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십수 년 전만 해도 머리 희끗희끗한 원로 교수가 수십 년 된 강의노트를 우려먹는 게 드물지 않은 일이었다. 오래 전에 쓴 자신의 교재를 몇 학기째 학생들에게 권해도 큰 허물이 되지 않았다. 한번 대학 교수는 영원한 대학 교수라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하지만 이제 교수들의 철밥통은 유물일 뿐이다. 재임용 제도, 업적 평가제, 계약제, 연봉제 등 경쟁 본위의 교수 평가제도가 일반화하면서 교수들은 치열한 생존 전선에 서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정년보장 교수는 국립, 공립, 사립대를 합쳐 평균 50%에 그친다. 평균은 그렇지만 열에 한두 명만 정년보장을 해주는 대학도 수두룩하다. 게다가 정년보장을 받기까지는 재임용과 승진 심사라는 외줄타기를 여러 차례 거쳐야 한다.

이러다 보니 교수사회의 경쟁 및 보신 심리가 정도를 벗어나고 있다는 소리도 심심찮게 들린다. 동료 교수가 나쁜 대우를 받으면 화장실에서 웃거나 같은 신세가 되지 않기 위해 재단 눈치를 보며 굽신거린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너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이라는 속 좁은 인식이 교수사회에 적잖이 스며있다는 지적이다. 한정된 파이를 놓고 서로 차지하기 위해 싸워야 하니 그럴 만도 하긴 하다.

하지만 해묵은 시간강사(비정규직 교수) 처우 문제에 이르면 전임 교수들의 ‘나몰라라 행태’가 조금은 비겁해 보인다. 자신들과 비슷한 강의 능력으로 오히려 훨씬 많은 수업 부담을 떠안은 그들이 80만~100만원이라는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월급을 받고 있는데도 애써 모른 체하는 것은 지식인의 모습과 거리가 있는 것이다. 심하게 말하면 기회주의적 태도다.

물론 정부와 사학재단이 시간강사 처우 개선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게 사실이다. 4만~5만명으로 추산되는 수많은 ‘지식 보따리 장사’들에게 합당한 대우를 해주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돈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강사 문제는 하루 빨리 해결해야 할 사회적 과제다. 그들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우리 사회의 비정함을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다음 세대의 학문적 의욕을 꺾어 장차 나라에 암운을 드리울 것은 불보듯 뻔하다. 칼자루를 쥔 정부와 사학재단, 그리고 기득권을 가진 전임 교수들의 배려와 결단이 아쉽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