 옥스포드대학에서 석·박사를 받은, 역사를 전공한 학자다. 김병훈 기자는 연세대 신문방송학과를 나온 학사다.

그러나 포너의 결론처럼 역사는 탐구하는 자의 것이지 역사가들의 것만은 아니다.

이제는 스스로도 역사가라고 하기보다 문필가를 택한 김 기자는 역사 탐구의 이유를 썼다. 신문사에 들어온 지 10여 년이 지난 1998년께 학고재에서 번역되어 나온 시바 료타로(산케이 신문 출신의 저널리스트. ‘료마는 간다’ 소설로 국민작가로 추대) ‘한나라 기행’을 읽고 그는 역사 탐구를 시작했다.

시바 료타로는 썼다.

<1869년 메이지유신 후, 일본 정부는 조선과의 외교 창구이던 부산 왜관에 새 일본제국의 탄생을 알리는 외교관을 파견했다. 조선쪽에서는 일본국 황제 표현 등 과거의 전례를 무시한 국서의 접수를 거부했다.

그런데 당시 조선 관리들은 짧은 머리에 양복을 입고 나타난 일본인에 대해 상당한 반감을 느낀 모양이다. 부산 왜관 문 밖에 장문의 훈령문을 붙이고 조선인의 출입을 금지했는데 ‘그 모양(形)을 바꾸고 속(俗)을 고쳤다. 이는 곧 일본인이라 할 수 없다’며 이런 자들은 상대하지 말라. 일본인과 거래를 금하노라는 내용이었다.>

시바는 “유교의 교양 높은 한성부 고관의 눈에나 부산 변두리 농민의 눈에나 ‘왜놈들, 이제는 풍속까지 고쳤구나!’ 라며, 말할 수 없을 만큼 가증스럽고 경멸스럽게 비쳤을지 모를 일이다”고 지적했다.

김 기자는 ‘왜놈들’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을 탐구하다가 색다른 것(거울)을 찾았다. 1868년보다 1,200여 년 전인 일본 고토쿠 천황 2년(651년)에 일본 서기(720년 완성된 일본 황실의 역사서)에는 부산에서와 정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이해 신라의 사신인 지만 사찬 등은 당나라의 복장을 하고 쓰쿠시(후쿠오카)에 도착하였다. 일본의 조정에서는 신라가 마음대로 그 복제를 개정한 것을 불쾌하게 여겨 꾸짖고 쫓아 돌려보냈다.>

김 기자의 탐구에 의하면 “신라가 장복(章服, 옛날의 공복) 제도를 고친 것은 진덕왕 2년(648)에 김춘추(후에 무열왕)가 당 태종에게 의례를 당나라에 따를 것을 청하자 당 태종이 조서로써 이를 허가하고 아울러 옷과 띠를 주었다. 드디어 돌아와서 시행하여 오랑캐의 복색을 중화의 것으로 바꾸었다.”(삼국사기)

김 기자는 왜 일본이 신라 사신을 쫓아보냈는가의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신라는 당의 권위를 업고 왜 왕권을 당복을 입고와 위협한 것이었다. 그건 단순한 옷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느꼈다. “역사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선가 주워 들은 단편적인 지식으로 한국과 일본의 과거사에 대해 기염을 토했던 일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때 안다고 생각했던 것에 대해 지금도 자신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다.”

김 기자는 결론 내렸다.

<한국 사람들은 엄청나게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가장 큰 왜곡은 모든 잘못은 일본에만 돌릴 뿐 자신들 잘못된 역사에 대해 전혀 반성하지 않고, 전혀 잘못을 고치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다.

반성하려면 과거의 잘못을 교과서에 담음으로써 역사에 대한 반성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드러내고 미래세대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교훈으로 삼는 것이다.”>

김 기자가 말한 ‘역사를 왜곡하는 한국인’을 늘 듣던 소리라고 생각하는 이들과 그를 ‘친일 인물’이라 외치고 싶은 이들은 꼭 이 책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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