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척거리는 2007 대선정국이 하도 답답해서였을까.

한국일보가 10월 16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54%가 “우리사회 시대정신은 경제성장이다”고 응답했다.

이런 응답의 저변에는 대선 60여 일을 앞두고 과반수 이상의 시민이 느끼는 1987년 이후 우리사회에 대한 인식이 응어리져 있다.

87년 민주화 이후 20년 동안 한국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은 ‘1997년 외환위기, IMF 구제금융’이라고 대답한 이들이 52.4%나 됐다.

또한 시민이 느끼는 삶의 질을 20년 전(87년), 10년 전(97년)을 비교해 봤다. 34% 가 “IMF이후 삶이 질이 향상됐다”, 32%가 “더 나빠졌다”로 나왔다.

이 여론조사는 결론 짓고 있다. IMF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상처를 일으킬 당시의 대통령 김영삼(YS)은 이번 한국일보 여론조사가 있기 1개월 여 전(9월12일) 월간 경제풍월과 가진 인터뷰에서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이 야당 시절부터 그를 취재했던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남시욱 세종대 석좌교수와의 인터뷰를 요약한다.

<< IMF 외환위기 당시 경제팀의 위기의식이 부족하지 않았느냐에 대해, 그때 이경식 한은총재를 통해 매일 외환을 체크하고 최선의 조치를 강구했지만 결과적으로 역부족이었다는 평가는 어쩔 수 없습니다.

당시 외환위기를 맨 먼저 보고해 준 사람이 홍재형 의원(95년 세계화 내각 때 경제부총리)이었어요. “그대로 두면 큰일 납니다. 긴급 대비해야 합니다”라고… 그때 홍재형을 경제부총리를 시켰어야 했는데 정말 아쉬워요. 그가 고민하다가 이인제 당으로 가 버렸어요. 이런 난리통에도 강경식 부총리는 지방으로 연설하러 다니다가 야단을 맞았지요.

IMF 위기의 책임은 대통령이던 나에게 있었지만 DJ(김대중)에게도 상당한 책임이 있었음이 분명해요. 그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IMF 협정을 바꾸겠다”는 식으로 혼란을 더욱 촉발시킨 책임이 큽니다.>>

김 전 대통령은 그 당시 대선정국이 한창일 때 한나라당이 노동법, 한은관계법을 날치기 통과시키고 이를 몰고 온 ‘기아차 사태’를 각 당 대통령 후보가 국민에게 이슈로 이용한 것이 사태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지난 9월 17일 미국에서 나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4위에 오른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1926년, 뉴욕대 경제학 박사, 레이건~클린턴~부시Ⅰ,Ⅱ까지 이사회 의장, 2006년 4월 퇴임)의 자서전 ‘격동의 시대 신세계에서의 모험’에는 다른 게 적혀 있다. 이를 요약한다. <<1997년 한국 금융위기는 나에게 쇼크였다. 이제 세계 11위 경제국이 된 한국, 러시아보다 경제규모가 2배인 이 나라는 제3국 개발도상국가가 아니라 제 1국 선진국이다. 몇 달 전부터(97년 11월 이전) 금융위기가 온다고 했지만 한국은행은 외환보유고가 250만 달러라고 언명하고 있었다.

이사회의 수석 경제분석가인 찰리 시그먼이 11월말 한은 측에 물어봤다. “왜 보유외환을 풀지 않는가”. “우린 보유 외환이 없소.”

그때 우리가 몰랐던 것은 한국 정부가 보유외환을 갖고 ‘돈놀이(Play Game)’를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한국 정부는 비밀리에 외환 대부분을 민간은행에 팔거나 빌려줬으며 이로 인해 더 많은 악성대출을 가져 왔다.

태국 말레이시아 등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한 뒤인 11월초 나는 일본은행 고위간부로부터 들었다. “댐이 붕괴됐다. 일본은행은 한국에 대출한 수백억 달러의 차관을 연장하지 않을 것이다.”

댐을 막는데 필요한 I·M·F 자금은 550억 달러였다. 재무부 장관 로버트 루빈과 FRB(연방이사회) 특별 대책팀이 자금을 끌어 들이는 데 몇 주가 걸렸다. 또 새로 끌어들이는 데 역시 몇 주가 걸렸다. 새로 대통령에 당선된 김대중의 협조가 필요했다.

한국의 외환위기 해결에는 루빈과 백악관 수석경제비서 래리 서머스의 노력이 컸다.>>

김 전 대통령과 그린스펀의 97년 외환위기에 대한 인식은 내 나라와 남의 나라라는 차이만큼이나 크다.

또한 그 때를 겪었던 시민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

그 아물지 않은 인식은 이번 대선에 어떤 투표로 나올까.

대선 후보들은 2001년 2월에 나온 ‘김영삼 대통령 회고록’과 지난 10월 20일 번역되어 나온 그린스펀의 ‘격동의 시대’를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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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