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일은 노무현 대통령이 평화와 번영을 논의하고자 북한 정상과 만나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시시각각 방송은 이를 전하는 데에 힘을 쏟았고 신문 역시 이를 비중 있게 다루는 데에 지면을 아끼지 않았다. 방북 첫날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에서 환영받는 장면을 보도한 한 방송사의 뉴스를 들어 보자.

(1) 공식 환영식장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인민군 3군 의장대를 사열했습니다. 7년 전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우리 군 통수권자의 두 번째 북한 인민군 사열입니다.

<현장음>: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국방 위원회 위원장, 조선인민군 최고 사령관 동지, 조선인민군 육해공군은 경애하는 최고 사령관 동지와 함께 노무현 대통령을 영접하기 위하여 정렬하였습니다.”

다른 방송에서도 이 장면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2) 노무현 대통령이 어제는 우리 국군을,오늘은 북한 인민군을 사열했습니다. 이것도 분단 6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죠.

또 다른 방송에서는 “남북 정상은 붉은 색 카펫을 나란히 걸으며 북한 육해공군으로 구성된 명예 위병대를 함께 사열했습니다.” 하고 보도하였다. 그러다가 해설하는 한 인사가

(3) 최고위급 인사들이 전부 나온 것이나 인민군 육해공 명예위병대가 모두 나와 사열한 것도 1호 행사가 아니면 어렵습니다.”

하며 사열하는 주체가 명예위병대라고 밝혀 시청자를 혼란스럽게 하였다.

혼란스럽기는 신문도 마찬가지였다. 언론사별로 ‘사열하다’, ‘사열받다’로 나뉘는가 하면 같은 신문에서도 ‘사열하다’, ‘사열받다’가 혼재하기도 했다. 예를 본다.

(4) 노 대통령은 북한군 의장대 사열도 한다./의장대를 사열할 예정이다./김정일 위원장과 만나 인민군 의장대를 사열했다./북한 육해공군으로 구성된 명예위병대를 사열했다.

(5)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사열을 받고 있는 장면이/육해공군 의장대 사열을 받으면서도/북한 육해공군 3군 의장대 사열을 받았다/함께 의장대 사열을 받고 화동으로부터 꽃다발을 받는/도착한 직후 인민군의 사열을 받았다/1일 오전 계룡대에서 (중략) 육·해·공군 각 부대 사열을 받았다.(중략) 하루 시차를 두고 남북의 군 사열을 받는 진풍경을 연출하는 셈이다/인민군 의장대의 사열을 받는 곳은

신문의 경우 (4)의 ‘사열하다’보다 (5)의 ‘사열받다’의 용례를 훨씬 더 많은 언론사에서 더 많이 보였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은 사열을 한 것인가, 아니면 사열을 받은 것인가. ‘사열(査閱)’이란 부대의 훈련 정도나 장비 유지 상태를 살피는 일을 말한다. 따라서 노무현 대통령은 (1), (2), (4)처럼 의장대를 사열한 것이지 사열을 받은 것이 아니다. 노 대통령이 북에 가서 사열을 받는다는 말은 참으로 어이없는, 상황에 맞지 않은 말이다. 이 ‘사열’을 혹 ‘환영’이나 ‘영접’ 또는 ‘충성 맹세’로 오해하여 ‘사열받다’라고 하는 것은 아닐까. 인민군 3군 의장대가 노무현 대통령의 사열을 받은 것은 의전상 최상의 예우를 표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노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넘기 직전 ‘평화의 메시지’에서 밝힌 소회처럼 금단의 선이 점차 지워지고 장벽도 무너져 평화와 번영으로 이끄는 길목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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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진 국어생활연구원 원장 gimhujin@hanafo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