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텨-ㄹ썩, 텨-ㄹ썩, 텨-ㄹ썩, ?, 쏴아/따린다, 부슨다, 문허 바린다/태산(泰山) 갓흔 놉흔 뫼, 집채 갓흔 바윗돌이나/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나냐, 모르나냐, 호통까지 하면서,/따린다, 부슨다, 문허 바린다. <최남선, 해에게서 소년에게, 소년, 1908>

‘소년’지 창간호 권두에 실린 위 작품은 정형률이 일부 보이고 주제가 문명개화에 머문 과도기적인 작품이었으나 현대시의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해 현대시 100년을 맞아 한국시인협회가 문학평론가들에게 물어 한국 현대시사(現代詩史)에서 대표가 될 시인 열 명과 그 대표작 열 편을 뽑았다. 여기에 뽑힌 시인, 그 작품의 일부, 실린 책을 발표순으로 보기로 한다. 표현, 표기 등은 어문 규정에 맞지 않더라도 그대로 둔다.

○나 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말없이 고히 보내드리우리다//영변에 약산/진달래꽃/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가시는 걸음걸음/놓인 그 꽃을/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김소월, 진달래꽃, 1924>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항하야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참어 떨치고 갔습니다. <한용운, 님의 침묵, 1926>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린거린다./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다거린다./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정지용, 유리창, 조선지광, 1930>

○13人의아해(兒孩)가도로(道路)로질주(疾走)하오.<길은막다른골목길이적당(適當)하오.>/제(第)1의아해(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이상, 오감도, 조선중앙일보, 1934>

○강나루 건너서/밀밭 길을/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길은 외줄기/남도 삼백 리//술 익는 마을마다/타는 저녁놀/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 <박목월, 나그네, 상아탑, 1946>

○고향(故鄕)에 돌아온 날 밤에/내 백골(白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어둔 방은 우주(宇宙)로 통하고/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윤동주, 또 다른 고향,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백석,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 (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학풍, 1948>

○나는 시방 위험(危險)한 짐승이다./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미지(未知)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존재(存在)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김춘수, 꽃을 위한 서시, 문학예술, 1957>

○내 마음속 우리 님의 고은 눈썹을/즈문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하늘에다 옴기어 심어 놨더니/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서정주, 동천(冬天), 1966, 현대문학>

○풀이 눕는다/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풀은 눕고/드디어 울었다/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다시 누웠다//풀이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김수영, 풀, 거대한 뿌리, 창작과 비평, 1968>

위의 시인과 작품 말고도 시단(詩壇)과 시사(詩史)를 빛낸 분은 많다. 기형도, 김영랑, 김종삼, 김현승, 박두진, 박재삼, 신동엽, 신석정, 이상화, 이용악, 이육사, 조지훈을 비롯하여 수많은 시인이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명시를 남겼다. 그러기에 시인들을 줄 세우고 등급을 매기는 일은 적절치 않다는 의견도 있다. 예술 작품을 두고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시각에 따라 그 평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위 협회에서도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고심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시인이 1만 명 내지 3만 명이 된다는 우리나라. 그래서 시인의 나라라는 우리나라. 이 가을에 우리도 시인이 되어 그럴듯한 시 한 편을 써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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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진 국어생활연구원 원장 gimhuijin@hanafo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