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을 상징하는 세 개의 날 중 5·16, 5·17에 이어 마지막 날인 2007년 5월 18일. 5·18 광주민주화운동 27주년 기념식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정국을 향한 속마음을 내비쳤다.

“여러분이 대통령의 중책을 맡긴 것은 내가 일관되게 지역주의에 맞서 왔기 때문이다. (…) 그러나 아직도 정치에 지역주의가 살아있고 지역주의로의 후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 민주세력임을 자처하는 사람 중에도 민주세력이 무능하다거나 실패했다고 말을 하는 이들이 있어 민망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세력은) 군사독재가 유능하고 성공했다는 것이냐. 민주세력은 역사의 진보를 이루어가고 있다.”

“군사정권의 업적은 부당하게 남의 기회를 박탈하여 이룬 것이다. 그 업적이 독재가 아니고 불가능했었다는 논리는 증명할 수 없으며 그런 논리는 우리 국민의 역량을 무시하는 것이다.”

이런 노 대통령의 발언 배경에는 ‘도로 민주당식 통합’을 반대하고 한나라당을 군사독재 정권의 후계자로 몰아세우는 두 가지의 노림수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광주’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노 대통령은 ‘광주에 깃발 꽂기’ 경쟁에 나선 범여권 대선 주자들과 함께 ‘5·18과 광주’에서 무언가를 말하려면 다음 세 권의 책을 읽기를 바란다.

지난주에 ‘어제와 오늘’에 쓴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는 1994년 6월에 낸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평론집에서 ‘광주와 5.18’에 대해 두 편의 에세이를 썼다. 그때는 정년 퇴임 전(1995년)으로 한양대 교수였던 그가 93년 7월에 쓴 “광주는 ‘언제나 그곳에’ 있었다”에서 말했다.

<“1980년 5월 18일은 그 오랜 과거의 역사와 그 이후 역사를 가르는 시대구분적 분기점이 되었다. 이 5월을 기해서 광주는 남한 지도에 표시된 작은 도시명으로서의 고유명사가 아니라 동시대적 세계의 한 이념(理念)이 되었다.

광주는 ‘광주’가 되었다. ‘사우스 코리아’ 남단의 한 점은 1980년 5월 이후 세계의 ‘Kwang-Ju’가 되었고 그 단어는 폭력과 부정에 항의하여 목숨을 바친 민주주의적 시민의 용기와 감동적인 희생정신을 뜻하는 추상명사가 되었다.”

“한국의 광주는 한국 민족만의 정신문화적 빛이 아니다. ‘광주’는 20세기 말의 ‘바스티유’(1871년 5월 20~28일 프랑스 혁명 때 해방된 감옥)이며 ‘파리 꼬문’이다. 그래서 ‘광주’는 세계의 ‘광주’인 것이다.”>

리 교수는 윗글이 나오기 전 그해 5월 31일에는 “광주 민주항쟁 ‘배후조정’ 영광기”를 썼다. 그는 80년 5월 17일 밤 11시 30분께 연행되어 ‘광주 폭동’ 배후조종자로 2개월여 동안 중앙정보부에 구금되었다.

리 교수가 두 달 뒤 무혐의로 풀려나온 후 본 ‘전국 비상계엄 확대’를 알리는 신문 호외에는 “전국 소요 및 광주 폭동 배후 조종자 김대중, 문익환, 인명진, 리영희…”라고 되어 있었다. 그는 이런 ‘배후조정’은 영광이다”고 썼다.

‘광주’에 관한 숱한 시와 소설과, 사회 과학 논문이 나왔다. 서울대 외교학과 최정운 교수(1953년생. 시카고대 박사)는 99년 5월 <5월의 사회과학>이라는 책을 냈다.

<“5·18 민중항쟁이 뚜렷한 이념이나 이론이 없었다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점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론의 진공상태였던 5·18의 체험을 통해 도리어 기존의 이념, 서양의 이념들이 보여주지 못했던 새로운 현실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체험의 원초적 순수성이야말로 5·18의 가장 값진 부분일 것이다. 우리는 혁명가 없는 순수한 혁명을 잠시나마 맛보았고 그 기억은 새로운 이념을 만들어낼 실험장이자 원료가 될 것이다.”>

최 교수는 “‘순수한 혁명’은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인 ‘전통 공동체’가 강한 광주가 5월 18, 19, 20일의 공수특전단의 ‘과잉진압’ 속에 ‘전통’을 넘어 ‘절대공동체’로 발전했기에 가능했다”고 보고 있다. 폭력에 대한 공포와 자신에 대한 수치를 이성과 용기로 극복하고 목숨을 걸고 싸우는 시민들이 만나 서로가 진정한 인간임을, 공포를 극복한 용기와 이성있는 시민임을 축하하고 결합한 절대공동체였다.

최 교수는 덧붙였다. “나는 전라도 태생의 교수도 아니며 ‘순수혁명’, ‘절대공동체’ 인간으로서의 광주시민을 사회과학적으로 발견하고자 했다.”

최 교수는 97~98년에 나온 소설가며 한신대 교수인 임철우(1955년생. <아버지의 땅>으로 한국일보 창작문학상 수상)의 5부작 소설 <봄날>을 10여 곳 이상에서 인용하고 있다.

임철우는 10년간 서재 온벽에 ‘광주’ 희생자의 사진을 걸고 증언록, 자료에 쌓여 이 <봄날>을 썼다. 소설 속 주인공 중 한 명인 한명기(80년 당시 전남대 1학년생)는 80년 5월 31일 신안군에 있는 한 섬으로 피신하며 뱃머리에서 말했다.

“그래, 절망하지말자, 두려워하거나 증오하지도 말자. 이 추한 세상의 악과 폭력이 오직 절망과 증오만을 가르치려 할지라도, 나는 이제부터 희망을 배워가리라. 인간과 삶을 향한. 가슴벅찬 소망과 그리움의 노래를….”

최근 대선 개입 발언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노 대통령은 <새는 좌우 날개로 난다>, <5월의 사회과학>, <봄날> 세 권의 책을 읽으며 ‘광주’의 참의미를 되새겨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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