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가(政街)가 이런저런 일로 조용하지 않다. 이와 함께 이를 보도하는 언론에서도 ‘금도’란 말을 눈에 띄게 많이 사용한다. 그 예를 몇몇 들어 본다.

(1) 고 전 총리 측은 청와대가 사실을 오도할 경우엔 이를 바로잡는 차원에서 대응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한 측근은 청와대 핵심참모가 “고 전 총리는 사회적 갈등 과제를 결단하지 못한 채 회의만 하면서 시간을 보낸 ‘위원회 총리’였다”고 비판한 것으로 알려진 데 대해 “분명하게 사실과 다르고, 청와대가 금도를 넘어선 것 같다”고 반박했다.

(2) 정부 홍보물이 이런 방식으로 배포된 사실이 알려지자 언론노조는 성명을 통해 ‘금도를 넘은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3) 한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 영역의 최고 권력을 가졌던 대통령이 다시 정치에 뛰어들면 계속 과거의 사람이 등장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지미 카터와 빌 클린턴 등 미국 전직 대통령들도 자기 금도를 지켜 정치 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1)과 (2)는 ‘금도’를 ‘한계’, ‘한도’, ‘정도’로 생각하고 쓴 듯하다. 무엇보다도 ‘금도’를 ‘금지선(禁止線)’, ‘한계선(限界線)’과 비슷한 뜻으로 썼다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3)은 ‘본분’이나 ‘분수’의 뜻으로 쓴 듯하다.

그러나 ‘금도(襟度)’는 위의 그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1)~(3)의 예들이 ‘금도’의 본뜻을 살려내지 못한 것이다. ‘금도’는 “다른 사람을 포용할 만한 도량” 또는 “남을 용납할 만한 도량”이다. “병사들은 장군의 장수다운 배포와 금도에 감격하였다”가 그 전형적인 예다. ‘금(襟)’은 ‘옷깃, 깃, 가슴, 마음’을 뜻하며, ‘도(度)’는 ‘정도나 기량’을 나타낸다. 여기서 말하는 ‘기량(氣量, 器量)’은 ‘기상과 도량’, ‘재능과 도량’을 가리킨다. 다음의 예를 보자.

(4) 국민을 대표하고 나라를 책임진 대통령이 국가 공식 회의석상에서 시정에서도 흔히 듣기 쉽지 않은 속된 막말들을 거침없이 구사하는 것을 국민은 폭력을 당하듯이 보고 들어야 했다. (중략) 국가의 최고지도자에게서 품격과 권위, 상식과 금도를 기대하기를 포기해야 하는 우리는 답답하고 참담하다.

(5) 노무현 대통령의 민주평통 연설과 관련해 군 원로들이 군과 자신들을 모독했다며 발언 취소와 공개사과를 요구했다. 군 원로들이 작전통제권 환수 등 대통령이 추진하는 정책을 죄다 반대한 것을 거칠게 비판한 발언이 한층 거센 반발을 부른 것이다. 시비를 따지기에 앞서 군 통수권자와 군 원로들의 갈등이 헌정 사상 유례없는 극단적 양상으로 치닫는 것은 볼썽사납다. 양쪽 모두 지위와 경륜에 걸맞게 자제와 금도를 보이기를 먼저 당부한다.

(4)와 (5)에 이르러 비로소 ‘금도’가 본뜻에 맞게 제대로 사용된 것을 볼 수 있다. 우리가 ‘금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상황에 맞게 쓰지 못한 까닭이 혹시 “다른 사람을 포용할 만한 도량”을 여간해서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그리하여 ‘금도’의 ‘금’을 ‘금지선’ 정도로 주로 생각하게 된 건 아닐까. 돼지해인 올해, 넉넉한 마음으로 남에게 ‘금도’를 베풀며 조용하고도 푸근한 한 해를 보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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