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테닛(1953년 1월생) 전 미 중앙정보국(CIA)국장은 그의 회고록 <폭풍의 한가운데서>가 출판된 지 3주 만에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베스트셀러 논픽션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을 보고 무엇을 느꼈을까.

테닛 전 국장은 44세의 젊은 나이에 취임해 CIA 역사상 두 번째로 긴 국장 재임 기간(1997년 7월~2004년 7월)을 기록한 이로 유명하다. 특히 빌 클린턴 민주당 정부에서 조지 W 부시의 공화당 정부로 두 당 정부의 CIA국장 자리를 지켰다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테닛이 퇴임 3년여 만에 쓴 회고록을 두고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려는 것이다” “일부 데이타가 엉터리다” “왜 회고록에 주장했던 것을 재임 중에는 주장하지 않았는가”라는 비판이 많다. 특히 NYT와 WP가 앞장서고 있다.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대 인터넷 서점인 아마존닷컴에서 판매 순위 22위에 오른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해답이 될는지 모르겠다. 미국의 독자들은 테닛이 정보국의 총수 출신답지 않게 자신의 꿈과 좌절, 희망을 과장하지 않고 세세하게 적었기 때문이 아닐까.

테닛은 그리스에서 1940년에 이민 온 아버지 존과 어머니 이반게리와의 사이에 1953년 쌍둥이로 태어났다. 형 빌은 심장병 의사다. 테닛은 조지타운대학의 역사학부와 대학원을 나와 82~95년에 하원과 상원의 정보위원장 수석보좌관, 백악관 안보회의 정보담당관을 지냈다. 95년 CIA의 부국장이 된 후에 은폐, 공작, 정보 분석, 의사군사작전에 나서는 CIA 활동과 직접 관련을 맺었다.

뉴욕의 퀸스 프러싱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민 1세의 아들이었던 그는 CIA국장이 되었을 때 감격해 취임사에서 말했다. “세계 어느 나라에 이민자의 아들이 중앙정보국장이 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미국이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이기에 가능하다.”

“나는 이런 미국을 이루는 내 가족, 내 이웃, 그리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내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2004년 4월 27일 WP의 1면 톱기사의 두 번째 문단을 읽고 그는 “내가 다른 위성에 살고 있다”는 감정에 휩싸였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추적해 탐사보도의 새 길을 연 밥 우드워드(현재 부국장)가 쓴 9·11 사태 후 부시 정부의 이라크 침공을 다룬 제2부작 <공격 계획>(제1부는 <부시는 전쟁 중> 2002년 출간)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우드워드의 <공격 계획>에는 2002년 부시가 이라크와의 전쟁을 벌여 사담 후세인을 몰아내는 결정적인 순간들이 담겨 있다. 특히 테닛이 이 목적을 위해 대통령에게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WMD)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Slam dunk)’고 했다”는 대목은 그가 이번 회고록을 쓴 이유이기도 하다.

우드워드는 <공격계획> 책에서 ‘슬램 덩크’라는 말이 나온 장면을 가볍게 기술하고 있다.

CIA 부국장 존 맥 그린은 2002년 10월 부시, 체니, 라이스 보좌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WMD에 관한 보고서(이라크가 WMD를 가지려 한다)를 일반에게 공개하는 게 좋겠다는 브리핑을 했다.

<부시는 공개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표정이었다. “나는 국민이 이해하고 믿게 될 것 같지 않은데…” 부시는 의자에 파묻혀 있는 테닛 국장을 보며 말을 이었다.

“나는 WMD를 그들이 가지고 있다고 말해오지 않았는가. 이 보고서가 가장 적절할 것인가.”

테닛이 일어나 농구하듯 슛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그건 슬램 덩크(확실하다)입니다.”>

그 후 ‘슬램 덩크’라는 말이 부시의 이라크 공격의 결정적 요인이 되었고 이를 테닛 국장이 유도했다는 보도는 큰 파장을 일으켰다. 테닛은 2004년 4월 14일 상원 9·11 위원회에서 “CIA는 이라크가 WMD를 가지려는 의도는 명확하지만 가졌는지 여부는 계속 추적 중이다”고 공개 증언했다.

그런데 13일 후 WP가 테닛이 부시의 ‘공격 계획’을 유도키 위해 있지도 않은 WMD를 확실하게 있다고 주장한 것처럼 보도한 것이다. 테닛은 이때 워싱턴에서 국가 정보 관계기관에 종사한 20여 년의 끝을 매듭지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충격을 피해 휴가를 뉴저지 비치로 떠났다. 그는 “앤드류 카드 비서실장에게 전화했다”고 <폭풍에서…> 적고 있다.

“나는 물론 보고서(국가정보 예측서)를 제출하고 브리핑했지요. 그건 이라크가 보유할 수 있다는 것이지.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니었소. 여지껏 내가 의회에서 증언하고 공개한 발언과는 다른 것이요. 나를 바보로 취급하는 것이요.”

테닛은 2004년 6월 3일 부시를 단독으로 만나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다음날 사임을 발표하고 재임 7년이 되는 7월 11일 물러났다.

테닛은 책이 나온 후 지난 4월 29일 CBS방송 <60분>에 출연해 ‘슬램 덩크’에 대해 설명하며 화도 냈다.

“당신이 그때 슬램 덩크라고 말한 것은 대체 무슨 뜻입니까?”

“내가 그때 그 말을 쓴 것은 좀 더 열심히 증거를 찾아 보겠다는 것이었소. CIA는 국민에게 좀 더 진실한 것을 알리자는 것이었지요.”

테닛은 “그럼 체니 등 백악관이 당신을 몰락시키기 위해 밥 우드워드에게 슬램 덩크라는 말을 흘렸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했다.

“나는 그리스인이요. 그리스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음모에 강하지만…. 누가 했는지는 나도 모르겠소. 나는 그런 음모설을 파헤칠 생각이 없소. 인간이기에 기분이 나쁜 것은 사실이요.”

테닛은 퇴임 후 3년여의 ‘슬램 덩크’의 악몽을 이번 회고록으로 씻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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