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이방으로 유학을 가기로 결심할 때 걱정거리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영어는 잘할 수 있을지, 총기 사고가 많다는데 안심하고 다닐 수 있을지, 집이나 친구가 그리워 향수병에 걸리지는 않을지 등이 고민된다. 그러나 뭐니해도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음식 문제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빵과 스테이크 등 양식보다는 구수한 된장국을 더 즐긴 나는 심지어 한국음식을 안 먹고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를 시험해 보려고 유학가기 전에 한동안 한국음식을 끊는 하드트레이닝을 한 적도 있었다.

하루 세 끼를 씨리얼과 샐러드, 햄버거, 고기, 빵으로 때우는 훈련을 보름간 해보았는데 그 참을 수 없는 고통은 상상 이상이었다. 정말이지 김치와 된장국이 여자친구보다 더 보고 싶어지기도 했다.

마침내 미국 유학길에 올랐을 때 다른 문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영어를 구사하는 데 자신감이 있었고, 미국 문화와 역사도 사전에 숙지한 데다 모험을 좋아하고 사교적인 성격이라 어떠한 난관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낙관했다. 그런데 한국음식에 대한 그리움은 인천국제공항을 이륙하는 순간부터 뇌와 위를 압박했다.

그 걱정은 결국 현실이 되어 나를 괴롭혔다. 매일 대학교 기숙사 식당에서 먹는 양식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에너지를 보충하는 본능적인 식사였지 즐겁고, 맛있게 먹는 식사가 아니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라면과 고추장 등은 미국에 도착 후 한 달이 못 되어 바닥이 났다. 이러다 제대로 먹지를 못해서 유학생활을 접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생겼다. 다행히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에 한국식료품점이 있어 가끔 이것저것 한아름 사다가 직접 요리해 먹음으로써 입과 위장의 빈곤을 채울 수 있었다.

먹는 것과 관련해 미국에서 느낀 또 다른 불편은 음식배달이었다. 한국에서야 전화 한 통화를 하면 동네에서 원하는 음식을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주문할 수 있다. 그런데 미국은 땅이 워낙 넓은 탓인지 배달되는 음식이라곤 피자가 전부다. 그것도 가게에서 반경 5마일을 넘는 곳은 배달을 거부한다.

평소엔 잘 몰랐지만 시험 기간에는 한국의 음식배달 문화가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다. 시험공부 때문에 음식을 해먹을 시간이 부족할 때 배달을 시키면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데 미국에서는 그러지 못하니 ‘배달의 민족’ 한국 생각이 저절로 났다.

다른 사람들은 한국의 친구나 가족이 보고 싶을 때 가장 한국이 생각난다고 하지만, 나는 그보다는 한국음식을 배달시켜 먹고 싶을 때 가장 한국이 그립다.

정철민 통신원(미국 인디애나 주립대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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