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7일 하오 3시 25분, 호주 시드니에서 55분간 정상회담을 마친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미국 대통령은 15분간 언론회동을 가졌다.

부시(미국측 통역)= 북한과 관련한 많은 재확인이 있었다. 북한 지도자가 그들의 핵 프로그램을 전면 신고하고 또 핵 프로그램을 전면 해체한 경우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동북아시아에 있어 ‘평화체제가 새롭게 선정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 대통령= 각하께서 ‘한반도 평화체제’ 내지 종전선언에 대해 말씀을 빠뜨리신 것 같은데, 우리 국민이 듣고 싶어하니까 명확히 말씀을 해주셨으면 한다.

부시(미국측 통역)= 제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가 ‘평화체제 제안’을 하느냐 안 하느냐에 중요한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달렸다.

노 대통령= 똑 같은 얘기인데 김정일 위원장이나 한국 국민들은 그 다음 얘기를 듣고 싶어한다.

부시(미국측 통역)= 더 이상 어떻게 분명히 말씀 드릴지 모르겠다. 한국에서 전쟁은 우리가 끝낼 수 있다.

미국 언론들은 노 대통령이 부시를 ‘압박’ 했다고, ‘무례’했다고 썼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관리들이 이 사건을 통역문제로 표백(chalk)하면서 양국 정상간 긴장이 있었다는 관측을 부인했다”고 썼다.

미국 워싱턴 정가의 소식을 전하는 넬슨 리포트는 두 정상 언론회동을 이렇게 요약했다. “노 대통령이 북한과의 평화협정 문제를 놓고 부시 대통령에게 반복적으로 유도질문을 던져 그를 놀라게 했다. 노 대통령의 의전상 결례에 대해 부시 대통령 뿐 아니라 현장의 미국 기자들이 놀란 것 같았다.”

넬슨 리포트는 덧붙였다. “그때 방 안에 있던 모든 미국 사람의 마음에 번개처럼 스친 생각은 ‘아이고 맙소사(Oh my God)’였다.”

노 대통령은 왜 ‘평화체제’내지 ‘종전 선언’에 집착하는 걸까?

많은 북한 전문가들은 10월2~4일에 있을 평양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평화선언을 하려는 노 대통령의 사전정지 작업이다”고 보고 있다.

노 대통령은 시드니 정상회담에서 부시가 ‘종전선언’, ‘평화조약’을 말하고도 언론회동에서 이를 기자들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답답했을 것이다.

여지껏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는 북한이 핵을 완전 불능화하면 “‘평화조약’, ‘종전선언’을 하겠다”고 말해 왔다.

노 대통령의 질문에 ‘고집’으로 되받은 부시의 마음을 살 방법은 없을까? 엉뚱한 해답을 생각해본다. 노 대통령은 그의 임기를 마감할 10월의 김정일 위원장과의 만남을 위해 일기를 쓰라는 것이다. 가칭 ‘노무현의 평양일기’나 ‘…평화일기’는 어떨까?

해답이 될는지 모르겠다. 지난 5월, 2004년 6월 5일 세상을 떠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1911~2004)의 재임중 일기인 ‘레이건 일기’가 나왔다.

1981년 1월 20일~89년 1월 20일 백악관의 매일을 쓴 것이다. 이를 엮어 낸 이는 트레인대 역사 교수인 더글라스 브린크리(카터의 대통령직을 다룬 ‘끝나지 않은 대통령직’의 저자). 그는 이 일기를 엮은 이유를 썼다.

<<미국 역대 대통령중 조지워싱턴, 존 킨시 아담스, 제임스 폴크, 루더포드 헤이스 대통령만 ‘일기’를 썼다. 레이건은 영화배우, 라디오 코멘데이터, 주지사를 지내며 가끔 일기를 썼지만 대통령 취임과 함께 매일 일기를 쓰기로 했다. 그 이유는 첫째, 부인 낸시와의 백악관 생활을 나중에 회고하기 위한 것이었다.

레이건의 일기에서 어떤 주장이나 비난이나 원망을 찾기 힘들다. 그러나 어느 면에서는 여지껏 그 자신의 자전회고록 ‘한 미국인의 생’(1990년 나옴), 공식 회고록 저자인 에드본드 모리스의 ‘터치-레이건 회고록’보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정확한 자료가 많다. 또한 5~20줄에 그치는 일기에 부인 낸시, 그의 옛 친구, 아들, 딸과의 인간 애정이 깃들어있다. 나는 백과사전 분량인 5권을 ‘감동’으로 읽었다. 미국과 세계와 인간을 알 수 있었다>>

레이건의 일기에는 KAL 007기 격추사건(1983년 9월 4일자), 전두환 전 대통령의 첫 방미(1981년 1월 31일자) 등 한국에 관해 22건이 적혀있다.

이중 짧게 쓴 85년 4월 26일자 일기를 본다.

<<한국의 전 대통령과 오찬을 가졌다. 낸시는 전 대통령 부인과 따로 어울렸다. 우리 부부는 83년 11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의 즐거운 추억을 갖고 있다. 조지 슐츠(국무장관)와 전 대통령은 둘이 따로 만나 내가 백지위임한 문제들을 논의했다.>>

슐츠는 그의 회고록 ‘나의 국무장관 시절’에서 “이때의 만남에서 전 대통령의 ‘평화적 전권이양’ 재확인, ‘한국의 민주주의화’에 대한 전 대통령의 약속이 이뤄졌다”고 썼다.

노 대통령은 ‘레이건의 일기’를 꼭 읽어보길 바란다.

그 ‘일기’ 속에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나눌까에 대한 지혜가 있다. 그보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이룰 대통령으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 반성의 틀이 있다.

지금부터라도 매일 ‘노무현 일기’를 쓰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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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