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은 상당히 힘든, 이상한 한 해가 되겠구나 생각했다.”

한국 천주교의 원로 정의채(82) 몬시뇰은 1월 29일 평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 같이 말했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 김한수 기자가 묻자 정 몬시뇰은 설명했다. “지금까지 자유당, 민정당, 민주당 등 수많은 정권을 겪으며 이상한 일도 많이 봤지만 창당 멤버가 탈출하는 사태는 처음이야.

올해는 우리 정치사에서 전례없는 1년이 될 것이라는 뜻에서 ‘이상한 한 해’라고 했다.” 그는 “선(善)지식과 악(惡)지식이 있는데 노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은 악지식, 즉 지나간 공산·사회주의적 좌파 사고에서 유래된 것이다”며 “노 정권의 평화는 패배주의적 평화의 전형이다”고 비판했다.

2000년대 들어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른 <만인보>의 고은(74) 시인은 1월 19일 한겨레신문에 보낸 팩스 인터뷰에서 6·10 민주화 항쟁 20주년을 맞은 2007년 새해를 내다봤다. “(···) 지난 20년(1987-2007)은 시간이 아니라 차라리 역사였고 카오스였다. 한마디로 너무 많은 격동들이 담긴 정치적 포화상태가 된 것이다. 앞으로 20년은 이제까지의 수많은 오류와 가능성들이 귀납되는 시기가 되어야겠다. 그래야 6월 항쟁에 하나의 고유명사를 짓게 되니까.”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지난 4년간의 평가와 민주개혁세력이 그를 떠나려 하는 올해 대선 정국의 흐름을 고은은 평가했다. “(···) 역대 대통령을 스케치한다면 이승만은 조선 태조였고, 박정희는 태종과 비슷하다. 신군부 대통령이라는 것도 국가를 군대조직체로 운영함으로써 절대복종의 장군으로 군림했다.

그러다가 6월 항쟁 이후 문민이니 국민이니 하는 시대의 끝에 노무현이라는 ‘댓글 네티즌의 대통령’을 만난 것이다. 그는 큰 귀를 가지지 않고 큰 입을 가진 사람이다. 그의 개헌 논의는 정치적 상상력에서 발단한 것인가, 즉자적인 현실타파의 도발행위인가를 성찰해야 할 것이다. 자칫하면 정권 말기의 수습정치마저 없애기 십상이다. 당장 국회의 장벽을 뚫기도 문제이다.”

“노 대통령의 민주적 역량 부족은 지적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가 민주주의 대의를 떠났다는 말은 찬성할 수가 없다. 지금 한국에서는 어떤 천하 명군도 정치적 명답을 내놓기 어렵다. 그렇게 우리 사회 각 영역의 유아독존들이 득실거리고 있다. 다만 이전보다 훨씬 투명해진 것은 놀랍다. 노무현의 매일매일은 우리 시대가 야생을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그는 당돌하고 거침없다. 그의 직설들은 누구의 충고도 받지 않는 오기로 보인다. 앞으로 1년이 지나면 우리는 한동안 적막할 것이다.”

정 몬시뇰과 고은 시인이 펼쳐본 노 대통령에 대한 인식은 지난해 12월 28일 번역되어 나온,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 1기 정부 때 백악관 대변인(2001년 1월-2003년 7월)을 지낸 애리 플라이셔의 <대변인-대통령과 언론, 그리고 나의 백악관 시절> 속 부시에 대한 인식과는 사뭇 차이가 있다.

플라이셔는 1960년생. 1939년 미국으로 이민 온 헝가리 출신의 유대인 부모는 뉴욕의 골수 민주당원이었다. 82년 버몬트주에 있는 진보 성향의 미들베리대학을 졸업한 후 공화당원이 된 정치학도인 플라이셔는 99년 부시의 대선 캠프에 오기 전 엘리자베스 돌 상원의원 대변인, 하원 세출위 대변인을 맡았다.

그는 부시 대통령이 2003년 5월 1일 샌디애고항에 귀환하는 ‘애브라함 링컨’ 항공모함에 파이롯트 차림으로 조종석에 앉아 착륙할 때 수행한 것을 끝으로 2년6개월여의 대변인직을 사임했다. 갑판에는 ‘임무 완수’의 깃발이 날렸다.

“대통령 각하, 제가 떠나야 할 시점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지쳤는가.”

“지쳤습니다.”

부시는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플라이셔는 사표가 수리된 2003년 7월 16일, 300번 째인 마지막 백악관 브리핑에서 박수를 받으며 기자들에게 말했다. “내가 감사의 뜻을 표하고자 하는 마지막 대상은 물론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내게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나는 정책 면에서, 인간적인 면에서, 우리나라의 지도자로서, 또 내가 잘 알게 된 사람으로서, 대통령을 존경한다.” 그의 책 곳곳에는 ‘선출된 대통령에 고용된 대변인’으로서 대통령의 인격에 대한 감동, 정책에 대한 신뢰와 함께 ‘언론과 야당과 자유·진보주의자와의 다툼’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런 그의 인식의 근저에는 부시에 대한 인격적 신뢰,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 및 이라크 정책에 대한 지지가 깔려 있다. 그는 또 이렇게 표현했다.

<“부시는 따뜻하고 인자하면서도 대단한 유머 감각을 가진 사람이다.” “나는 결단력 있는 강한 대통령을 대변했다.” “부시는 TV뉴스를 관저에서 보지 않는다. 자신이 뉴스를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대통령의 정책에 믿음이 없는 사람은 백악관 언론비서가 될 수 없다. 믿음이 전사 같은 기자들의 질문을 방어하게 한다.”>

노 대통령, 대선주자들은 애리 플라이셔의 <대변인>을 꼭 읽기를 바란다.


박용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