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보복폭행'… 경찰은 뒷북수사 의혹 자초

‘주먹은 가깝고 법은 멀다’,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된다’는 시정의 말은 재벌 회장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 3월 8일 오전 자신의 둘째아들이 서울 강남의 가라오케에서 북창동 S클럽 종업원들과 시비 끝에 눈 주변을 꿰매는 부상을 당하자 그날 밤 경호원 등을 대거 데리고 직접 ‘보복 폭행’에 나선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지금까지 외화유출 사건 등으로 구속된 전력은 있었지만 이번처럼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폭행 사건에 연루돼 일반인들의 입에 오른내린 경우는 처음이라 자신의 이미지에 큰 상처를 입고 있다.

재벌 총수와 관련된 사건이 늘상 그렇듯 이번 일도 경찰의 내사 정보 보고로만 경찰청 윗선에만 알려진 채 언론에는 한동안 보도되지 못했다.

한화 측이 미리 사건 당사자들인 S클럽 종업원 등을 회유한 때문인지 피해자들이 잠적하거나 입을 굳게 다문 때문이었다. 그러나 숨겨진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는 법. 사건 발생 한 달이 훨씬 지난 후인 4월 25일 언론에 빙산의 일각이 드러나면서 꼬리가 밟혔다. 이후 피해자들의 입을 통해 당일의 전모가 하나둘 밝혀지고 있다.

김 회장은 경찰 소환에 응하지 않다가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여론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결국 4월 29일 출두하여 밤늦도록 조사를 받았다. 대질신문까지 받아야 하는 수모도 당했다.

사실 재벌 총수가 폭행 사건에 직접 연루돼 경찰의 조사를 받은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그 때문에 한화그룹은 곤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하다. 지난해 말 그룹CI를 교체하는 등 이미지를 쇄신해 공격적인 글로벌 경영에 나서려는 시기에 불미스러운 사건이 터진 것이다.

한화그룹은 일단 김 회장이 소환되던 날 ‘김승연 회장의 인간적인 면모’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김 회장이 세 아들을 모두 유학 보낸 뒤 자식들이 보고 싶어 매일 전화를 했다”면서 이번 사건이 김 회장의 아버지로서의 각별한 정(情) 때문에 발생했음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와 함께 물의를 빚은 김 회장 부자(父子)는 청계산 납치·감금 및 폭행 현장에 가지 않았다고 극구 부인하고 있다. 만약 김 회장이 납치·폭행에 가담한 것이 드러나면 구속은 물론 형량이 가중될 것을 의식한 방어책이다.

경찰도 아직까지는 뚜렷한 물증을 찾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보복 폭행 사건의 빙산은 제 모습을 다 드러내지 않았다. 맞은 자와 병원진단서는 있는데 때린 자가 없는 기이한 사건이 된 셈이다.

여기엔 경찰의 책임도 있다. 재벌에 약한 경찰 수사의 나약함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뒷북 수사에다 허술한 압수수색 등은 봐주기 수사가 아니냐는 세간의 의혹을 자초하기에 충분했다. 앞으로 경찰과 검찰 수사의 공정성 여부가 여론의 시험대 위에 올라가게 된다.

김 회장이 지나친 자식 사랑 때문에 치르는 대가는 엄청나다. 다시 한번 사법처리를 받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다. 개인의 명예 실추는 물론이고 그동안 쌓아올린 그룹의 위상에도 큰 상처를 입혔다. 나아가 총수들이 아직도 뿌리 깊은 무소불위의 황제경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 재벌 전체의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

수많은 직원을 고용하고 국가경제를 이끌어가기에 더 엄격한 도덕성이 요구되는 자리가 바로 재벌 회장 직이다.

김 회장은 이번 사건에 대해 잘못을 고해성사하고,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며, 참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기는 계기로 삼기를 기대한다. 사즉생(死卽生)의 각오 또한 재벌 회장이라고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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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