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합의' 이행 위해 다시 동분서주

북핵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를 맡고 있는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의 최근 행보가 분주하다.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에 묶여 있는 북한자금을 동결을 해제한 후 지급 방법을 둘러싸고 난관에 봉착했던 ‘2ㆍ13합의’ 이행 문제를 풀기 위해 북핵 6자회담 파트너들을 오가며 다시 숨가쁜 교섭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부시 행정부는 북핵 문제를 완전히 매듭짓기 위해 전에 없이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어렵사리 이뤄낸 획기적인 2ㆍ13합의 이행이 미처 덜 끝낸 BDA 숙제로 난항하자 조바심을 내는 상황. 북핵 6자회담을 현장에서 주도한 힐 차관보도 덩덩아 몸이 달았다.

힐 차관보는 일본 방문에 이어 13일 오후 3박4일의 방한 일정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중국 베이징으로 날아갔다.

이번 중국 방문에서는 북핵 6자회담 중국 측 수석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 부부장과 만나 BDA 문제 해법을 논의하는 한편 2ㆍ13합의 초기조치 이행 시한(14일)의 연장 가능성에 대한 대책을 마련할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의 회동이 이뤄질 가능성도 조심스레 점쳐진다.

이에 앞서 힐 차관보는 서울에 머무는 동안에도 우리 측 수석대표인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등 정부 관계자들을 두루 만나 2ㆍ13합의 이행 문제와 이행 시한 연장 등에 대해 긴밀히 협의했다.

12일에는 미국의 뉴스전문 채널 CNN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측의 2ㆍ13합의 초기이행 조치를 촉구하는 압박성 발언을 해 당사국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북한이 이틀 정도면 영변 핵시설 폐쇄 초기조치를 하는 게 가능하다. 합의 시한까지 완전 폐쇄는 힘들겠지만 시작이라도 해야 할 것”이라며 북한측을 은근히 회유했다.

북한은 2ㆍ13합의에서 BDA 동결자금 해제를 전제로 4월 14일까지 영변 핵시설을 폐쇄하는 한편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사찰단의 방북 허용을 약속한 바 있다.

미국 정부에서도 힐 차관보의 발언에 맞장구를 쳤다.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은 “2ㆍ13합의는 협정이 아니라 정치적, 외교적 약속”이라며 북한측의 초기조치 이행 시기에 유연성을 시사했다. 이는 미국이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대한 외교적 융통성을 발휘하겠다는 제스처로도 해석된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힐 차관보보다 더 피곤한 일을 하는 외교관은 없을 것이라고 동정한다. 국제사회에서 가장 고립적인 태도를 보이는 동시에 미국 정부의 최우선정책 중 하나인 핵확산 방지에 정면 도전하는 북한을 상대로 협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협상파 힐 차관보의 가치가 더욱 빛난다는 평가도 많다. 누구나 꺼리고 곤란해 하는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내 설득하고 다독여 결국 2ㆍ13합의라는 커다란 결실을 얻어낸 것도 그였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힐 차관보는 종종 자신의 직함을 ‘북한 담당 차관보’로 소개해 주변의 웃음을 자아낸다고 한다. 공식적으로는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이지만 지난 수 년간 북한 문제에만 매달려 왔다. 그 말에는 또한 북한과의 협상에서 자신만한 적임자는 없을 것이라는 자부심도 있을 듯하다.

하지만 그 역시 최근 들어서는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을 터. 북핵 2·13 합의 이행의 첫 관문부터 장애물 투성이인 탓이다. 북한이 또 어떤 무리한 카드를 꺼낼지도 알 수 없다. 산 넘어 산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외교 협상’을 수행하는 힐 차관보.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자세로 뛰는 그의 동분서주는 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