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기에 대한 맹세’ 문안이 시행 25년 만에 바뀐다. 행정자치부는 이에 대한 국민의 의견을 반영하여 다듬겠다고 한다. 1968년 충청남도 교육위원회에서 만들어 보급한 것을 1972년 문교부가 전국의 각급 학교에서도 시행토록 했고, 1982년 국무총리 지시로 모든 관공서와 각종 단체 행사 때 실시할 만큼 이 맹세문은 확산 일로를 걸어 왔다.

당초 충남의 문안과 전국 단위 문안 간에는 차이가 있다.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의 통일과 번영을 위해 정의와 진실로써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가 “나는 ~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로 바뀐 것이다.

양자 간에 바뀌지 않은 부분 중 ‘자랑스런’이 있다. 이 말을 두고 많은 사람이 궁금하게 여긴다, ‘자랑스런’을 ‘자랑스러운’의 준말로 인정할 수 있는가 하고. 관련 전문가들은 이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 ‘ㅂ’이 바뀐 ‘ㅜ’가 그 앞의 모음과 어울려 줄어드는 것을 한글 맞춤법에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군고구마’, ‘군밤’이 ‘구운 고구마’, ‘구운 밤’의 준말로 인정되는 예외가 있기는 하나 이같이 준말로 인정되는 것은 단어로 굳어져야 한다. 실제로 ‘군고구마’, ‘군밤’이 표제어로 국어사전에 올라 있다.

‘자랑스런’의 경우는 같은 환경에 있는 다른 말들이 활용할 수 있는지도 두루 생각해 봐야 한다. 따라서 ‘자랑스런’을 예외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한 바른 어법으로 보기는 어려우므로 ‘자랑스런’은 ‘자랑스러운’으로 고쳐 쓰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스런’ 사용을 묵인하거나 인정하자는 의견도 물론 있다.

‘자랑스런’ 이외에 ‘-스런’ 형은 어느 정도나 쓰일까. 최근 1주일간의 신문 자료를 찾아보니 마치 봇물 터지듯 대단한 기세로 쏟아졌다. 일부 예를 들어 본다.

감격스런 표정

갑작스런 늦서리 갑작스런 타계

거추장스런 존재

걱정스런 리더십 경망스런 작태

고급스런 요리 고통스런 심경

고풍스런 하버드대 곤혹스런 상황

공포스런 시기 급작스런 부담 증가

만족스런 답변

맛깔스런 광주정식 멋스런 한하계 변덕스런 서풍

부담스런 일

부자유스런 몸

불만스런 얘기 비밀스런 사연

사랑스런 동물

사치스런 호칭

성스런 십자가 신비스런 매력

실망스런 수준

억척스런 사람

여성스런 소재 유감스런 일

익살스런 댄스가수 자연스런 수목원

조심스런 표정 치욕스런 재판

탐스런 지리

한심스런 철새정당 허접스런 정보 호사스런 물건

혼란스런 국면

이 정도의 세력으로 쓰이는 ‘-스런’ 형을 계속 ‘바람직하지 않은 표현’으로 묶어 두는 것에 어려움이 따르지는 않을까. 물론 ‘자랑스럽다’의 다른 활용형인 ‘자랑스러우니’, ‘자랑스러우므로’ 등이 ‘자랑스러니’, ‘자랑스러므로’ 등으로는 쓰이지 않는다는 점도 ‘자랑스런’ 인정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맹세문을 읽거나 들을 때 그 감각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현행 맹세문은 “나는(2음절) 자랑스런(4) 태극기(3) 앞에(2) ~ 다짐합니다(5)”로 그 나름의 운율을 이뤄 왔다.

이는 확장되어 “나는(2음절) 자랑스런(4) 태극기 앞에(5) ~ 몸과 마음을 바쳐(7) 충성을 다할 것을(7) 굳게 다짐합니다(7)”로 자리잡아 왔다.

그런데 ‘자랑스러운’을 취했을 때 25년간 우리 입이나 귀에 밴 그 감각이 그대로 유지될지는 알 수 없다. ‘자랑스런―자랑스러운’의 해법은 없는지 좀 더 생각하며 새로 다듬어진 문안을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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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진 국립국어원 국어진흥부장 hijin@mct.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