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고 힘들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지난 3월 26일 탈당 1주일을 맞아 기자들과 간담회에서 그렇게 말했다. 1주일 전 “시베리아를 넘어 툰드라 동토로 가서 새 정치를 만들겠다”는 포부는 기가 꺾였다.

그는 3월 25일자 한국일보에 실린 ‘손호권의 정치평론’ 칼럼 ‘손학규, 불출마 선언하라’를 읽었을까?

또한 그는 탈당 전에, 지난해 10월 16일 발간된 후 뉴욕타임스 북리뷰 베스트셀러 3~5위, 아마존닷컴 40~50위에 23주째 오른 책인 미국 민주당의 유력 대선 주자 배럭 오바마의 <희망의 대담함 (The Audacity of hope)>을 읽었을까?

손호철(1952년생) 서강대 정외과 교수는 1994년에 정외과 교수였던 손학규(1947년생)가 국회의원이 되어 학교를 떠나자 전남대에서 서강대로 옮겨왔다. 손 교수는 손 전지사의 서울대 정치과 후배기도 하다.

손 교수는 한국일보 ‘정치평론’에서 썼다.

“물론 손 전지사가 경선에 패배한 뒤 탈당을 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이인제 의원보다는 나은 편이다. 최소한 반장선거에서 떨어진 뒤 반을 옮긴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반장선거 운동을 열심히 하다가 당선이 불가능하자 전학을 간 것으로, 말이 되지 않긴 마찬가지다.”

“그리고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88년 옥스퍼드대학)를 받고 정치학을 가르친 정치학자 출신은 이 의원과는 달라야 하는 것 아닌가. 탈당설에 대해 ‘내가 벽돌이냐’고 펄펄 뛰더니 결국 ‘손벽돌’이 되고 만 것이다. 안타깝고 그리고 앞으로 학생들에게 민주주의를 어떻게 가르칠지 난감하다.”

손 교수의 “학생들에게 민주주의를…” 대목에는 가슴이 뭉클했다.

이야기가 좀 튄다. 오바마가 쓴 <희망의 대담함>에는 일리노이주의 상원의원이었던 그가 전국 정치무대에 등장하는 2004년 7월 27일, 보스턴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행한 기조연설이 담겨 있다.

“흑인의 아메리카, 백인의 아메리카, 히스패닉의 아메리카 따위를 잊어버립시다. 오직 미 합중국이 있을 뿐입니다.”

“문제는 어떤 다른 정치를 위한 대통령을 뽑는 것이 아니라, 현 대통령이 이제 더 이상 잘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정치를 위한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철학자며 저널리스트며, 소설가며 영화감독인 베르나르 앙리 레비는 월간 <아틀랜틱> 지의 특별기고가로서 알렉시스 도크빌이 173년 전에 쓴 <미국의 민주주의>의 오늘을 취재하며 이 연설을 들었다.

앙리 레비는 오바마와 인터뷰하며 연설의 감동을 <아메리칸 버티고(현기증)>(2006년 12월 번역되어 나옴)에 썼다.

“그의 말 등, 그 모든 것에는 요란한 논쟁들에 익숙한 프랑스인에게 절절한 공감을 자아내는 뭔가가 있었다.”

“그의 태평스런 태도, 그의 뻔뻔스런 유머에는 뭔가 흑인 클린턴 같은 데가 있다. 하버드대학 출신의 반항아가 발산하는 매력…. 그는 캔자스시티 태생의 백인 어머니와 케냐 태생의 흑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달리 말하면 이중의 혼혈이요, 제곱의 혼혈이다. 모든 흑인들에게 일종의 감옥처럼 작용하는 남아프리카-아메리카 정체성을 포함하여, 모든 정체성에 대한 살아있는 방증이라 할수 있다.”

“나는 오바마를 바라본다. 배럭(Barack)이 스와힐리어로 ‘축복받는’일을 의미한다는 어느 신문기사 내용을 다시 생각해본다. 그리고 나는 그가 뭐라고 하든 간에 모든 공동체로부터 어느 정도 떨어진 그 틈 속에 뭔가가 작은 작용을 하고 있음을 느낀다.

어쩌면 그는 이제 죄의식에 호소하길 그만두고 매력을 행사함을 이해한 최초의 흑인이 아닐까. 아메리카에 대한 비난 대신 아메리카의 희망이고자 한 최초의 흑인이 아닐까. 투쟁하는 흑인에서 안심시키고 결집시키는 흑인으로의 변화를 구현하고 있는 인물, 미래의 혼혈 대통령, 언젠가는 힐러리와 함께 티켓을 거머쥐지는 않을까.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이데올로기들의 종말이 시작된 것일까.”

앙리 레비의 예측처럼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이데올로기의 종말’이 왔다. 오바마는 2004년 11월 흑인으로서는 다섯 번째로 43세에 일리노이주의 연방상원의원이 되었다.

그 후 상원의원 재임 1년6개월과 2008년 민주당 대통령후보 지명전 출마를 앞두고 <희망의 대담함>을 썼다. 오바마는 2004년 1월 백악관에 가서 초선 상원의원으로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만났다.

“오바마! 이리 오시오. 로라(부신의 부인) 당신은 선거날 TV에서 그를 봤잖아. 좋은 기록이었어. 부인은 인상적이었지.”

“그날 우리 가족은 실제보다 잘 나왔어요” 오바마는 입가에 묻었을지 모를 음식 부스러기를 손으로 닦고 부시 대통령 부부와 악수했다. 부시는 악수가 끝나자 큰 휴지를 가져오게 해 손을 닦았다.

부시가 그를 옆으로 이끌며 속삭이듯 말했다. “내 충고를 잘 들으시오. 당신의 미래는 밝소. 워싱턴은 험한 곳이오. 당신이 하는 일마다 공격이 따를 것이오. 내 편을 들어 달라는 것은 아니오. 당신의 출발점에서 확실하게 나가시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이 미끄러지기를 바라고 있소. 조심하시오.”

오바마는 경호원들이 불안하게 지켜보는 속에 부시의 어깨에 손을 얹은 채 백악관을 나왔다.

<희망의 담대함>에는 ‘탈당’이니 ‘개혁’이니 ‘진보’니 하는 말들이 없다. 오바마가 미국 독립선언서에서 마음에 새긴 대목은 반복된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 (…) 삶과 자유와 행복추구권은 천부의 권리다”

손학규 전 지사와 2013년 대선을 꿈꾸는 사람들은 오바마의 <희망의 대담함>을 꼭 읽기를 바란다.


박용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