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10 민주화 항쟁 이후 7월의 그날. 울산지역의 노동자들은 대투쟁에 나섰다. 민주화 요구와 함께 일터에서 노동 3권과 인간다운 대우를 보장해달라고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그들 덕에 이후 일터마다 노조가 속속 결성됐다. 그때의 노동운동은 순수했다. 턱없이 많은 급여를 요구한 것도 아니요, 자본에 맞서 힘 약한 노동자들이 단결할 수 있게 노조 설립을 승인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꼭 20년이 지난 2007년 1월. 현대자동차 노조는 회사 시무식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성과급 50%를 왜 지급하지 않는냐는 것이었다. 생산직 평균 연봉이 5,500만원. 노조는 막무가내 돈을 더 달라며 파업을 했다. 2003년에 파업 철회를 조건으로 전 노조위원장이 회사측으로부터 현금 2억을 받았다고 검찰이 발표하던 날, 노조는 성과금 투쟁에서 승리했다며 웃으며 파업을 철회했다.

현대차 노조는 과거의 비리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도덕성은 땅에 떨어졌다. 그들의 노동운동은 순수하지 못했다. 이제 현대차 노조는 파업을 밥 먹듯 하면서 ‘배부른 귀족노조’가 되어버렸다.

지난해 1조엔(한화 7조 8,000억원)의 순익을 올린 일본 도요타 자동차의 노조는 올 봄 임금협상 때 1인당 기본급 1,500엔(한화 1만1,700원) 인상을 요구하기로 했다고 한다. 지난해까지 50년 이상 무파업이다. 현대차 노조의 잣대로 보면 ‘바보 같은 노조’로 보였음 직하다. 그러나 도요타자동차 노조는 단순히 임금인상 투쟁을 넘어 일본의 대표기업, ‘일본의 혼’이 담긴 회사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당장의 임금보다는 일본 경제를 위해 세계 최고 자동차회사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것. 무서운 노조다.

그런데 현대차 노조는 어떨까. 한국을 대표하는 노조, 한국의 혼이 담긴 노조라는 인식을 갖고 있을까. 그러나 이번 성과급 파업 투쟁을 보면서 우리는 “아니다” 라고 점수를 매긴다. 오히려 비리혐의를 받고 있는 노조간부들을 비호하고 그들의 개인 경력을 관리하기 위한 노조라는 인상을 받는다. 나만 배부르면 된다는 사리(私利)가 하청업체와 국가 경제의 어려움을 생각하는 대의(大義)를 몰아냈다.

현대차 노조는 이번 파업에서 외견상 승리했다. 그러나 앞으로 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할지 모른다. 이미 도덕성을 잃었고, 국민의 지지를 잃었다. 소비자들은 현대차 불매운동에 나서고 있다. 저런 귀족 노조가 만든 차를 어떻게 믿고 탈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인도, 중국, 러시아, 미국 등 해외 시장에서도 현대차의 신뢰도는 큰 타격을 입었고 점유율도 떨어지고 한다. 노조의 무리한 복지 요구로 감원의 대가를 치르고 있는 GM과 포드자동차의 전철을 현대차 노조가 밟지 말라는 법은 없다.

무엇보다 큰 타격은 현대차 노조 때문에 다른 배고픈, 건실한 노조마저 도매금으로 도덕성에 큰 상처를 입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 노동계의 슬픈 현주소이다. 현대차 노조는 정치투쟁을 버리고 순수했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박원식 차장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