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제(先帝)께서 대업을 창업하여 반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지금 천하는 위·촉·오로 삼분(三分)되었으나 그중에도 이 촉의 익주가 피폐하고 쇠미하여 존망의 중대한 시기에 걸려 있습니다”로 시작되는 출사표(出師表). 이 글에서 “선악을 상 주고 벌 주되 틀림이 없어야 합니다”라고 충언하였다.

제갈량 자신도 군령을 어긴 마속을 눈물을 머금고 목을 베면서(=읍참마속, 泣斬馬謖) 이 원칙을 지켰다. ‘출사표’는 이어진다.

“어진 신하를 가까이하고 소인을 멀리하여 전한(前漢)이 흥성하였으며 소인과 친하고 현신(賢臣)을 멀리하여 후한(後漢)이 몰락하였습니다”로 간하며, 유비의 삼고초려 끝에 조정에 나선 일을 회고한다.

이어 자신이 받은 신임에 한실(漢室) 부흥으로 보은하기 위해 싸움터로 떠나며 임금에게 ‘출사표’를 올린다.

이 ‘출사표’란 말은 지금 어떤 의미로 쓰일까.

(1-1) 올 초 대선 출사표를 던질 때 활용한 방법.

(1-2) 세계 YWCA 회장 선거에 출사표를 낸 박은경 대한YWCA 회장의 당선 가능성.

(1-3) 권영길 출사표 미루고 故 허세욱 씨 장례식...

(1-4) 정 전 총장은 한국이 나아갈 길 전반에 대한 자신의 구상을 제시해 '출사표'를 방불케 했다.

(1)은 ‘출마’와 관련한 의미로 쓰였다. 출사표가 ‘던지다’, ‘내다’와 결합하여 ‘출마하다’(1-1, 2)의 의미로 쓰이고 그 밖에 ‘출마 선언’(1-3), ‘정견 발표’(1-4)의 뜻으로도 쓰였다.

(2-1) 이번 대회에는 101명의 선수들이 첫 ‘메이저 퀸’을 위해 출사표를 던졌다.

(2-2) 박해춘 우리은행장이 취임식에서 “임기 동안 1등 은행을 만들겠다”고 출사표를 냈다.

(2-3) 김호철 감독의 출사표가 간결하다. “작년에 졌으니 이번에는 이겨봐야죠.”

(2-4) 각 팀 감독 ‘6강 플레이오프’ 격돌 출사표.

(2)는 ‘출전’과 관련하여 ‘출전하다’(2-1), ‘도전장’(2-2), ‘출전의 변(辯)’(2-3), '전술·전략'(2-4)의 의미로 쓰였다.

(3-1) 프로야구 8개 구단 사령탑들은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비장한 출사표를 던졌다.

(3-2) 한승수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은 (중략) IOC 위원 개개인의 마음을 사로잡겠다”고 출사표를 밝혔다.

(3-3) 박 대장은 “8,000m 이상 봉우리에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새 길을 열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3)은 심적 상황과 관련하여 ‘결의를 다지다’(3-1), ‘의욕/자심감’을 보이다’, ‘포부를 밝히다’(3-2, 3)로 쓰였다.

(4) 디지털큐브는 7인치 내비게이션 ‘아이스테이션 T7’로 출사표를 던졌다.

(5) STX조선은 기공식을 갖고 글로벌 생산 출사표를 던졌다.

(6) 무크지 <수필실험>은 “치열한 현실 인식과 실험 정신”으로 수필의 미래를 모색하겠다는 출사표다.

(4~6)에서는 ‘출시(出市)하다’(4), ‘~을 선언하다’(5), ‘시금석(6)의 의미로 쓰였다.

제갈량이 ‘출사표’를 쓴 지 1,78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출사표’를 다양한 뜻으로 쓰고 있다. 적잖은 의미 확장이다. 충정 어린 눈물을 흘리며 임금에게 두 손으로 ‘바친’ ‘출사표’가 오늘날 ‘던지다’로 바뀐 것도 놀랍다.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