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4주년을 맞은 2월 25일, 열린우리당을 탈당할 수밖에 없는 심정을 쓰는데 하루를 보냈다.

한국일보에 <손호철 ‘정치논평’>을 쓰는 서강대 정외과 손호철 교수(1953년생)는 2월 25일자 한겨레신문에 ‘노 대통령에 드리는 공개 편지- ‘진보진영’은 틀렸는가?’를 기고했다. 노 대통령의 2월 17일자 국정브리핑에 올린 ‘대한민국 진보 달라져야 합니다’가 나오기 전후 일어난 ‘진보 논쟁’에 대한 느낌을 노 대통령에게 편지보내듯 쓴 것이다.

손 교수는 노 대통령이 쓴 ‘진보 달라져야 합니다’ 글의 첫줄에 나온 “(···) 그런데 학자들의 비판이나 논쟁을 보면서도 역시 ‘학자들도 참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대목에 유의했다.

지난해 6월에 <해방 60년의 한국정치 1945~2005>를 펴냈고 현재는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장인 손 교수는 ‘학자들도 참 좋겠다’는 대목을 해석했다.

노 대통령이 기고문에서 외채망국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의 이론은 현실을 떠난 것이라고 비판한 논지에 대해 그는 반박한 후 썼다. <학문, 특히 비판적 학문의 역할이 그런 것이므로 “이론대로 현실이 나타나지 않았으니 이론을 버리라”거나 “학자들은 좋겠다”고 비아냥거릴 문제는 아닙니다.>

손 교수는 노 대통령이 말한 “학자들도 참 좋겠다”를 비아냥으로 봤다.

지난해 10월부터 멀리 미국 캔사스에 머물고 있는, 노 대통령의 취임사준비원장이었던 지명관 한림대 석좌교수(1924년생. 2005년 11월 17일자 ‘어제와 오늘’ ‘함석헌, 지명관, 아소의 ‘창씨개명’ 참조)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90여 분간 또렷또렷한 목소리로 4년간의 노 대통령의 행적에 대해 말했다.

“임기 중에 자동적으로 잘된 것은 있지만 통치행위로써 잘한 건 없다. 역으로 생각하면 정말 지금까지 4년이지만 국민이 대통령제에 대한 회의를 갖게 됐고, 그게 노 대통령의 최대 공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대통령을 5년이나 모시려고 힘이 들고, 국민은 (대통령이) ‘내일 또 무슨 일을 할지 모른다’고 염려하게 됐다.”

노 대통령의 최대의 업적이라는 ‘탈권위주의’에 대해서도 말했다.

“탈권위주의가 아니라 국민에게 버림을 받은 것이다. 대통령이 좋은 권위를 가져야 하는데, 귄위를 다 탈피해서 국민이 저렇게 깔보는 대통령이 됐다. 국민이 존경하는 사람이 돼야 하는데 국민이 경멸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으니 큰일이다. 그런 관점에서 노 대통령이 대통령제를 파괴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노 대통령 시대를 지나 귄위를 가지면서 국민에게 봉사할 수 있는 겸허한 대통령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노 대통령이) 대통령제에 대한 절망감을 우리에게 줬다”

일본의 <세카이> 잡지에 TK생으로 ‘한국에서 온 편지’를 썼던 전 <사상계>의 주간이자 81세에 <경계를 넘은 여행자>라는 책을 펴낸 지 교수는 ‘진보 논쟁’의 첫 꼭지였던 최장집 교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노 대통령이 ‘참 좋겠다’의 학자로 지목한 최장집 고려대 교수(1943년생. 아세아문제연구소장. 1990년 단재상 수상. ‘어제와 오늘’ 2006년 7월 12일자. ‘노 대통령의 속앓이 푸는 법’ 참조. 2006년 6월 <민주주의 민주화> 펴냄)는 87년 6월 항쟁 20주년을 맞아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좌·우 진영 학자들이 인정하는 진보적 정치학자로서 노 대통령의 4년을 해석했다. “무엇보다 노무현 정부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는 것의 하나는 노 대통령이 정치를 이해하는 방법과 그것이 가져온 부정적 효과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사회의 광범위한 갈등이나 이해관계가 정당에 의해 대표되고 의회가 민의의 대표기구로서 역할을 하는 것은 기본으로 한다.

그런데 당정분리를 내걸고 당과 국회의 역할을 가급적 우회하거나 회피하려 하고, 청와대 중심의 정책 산출, 전문가 중심의 정책 산출, 관료 중심의 정책 산출에 너무 크게 의존했다고 생각한다. 노 대통령의 이러한 정치관이 대연정이나 지금과 같은 헌법개정 추진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 교수의 분석은 2월 17일 ‘학자들도 참 좋겠다’는 노 대통령의 코멘트가 나오기 전에 이미 ‘진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진행 중인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2007년 대선에 나서는 자세에 대한 최 교수의 코멘트는 노 대통령의 진보학자에 대한 개탄을 낳았다.

최 교수는 느낌을 말했다. “지난 4년간 노무현 정부의 정책 내용과 방향이 민주화 세력의 기대에서 많이 벗어났다. 노무현 정부는 ‘민주정부’로서 실패했다.”

<“내용이 없으면서 다시 모여 재집권을 위해 노력하자는 것은 민주주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 정부가 실패하고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면 교체되는 게 당연하다. 한나라당이라고 안 되고 하는 그런 것은 없다.”>

“한나라당이라고 안 되고···” 대목이 논란의 불씨가 됐다.

최 교수는 학자이기에 이런 ‘논쟁’에 대해 글로 표현하겠다며 맞대응을 자제했다. 최 교수는 2월 25일께 나온 계간 <비평> 봄호에 ‘정치적 민주화: 한국 민주주의 무엇이 문제인가?’를 썼다.

최 교수는 지난 20년 간을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로 정리하며 결론내렸다.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최우선 과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정당 체제의 제도화’이다. 다른 하나는 ‘사회경제적 민주화, 노동 및 복지 문제 해결이다. 민주화 이후 등장한 집권 세력이 두 가지 모두를 달성하는 데 실패했다.”

노 대통령은 꼭 이 논문을 읽고, ‘학자들도 참 좋겠다’ 속편을 썼으면 한다.


박용배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