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2일 하오 청와대 영빈관에서 전국의 시.도지사와 기초단체장 300여명이 모였다. ‘주민 생활 서비스 혁신 국정보고회’였다.

<< 안상수 인천시장= 대통령님 죄송하지만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 노무현 대통령= 그만 하시죠.  안 시장= 한 2,30초만…  노 대통령= 제가 토론을 주재하며 말을 막은 적 없는데요. 오늘 기분이 좀 안 좋습니다. 이 자리가 지방재정 배분을 토론하는 자리도 아니고…. 그만 하십시다. (굳은 얼굴로) 옛날 대통령한테도 이렇게 했습니까.>>

“옛날 대통령한테도…”의 대목을 “다른 나라 대통령은 어떻게 했을까”로 바꿔본다.

지난 주 ‘어제와 오늘’에 나온 마이클 베스로스는 “미국 대통령들 어떻게 했을까”를 되돌아봤다.

베스로스는 9명의 미국 ‘옛날 대통령’을 두 가지로 나눴다. 한쪽은 ‘용기있는(courageous)’, 다른 한쪽은 ‘용감한(bravery)’이었다.

‘용기있는 대통령’은 지난 주 소개한 워싱톤, 링컨에 이어 20세기 대통령을 지낸 시어더오 루즈벨트(1901~1909 재임. 1858~1919. 월스트저널 조사 ‘위대한 대통령’ 랭킹 5위).

그의 사촌 프랭크린 드라노 루즈벨트(이하 F.D.R 1933~45년 재임. 1882~1945년. 랭킹 3위)다.

베스로스는 ‘용기있는’의 뜻을 “국가 이익을 위해 자신의 경력, 미래를 해칠 수 있는 것을 넘어서는 의지와 신념”이라고 봤다.

부통령이었던 시어더오 루즈벨트(이하 T.R로 표기)는 1901년 9월 맥킨리 대통령이 피살되자 대통령 직을 승계했다. T.R는 “이런 식으로 대통령이 되는 것은 두려운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두려워하는 것은 더욱 나쁜 것이다. 지금 여기에 대통령의 일이 있다. 그리고 내 능력의 최선을 다해 이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대통령이 해야 할 모든 일이다”고 생각했다.

T.R는 ‘모든 일’중 으뜸을 1890년대 등장한 트러스트(기업 합동을)를 깨뜨려야 대통령제와 민주주의가 확고해 진다고 믿는 데 두었다. T.R는 그때 트러스트의 으뜸인 피에몬트 모간이 최대주주인 북부증권회사를 해체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그는 1902년 트러스트 조사에 나서 재선 선거해인 1904년 대법원으로부터 모간의 북부증권회사 해체 판결을 얻어냈다.

또한 1902년 3월에 발생한 무연탄 탄광의 전국적 파업을 광부들 편에 서서 해결했다. T.R는 1904년에 재선 선거가 있지만 “대 재벌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큰 정부가 있어야 한다. 정부는 재벌보다 더 힘이 있어야 한다. 모건이 제의한 대통령과의 협상을 거절한다. 정부는 재벌보다 위대하다”고 뜻을 굳게 했다.

T.R가 속한 공화당, 그와 절친한 친구들, 고문 등이 “재선에 도움이 안 된다”고 했지만 그는 협상을 거절했다. T.R는 압도적으로 재선했다.

T.R는 1914년 나온 자서전에서 대통령 직에 대해 썼다. “모든 행정관, 특허 고위 행정관은 능동적이고 강력하게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국민의 청지기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위를 남용하지 않았고 다만 행정부의 권력을 크게 확대시켰을 뿐이다…. 나는 언제든, 무슨 일이든 필요할 때면 헌법이나 법률의 직접적인 제약을 받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국민의 복지를 위해 행동했다.”

미국 헌정사상 처음으로 3선에 도전하는 F.D.R의 1940년은 11월 3선에 성공하기까지 우울한 것이었다.

F.D.R와 동반자 대통령이라는 평을 받는 퍼스트레이디 에리노어는 그때의 F.D.R을 묘사했다. “그는 ‘히틀러(1939년 3월 폴란드 침공. 1940년 프랑스 점령)가 벌이는 세계대전을 막을 수 있다고 낙관했다. 그러나 그는 어느새 우울한 성격으로 변했다.”

대서양을 횡단한 첫 비행기 조정사인 찰스 린드버그, 영국주재 대사인 조지프 케네디(35대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아버지) 등 공화, 민주 양당의 고립주의자들. 그들은 F.D.R이 “영국과 비밀리에 손을 잡고 전쟁을 하려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의회는 상ㆍ하원에서 민주당이 우세한데도 영국에 무기를 대여하고 이를 현물로 다시 받는 무기대여법을 8월에야 겨우 통과시켰다.

T.R의 아들인 테디조차 “F.D.R은 과대망상증 때문에 유럽전쟁에 나서려 한다”고 비난했다. T.R의 딸인 앨리스는 “차라리 히틀러에게 이번엔 투표하는 게 낫겠다”고 열을 올렸다.

그러나 역전이 벌어졌다. 3선 선거를 며칠 앞두고 케네디 주영대사가 사직하러 귀국했다.

그는 예상과는 달리 10월 29일 CBS라디오에 나가 F.D.R 지지 방송을 했다. “공화당 측에서 ‘F.D.R이 세계전쟁에 참가하려 한다’는 혐의는 거짓이다.”

F.D.R은 압도적으로 3선했다. “우리는 정부전복(utach)을 피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하반신 마비의 F.D.R은 스스로 자랑했다. “나는 ‘넓은 어깨’(용기있는)를 가진 터프가이다. 그게 이번 선거를 이기게 했다. 대통령 감으로서의 ‘용기’가 있다는 말이다.

노 대통령, 대선주자들이 참고해야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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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