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아프리카 나이지리아의 대우건설 현장에서 근무 중이던 우리 근로자 아홉 명과 현지인 한 명 등 열 명이 현지 무장단체에 의해 납치됐다고 외교통상부가 10일 밝혔다.

②정부 당국자는 “사건 직후 피랍자 한 명이 휴대전화로 ‘안전하고 부상당한 사람도 없다’는 연락을 해왔지만 현재는 연락이 안 된다”고 말했다.

1월 11일 자 일간 신문의 기사 내용이다. 여기서 ①의 ‘납치된’ 사람이 곧 ②의 ‘피랍자’가 됨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일상에서는 ‘납치’와 ‘피랍’을 혼동하는 예가 보인다.

③과거에도 이들은 외국인들을 피랍했다가 석방했다고 합니다.

④31년 만에 탈북한 납북 어부 최욱일 씨에게 선양(瀋陽) 직원들이 전화받기를 기피하거나, 심지어 “내 휴대전화 번호를 어떻게 알아냈느냐”고 따져 물었다고 한다.

③의 ‘피랍(被拉)했다가’는 ‘납치(拉致)했다가’라야 한다. 끌려간 사람이 남을 석방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④의 ‘납북 어부’는 ‘북한 피랍 어부’라야 맞다. 최 씨가 다른 사람을 납치하여 북으로 끌고 간 어부가 아니라, 오히려 북으로 끌려간 어부이기 때문이다.

‘수용자’라는 말 역시 ‘피수용자’와 구별 없이 쓰인다.

⑤서울시는 4개 시립직업전문학교에서 무료 직업 훈련에 참가할 2007년도 상반기 직업훈련생을 모집한다고 밝혔다. (중략) 국민 기초 생활 수급자, 취업 보호 대상자, 복지시설 수용자, 5·18 민주 유공자 등은 우선 선발된다.

⑤의 ‘수용자’는 ‘수용한 사람일까, 수용된 사람일까. ‘수용(收容)’이란 “범법자, 포로, 난민, 관객, 물품 따위를 일정한 장소나 시설에 모아 넣음”을 뜻하며 ‘수용자(收容者)’란 “그런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어떤 대상을 받아들이는 쪽을 가리키는 말이다. 한편 “수용되는 사람”은 ‘피수용자(被收容者)’라고 해야 마땅하다. 그런 점에서 다음의 ‘도로교통법 시행령’ 제2조 제1항의 제4호의 ‘피수용자’는 그 뜻을 제대로 살렸다.

⑥교도소ㆍ소년교도소ㆍ구치소 및 보호감호소 등의 시설 또는 기관의 자동차 중 도주자의 체포 또는 피수용자ㆍ피관찰자의 호송ㆍ경비를 위하여 사용되는 자동차

‘피랍’, ‘피수용자’의 ‘피(被)’라는 말은 ‘어떤 일을 당함’의 뜻을 보이는 말이다. 어떤 일을 하는 쪽과 그 일을 당하는 쪽이 한 쌍을 이룬 예를 더 들어 보자.

가해자(加害者)/피해자(被害者)

고발인(告發人)/피고발인(被告發人)

고용인(雇用人)/피고용인(被雇傭人) 교육자(敎育者)/피교육자(被敎育者)

보험자(保險者)/피보험자(被保險者) 살인자(殺人者)/피살자(被殺者)

상속인(相續人)/피상속인(被相續人) 선거인(選擧人)/피선거인(被選擧人)

지배자(支配者)/피지배자(被支配者) 후견인(後見人)/피후견인(被後見人)

습격(襲擊)/피습(被襲)

정복(征服)/피정복(被征服)

착취(搾取)/피착취(被搾取)

폭격(爆擊)/피폭(被爆)

납치/피랍, 납북/북한 피랍, 수용/피수용 등을 분명히 구별하자. 이들을 대충대충 흐리멍덩하게 섞어 쓴다면 주객이 바뀌기도 하여 의사소통에 적잖은 혼란이 일어나게 된다. 아무쪼록 피랍 근로자들이 하루속히 가족의 품으로 무사히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김희진 국립국어원 국어진흥부장 hijin@mct.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