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다. 두 번씩이나 역사 부문 풀리처상을 받았고, <제왕적 대통령>의 저자이자 미국의 대표적 역사가인 아서 슐레진저 옹이 2월 28일 89세로 세상을 떴다.

그가 마지막 저서가 된,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비판한 <전쟁과 미국 대통령제>에서 그는 87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열망했다.

2000년 미 대선에서 대법원이 선출한 ‘소수파 대통령’ 부시가 이라크 침공의 성공을 내세워 재선을 확실시한 시점에 그는 2008년 대선에 누가 나설 것이며 누가 이길까를 꿈꿨다.

“많은 이들이 이를 예측하는 것은 망상적이다고 하지만 영국의 해롤드 윌슨 수상은 ‘정치에서 일주일은 긴 시간이다’고 했다. 우리가 2000년 대선에서 2004년 (부시) 재선을 생각할 수 있었나. 그러나 재선은 일어났다. 2008년을 전망하는 게 왜 망상인가”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1940년에 3선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이후 3명의 대통령에 대해 누가 예측했겠는가. 미주리주에서 주지사 후보도 되지 못한 트루먼은 45년 4월에 대통령이 되었다. 상원에서 뒷자리에 앉아 있던 의원이었다. 그의 후임자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940년엔 육군 중령이었다. 그의 후임자인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당시 대학생이었다. 2008년 예측을 망상이라 하지 마라. 그건 역사의 불가사의다.”

87세에 <전쟁과…>를 쓰기까지 슐레진저는 28권의 역사책을 썼다. 그중 45년에 쓴 <잭슨(대통령) 시대>, 65년에 쓴 <1,000일-백악관에서의 존 F 케네디>로 풀리처상을 받았다.

보우 타이를 매고 ‘케네디가의 궁정역사가’라는 비난도 받았지만 세계의 역사가들은 자유주의와 진보주의 역사가라고 그를 평가한다.

뉴욕타임스 북 리뷰 편집자인 샘 태넌하우스는 그의 별세를 ‘현재시제로 역사를 쓰는 역사가의 죽음’으로 표현했다. 태넌하우스는 그의 책 중 49년에 쓴 <바이탈 센터(Vital Center, 생생한 중도)를 주요 저작으로 들었다.

슐레진저는 38년 하버드대 역사학부를 최우등으로 나와 2차 세계대전 중 눈이 나빠 미 전략정보처(OSS)에서 분석관으로 일했다. 그는 46~61년 하버드대 교수로 있으면서 <포춘>, <타임>,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편집자, 기고가로 일했다. 그는 48년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바이탈 센터’ 연재를 시작했다.

“20세기 중반에 들어서 우리는 긴장되고, 불확실하고, 동요하고 있다. 걱정과 고뇌의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 문명의 근본, 우리의 확실성이 발 밑에서 무너지고 있다. 우리에게 친밀한 사상, 기구들이 떨어지는 먼지의 그림자처럼 사라지고 있다.”

그는 이런 문명과 사상을 지키려는 방법을 제시했다.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가 새로운 정치동맹을 맺어야 한다. 헌법 질서 속에 정치, 경제 정책의 민주적 결정 속에 시민의 자유정신 함양을 신념으로 삼아야 한다.” 그건 자유와 보수, 좌와 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중도 통합하는 ‘생생한 중도’였다.

슐레진저는 미국의 역사 속에서 ‘중도’의 길을 찾을 수 있었다.

그의 믿음을 꿰뚫은 대통령이 45년 만에 나온 것이다. 47세의 빌 클린턴 대통령은 93년 8월 연설했다.

“우리나라가 진실로 필요한 것은 ‘생생한 중도’다. 원리 원칙과 냉정함으로 변화를 계속하는 것이다.” 그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중도 통합 속에 개혁하는 것이었다.

클린턴은 재선이 되자 97년 11월 부르짖었다. “이제 미국의 ‘생생한 중도’는 살아있고 건강하다고 선언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인들이 ‘생생한 중도’에 투표해준 것이다.”

클린턴은 97년 8월에 4년 전을 되돌아보며 연설했다. “지난 세월 우리는 ‘바이탈 센터’ 정치가 많은 난제를 물리치고 진전되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2000년 그는 백악관을 떠날 무렵 결론내렸다.

“우리는 ‘생생한 중도’를 회복시켰다. 우리는 낡은 이데올로기를 새로운 ‘비전’으로 바꿨다.”

슐레진저는 클린턴이 98년 1월부터 르윈스키 스캔들로 탄핵을 받자 그것을 반대하는 지식인 운동을 벌였다.

그는 2000년 11월 83세에 회고록 <20세기의 한 인생: 순결한 시작 1917-50년’을 내며 가진 인터뷰에서 ‘바이탈 센터’와 클린턴의 정치에 대해 말했다.

“클린턴은 확실히 케네디를 연상시킨다. 그의 빠른 두뇌회전, 문제를 기술적으로 해결하는 지도력, 그리고 강한 지적 호기심 등은 케네디를 닮았다. 그는 투사가 아니다.

그는 자기 절제가 약하다. 그래서 반(半)똑똑이라는 말도 듣는다. 그는 적을 만드는 것을 두려워한다.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나를 판단하려면 내 적을 통해서 해라’고 했다. 클린턴은 지적이고 매력 있지만 적을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

서울에서는 요즘 ‘진보 논쟁’이 한창이다. 반면에 ‘중도’가 어느 쪽으로 향할지에 대한 논의는 실종되었다.

아서 슐레진저가 2008년 미국 대선에 바랐던 것은 이라크에서 보여준 부시의 ‘일방정책’, ‘예방전쟁’, ‘나홀로 대외정책’의 퇴진이었다. 그것을 보지 못하고 별세한 게 아쉽다.

서울의 대선 주자들은, 특히 ‘중도 통합’을 바라는 주자들은 <전쟁과 미국 대통령제>를 꼭 읽어보기를 바란다.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