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LG가 손을 잡은 것은 한국과 일본, 대만이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맺은 현대판 도원결의와 같습니다.”

지난 14일 서울 메리어트 호텔에서 열린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출범식. 김영주 산업자원부 장관의 축사 한 대목이 참석한 업계 관계자들의 가슴 한구석에 무겁게 다가왔다. 분명 그 말은 축하의 뜻이었지만 반대로 경계의 의미도 담고 있어서다.

디스플레이 산업은 반도체, 철강, 조선 등과 함께 ‘기술한국’의 대표적인 자랑거리 중 하나다. 브라운관 제조 기술조차 일본 업체에게서 배워 겨우 TV를 생산할 수 있었던 1960~70년대의 한국이 어느새 세계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디스플레이 강국이 된 건 앞날을 예견해 90년대부터 투자 드라이브를 건 덕분이다.

그 방식은 ‘적시(適時), 대규모, 선투자’로 요약된다. 엄청난 재원과 시설이 소요되는 디스플레이 산업 특성상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때에 동원 가능한 자원을 최대한 쏟아 부어 기선을 제압하는 방식이다. 물론 기술력은 기본이다.

이러한 투자 전략은 세계 시장에 그대로 먹혀 들었다. 최대 기술 강국 일본이 90년대 장기불황 때문에 선뜻 투자에 나서지 못하고 대만은 규모의 경제 실현에 대한 부담감에 우물쭈물할 때 한국 기업들은 박차고 나가 급성장하는 새 시장의 선봉에 설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투자 주도의 성장 전략은 한계가 있다. 특히 초기 시장에서는 강력한 효과를 발휘할지 모르지만 만약 방향타를 잘못 잡으면 관성의 힘이 보태져 벼랑으로 달려갈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을 보면 수익성 악화와 원천기술 부족의 늪에 점차 빠져드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위기가 오고 있는 것이다.

반면 한국의 추월에 자존심 상했던 일본과 대만은 그 동안 착실하게 내실을 다지며 독보적인 기술력 확보에 몰두해 왔다. 그 결실도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한국과의 세계시장 점유율 격차를 바짝 좁혀오고 있는 것이다.

이제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도 투자 주도의 시장 전략을 일부 수정해 혁신 주도의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성숙 시장에서는 점유율 확대가 물량보다는 혁신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기로에 선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은 빨리 자만심을 털어버리고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때마침 출범한 디스플레이산업협회가 부활의 전주곡을 울려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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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