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함대' 삼성화재 명승부 이끌며 2연패 달성

'무적함대' 삼성화재의 겨울리그 9연패 신화는 막을 내리고 ‘장신군단’ 현대캐피탈의 전성시대가 온 듯하다. 그리고 그런 변화의 중심에는 김호철(52) 현대캐피탈 감독이 서 있다.

김 감독이 이끄는 현대캐피탈이 지난 3월 28일 2006~2007 프로배구 남자부 챔피언결정 3차전에서 삼성화재를 3-2로 꺾으며 3전 전승을 기록, 지난해 통합우승에 이어 2연패를 달성했다. 정규리그 2위로 대한항공과 플레이오프를 2전 전승으로 통과한 뒤 챔프전에서도 세 경기를 내리 빼앗아 포스트시즌에서 5연승을 거둔 완벽한 승리다.

"선수들이 어려움을 참고 힘든 상황에서도 믿고 의지하며 해준 게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감독이 독불장군이 되지 않고 선수들이 스스로 이끌어 가는 팀으로 변해야 합니다"

`코트의 카리스마' 김 감독은 2년 연속 우승컵을 차지한 뒤 소감을 밝히는 자리에서 그간 고된 훈련을 참아내고 따라준 선수들에게 우승의 영광을 돌렸다.

김 감독이 프로배구 현대캐피탈에 둥지를 트기 전까지만 해도 국내 배구는 삼성화재의 일방적인 독주 체제였다.

상대적으로 현대는 전신인 현대자동차써비스가 1995년 슈퍼리그와 실업대제전을 제패한 이후 삼성화재의 벽에 막혀 2인자의 설움을 겪어 왔던 것. 반면 삼성은 신치용 감독의 지휘 아래 ‘월드 스타’ 김세진과 ‘갈색 폭격기’ 신진식 등 화려한 멤버를 앞세워 프로 원년이던 V-리그 우승까지 겨울리그 9연패의 영광을 누려왔다.

그러나 2003년 말 이탈리아 생활을 정리하고 새롭게 지휘봉을 잡은 ‘컴퓨터세터’ 김 감독이 부임하자 현대캐피탈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이탈리아에서 ‘데이터 배구’를 익힌 김 감독은 전문 트레이너인 안드레아 도토의 프로그램에 따른 맞춤형 훈련으로 선수들을 단련시켰다. 또 도메니코 라사로 분석관이 제공하는 전력 자료로 경기력 향상 효과도 봤다.

김 감독의 뛰어난 지도력에 과학 배구를 접목한 현대의 상승세는 놀랍게 나타났다. 프로 출범 첫해였던 2005년 V-리그 정규시즌 1위를 차지했지만 챔프전에서 삼성화재에 발목을 잡혔던 현대는 지난 시즌엔 한 번도 선두 자리를 내주지 않고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무엇보다 예전에는 팀이 ‘모래알 같다’는 말을 들었지만 김 감독 부임후 선수들의 사고방식 달라졌다. 서로를 믿고 코트의 주인공인 선수들이 잘 따라왔다. 김 감독은 “나는 선수들과 같이 있었을 뿐이고 솔선수범해야 따라온다고 생각했다. 내가 거친 소리를 많이 한 건 정감이 있고 선수들이 내 몸 한 조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속내를 털어 놓았다

올해에는 위기도 겪었다. 시즌 초반 2006 도하아시안게임 대표로 참가했던 후인정과 이선규 등 주전 6명의 컨디션 난조로 삼성, 대한항공에 잇따라 발목을 잡혀 출발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아시안게임 우승을 지휘한 ‘미다스의 손’ 김 감독의 예언대로 4라운드부터 위력을 회복했다. 초반 라이벌 삼성에 3연패를 당한 뒤 4라운드부터 챔프 3차전까지 6전 전승을 거두는 등 8연승과 10연승을 달렸다.

김 감독은 만년 2위 현대를 강팀으로 만든 비결에 대해 “삼성을 무너뜨릴 수 있었던 건 정규리그부터 삼성이 변해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봐 왔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특히 올 시즌 우승에 대해서는 “삼성과 똑같은 배구로는 이길 수 없다. 플레이오프에서 쓰지 않았던 허를 찌르는 비책을 썼는데. 속공과 시간차를 섞어가며 변화를 준 게 포인트가 아니었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앞으로 현대가 독주하는가’ 하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올해 출발이 좋지 않았지만 도하 아시안게임 우승 이후 배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졌고, 또한 대한항공이 선전하는 등 각 팀의 전력이 평준화돼 오히려 다행이었다”며 “국내 배구의 인기를 이어가기 위해서라도 현대의 장기 집권 가능성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고 웃으며 장담(?)했다.


박원식 차장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