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우리가 완전히 우리를 표현할 때까지

어느 소설 속에 등장했던 에피소드 - 한 여자가 한 남자를 찾아간다. 남자는 작가다. 생판 모르는 여자가 집으로 자신을 찾아온 것에 남자는 어리둥절해한다. 여자는 대뜸 얼마 전 남자가 발표한 글을 읽었노라 말한다. 그 글은 남자가 어느 밤 꾸었던 꿈에 관한 글이었다. 여자가 다시 말한다. 그것이 그녀가 그를 만나러 온 이유다. “나는 당신과 똑같은 꿈을 꾸었어요.”

물론 인생의 모든 밤, 누군가와 모두 같은 꿈을 꿀 수는 없다. (그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며,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공포다.) 매일 밤 꿈속에서 우리 모두는 철저히 혼자다. 완전한 단독자다. 그것은 처절하리만큼 고독한 일이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우리의 꿈이 아름다운 진짜 이유이기도 하다. 제아무리 안타깝고 서글프고 두렵고 힘겹고 쓸쓸하고 무시무시하고 허망하다 할지라도, 우리의 모든 꿈은 결국 아름답다. 저 자신이 어찌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꿈은 온전히 우리 자신에게 속한 우주이므로.

그런데 “나는 당신과 똑같은 꿈을 꾸었어요”라니.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혹시, 하는 기대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인구의 1/3은 잠들어 있다. 60억의 인생이 존재한다면, 지난 밤 60억의 꿈도 존재한다. 그 모든 인생을 헤아려 볼 수 없듯이, 그 모든 꿈도 헤아려볼 수 없다. 하여 아주 극소수의, 나와 같은 꿈을 꾼 누군가가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이 가능한 것이다. 물론 그조차 ‘꿈’이다.

‘같은 꿈’이란 결국 가혹한 삶에서의 이해, 위안, 희망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다시 말하지만 ‘매일 모두 같은 꿈’은 결코 아니다.

꿈은 완벽히 증명될 수 없다. 때문에 ‘꿈의 어떤 흔적들’을 눈밝게 살펴보아야 한다. 그 눈밝음만이 자신과 같은 꿈을 꾸는 존재들을 애써 찾아낼 수 있게 해준다. 많은 경우 예의 흔적들을 우리는 예술이라 부른다.

프로이트나 융은 잠시 접어두기로 하자. 우리가 꿈을 통해 꿈꾸고 싶은 것은 분석과 해결이라기보다는 격려와 공감이므로.

그렇다면 “나는 당신과 똑같은 꿈을 꾸었어요”의 다음 차례는 무엇일까. 같은 꿈을 꾼 그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일? 일리 있는 답이기는 하다. 같은 꿈을 꾼 누군가를 찾아내 사랑에 빠져야 하는 게 우리의 운명이라면 세상은 평화로 충만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랑은 그러한 시스템을 거부한다.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대상은 나와 같은 꿈을 누군가라기보다, 내가 꾸고 싶은 꿈을 나 대신 꾸는 사람이다. 우리는 그(그녀)를 욕망하고, 그(그녀)의 꿈을 욕망한다. 그것이 꿈과 사랑과 욕망과 평화가 원만하게 공존하기 어려운 이유다.

아무려나, 인생의 어느 밤, 같은 꿈을 꾼 게 확실해, 하고 중얼거리게 만들었던 어느 시인의 시를 처음 읽은 것이 어느덧 10년 전의 일이다. 확인할 수도, 증명할 수도 없는 확신.

내 책상 위의 타락천사, 사막의 여관, 눈이 멀어가는 무사, 새들의 페루, 미국의 송어낚시, 아이다호, 사당이 아닌 새드앙, 투 문 정션이 아닌 두 달 정선, 그리고 거울에 빠진 양조위. 같은 꿈의 흔적들….

‘아무데서나 나도 팍 쓰러지고 싶었다’, ‘그대 눈동자는 참 맑아요 / 그런 등불 하나 갖고 싶어요’, ‘질펀히 / 노을 같은 월경 / 샤워할래요 / 수염 난 사내와 걷고 싶어요’. ‘산다는 것은 물론 표현한다는 것과는 어느 정도 반대되는 것이다’, ‘물방울들은 서로의 몸에 경계선을 두지 않는다’, ‘책, 책, 책 울며 날아가는 눈 먼 박쥐들의 시간’

10년의 시간이 강물처럼 흐르고, 몇 권의 시집과 소설책이 음악처럼 흐른 다음, 시인 박정대와 처음으로 마주 앉을 수 있었다.

봄날의 저물녘이었다. 홍대 앞 ‘아지오’의 야외 테이블, 나는 그가 내게 권한 자리에 굳이 그를 앉게 했다. 청단풍 아래 앉아 담배를 피우는 그의 사진을 찍었다. ‘무가당 담배 클럽’의 회원인 시인은 던힐을 피우고, 그의 지포 라이터엔 빨간 체 게바라가 프린트되어 있다.

찢어진 청바지에 빈티지 모자를 쓰고 수염을 기르고 머리를 묶었지만, 그는 그럴듯한 포즈를 흉내내는 한량이 아니다. 헝가리 소설가 산도르 마라이의 말처럼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으로 반란을 일으키는’ 단련된 예술가인 것이다.

시인의 자유로운 영혼을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그는 성실한 생활인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한다. 저녁은 그런 그가 생활인에서 시인으로 변신하는 시간. 씬 피자의 모짜렐라 치즈가 굳어가는 사이 날이 어두워져갔다.

시인은 맥주를 여러 잔 마셨고, 소설가는 무거운 나이프와 포크를 차례로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를 만나기 직전 가까이 강 위의 어느 섬에 다녀왔다는 얘기를 들려줄까 말까 내내 망설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같은 꿈,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그런 한편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은 낯선 친숙함, 대화는 다소 중구난방의 선문답 같기도 했다. 시인과 소설가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10년 만의 첫인사에 걸맞는 어떤 의식처럼 누군가 옆에서 박정대의 시 ‘장만옥’을 들려준다면 좋겠다 생각했다.

‘멀리 가는 길 위에 네가 있다 / 바람 불어 창문들 우연의 음악을 연주하는 그 골목길에 / 꽃잎 진 복숭아나무 푸른 잎처럼 너는 있다 / 어느 날은 잠에서 깨어나 오래도록 네 생각을 한 적이 있다 / 사랑은 나뭇잎에 적은 글처럼 바람 속에 오고 가는 것 / 때로 생의 서랍 속에 켜켜이 묻혀 있다가 / 구랍의 달처럼 참 많은 기억을 데불고 떠오르기도 하는 것 / 멀리 가려다 쉬고 싶은 길 위에 문득 너는 있다 / 꽃잎 진 복숭아나무들이 긴 목책을 이루어 / 푸른 잎들이 오래도록 너를 읽고 있는 곳에 / 꽃잎 진 내 청춘의 감옥, / 복숭아나무 그 긴 목책 속에’

시인은 지난 겨울 그리스로의 여행에 대해 들려주었다. 혼자였고, 외로운 여행이었고, 외로워서 너무나 기쁘고 충만한 여행이었다고. 몸무게가 10kg이나 줄어버렸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겨울의 지중해에 대해 앞으로 두고두고 쓸 거리가 생겼다는 그에게 흡사 안거(安居)를 마친 승려의 분위기가 감도는 듯 했다.

소설가의 예상대로 시인은 두 번째 시집과 세 번째 시집 사이 가장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이후 네 번째 시집을 출간한 최근 박정대는 이제 한 예술가로서 꿈속의 자신마저 장악한 듯한 인상을 주었다.

그걸 딱히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내내 고민하고 있었다. 수십 년의 세월을 각기 다른 시간과 다른 장소에서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경험을 하며 살아왔지만, 문득문득, 아니 어쩌면 꽤나 자주 같은 꿈을 꿈꾸었다는 것.

그 신기하고 신비한 교집합. 취향이 일치한다거나 코드가 맞는다거나 하는 단순한 표현은 아무래도 마음에 차지 않는다. 박정대의 네 번째 시집 <사랑과 열병의 화학적 근원>은 체 게베라와 로맹 가리에게 헌사되어 있다.

그가 새로 지은 자신의 이름과 함께 적어 건네 준 문구는 ‘영혼의 동지’. 동지, 동반자가 아니다. 영혼의 동지 - 서로 투쟁하지 않아도 되는 교감, 들끓지 않아도 되는 깊은 연대감.

‘우리는 바람의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며 생의 주파수를 찾고 있었네’, ‘진짜로 강한 인간의 본성은 여자들의 내면에 숨어 있지, 그것도 제대로 삶을 살아본 여자들의 내면에 말이야’, ‘사랑이 소금 같아’, ‘쉽게 부서지는 사랑을 생이라고 부를 수 없어’, ‘나비 효과래, 내가 지금 한 줄의 글을 쓰면, 그대는 누군가의 깊은 욕망을 만질 거야’, ‘깊은 밤에도 태양은 우리의 것이니까’, ‘삶이 음악처럼 부드럽지만은 않구나’, ‘우리의 사랑은 투쟁 영역의 확장이었으니 이제는 싸움에도 지쳤어라’, ‘누군가는 미래를 노동하고 누군가는 현재를 노동하지만 나는 추억만을 노동해요’

그리고 어느 시, 그가 주문처럼 다짐처럼 기도처럼 반복해서 중얼거리는 말 - ‘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해야 하네.’ 무엇을? 어떻게? 아파하면서도 괴로워하면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무서운 단호함. 그의 말대로 “내 유일한 꿈은 절대로 꿈에서 깨지 않는 것.”

지난 여름 파리에 갔을 때 박정대는 유독 여러 ‘지인들’의 무덤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그 지인들 중 한 명인 로맹 가리. 자살한 로맹 가리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마침내 나는 완전히 나를 표현했다”.

소설가가 ‘진 세버그의 나쁜 남자로서의 로맹 가리’라고 말하자 시인은 크게 웃었다. 이윽고 밤이 되었다. 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해야 한다. 마침내 우리가 완전히 우리를 표현할 때까지. ‘바람이 분다, 우리는, 아무튼, 살아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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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나,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0년 <문학사상>에 '촛불의 미학' 외 여섯 편의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시집 <단편들>,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아무르 기타>, <사랑과 열병의 화학적 근원>을 출간했다. 현재 <목련통신> 편집장, '무가당 담배 클럽'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김달진문학상'과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했다.


이신조 소설가 zovenban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