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유착(癒着)이 드러났다. 교원유착(敎院癒着)이다. 당연히 떨어져 있어야 할 학교와 사설 학원이 서로 엉켜 공생 관계를 유지했음이 밝혀진 것이다.

최근 김포외고 시험문제 유출 사건은 교사 개인과 특목고 사설 학원장 간의 우발적이고 일회성 거래가 아님이 곳곳에서 드러나며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우수 학생을 다수 지원토록 밀어주는 대가로 입시 문제를 건네 받는 커넥션을 뛰어 넘어 시험문제 유형을 ‘돈으로 사고 팔았다’는 특목고 학원 강사의 고백까지 나왔다.

■ 2005학년도 시험 문제 유출설

외고와 특목고 학원간의 유착 의혹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5학년도 시험 문제 유출설이 제기된 적도 있다. A 외고 시험을 치른 수험생들 입에서 “학원 교재 문제와 어떻게 토씨하나 안 틀리고 똑같냐” “학원 최종 모의고사 문제에서 상당히 많이 나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탈락생 학부모가 검찰에 고발까지 했던 바가 있다.

2005학년도는 서울 소재 6개 외고가 일반전형 문제를 공동 출제하기 시작한 해. 묘하게도 올해는 경기도 9개 외고가 공동 출제하기 시작한 첫 해인데, 또 다시 시험문제 유출설이 불거졌고 사실로 확인됐다.

지난해 B 외고의 한 시험장에서는 “시험 감독이 잠시 자리를 비우는 등 관리가 소홀해 커닝이 이루어졌다”는 말이 나돌아 학교 측이 해명에 나서기도 했다. 이 시험장은 C 특목고 학원이 단체로 원서를 접수시킨 수험생들이 몰려 있던 곳이었다는 입방아도 인터넷상에 떠돌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외고와 특정 학원의 조직적인 유착관계 여부를 확실히 조사해 오랫동안 쌓여온 의혹을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특목고 학원 관계자는 “문제 유출이라는 노골적인 방법까지 동원한 점을 감안할 때 외고가 개별 출제를 했던 예년에 특정 학원 교재에서 발췌한 유사 문제를 출제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 '사이 좋은' 신설 외고 추천

학원은 외고 원서 접수 직전 모의고사 자료를 바탕으로 수험생과 학부모에게 합격 가능성이 높은 외고를 추천해 준다. 여러 해 누적된 외고 입시 정보를 갖고 있는 사설 학원의 한마디는 ‘합격에 목숨 건’ 수험생에게 거부할 수 없는 힘을 지닌다. 이때 학원과 ‘사이 좋은’ 신설 외고를 적극 추천한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사설 학원이 주최하는 외고 입시 연합 설명회에 외고 입시 홍보 교사들이 참석해 학교 홍보를 해온 건 오랜 관행이지만 학원 자체 학부모 설명회에도 외고 교사가 참석해 자리를 빛내주기도 한다. 이는 영락없이 학원 홍보를 도와주는 꼴이다.

학원은 입시원서 단체접수 대행도 맡는다. 수험생들에게 편의제공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외고와 돈독한 관계를 형성하는 기반이기도 하다. 합격자 공식 발표 이전 수험생에게 ‘합격’ 소식을 먼저 전해 줄 수 있는 특전(?)까지 누릴 수도 있다.

모든 외고가 사설 학원과 유착된 건 아닐 것이다. 서울 소재 6개 외고는 몇 년 전부터 시험문제 출제 전 대형 특목고 학원의 교재를 심층 분석, 유사한 문제를 피하기 위해 노력해 왔고 D외고는 학원의 원서단체접수도 거부하는 등 학원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유착의 근본적인 고리는 외고가 중학교 교육 과정을 넘는 수준의 시험 문제를 출제하는 것에서부터 비롯된다. 중학교 공교육 시스템을 무시하고 고교 수준의 선행 학습을 요구하는 현행 외고 입시는 수험생을 사설 학원에 의존하게 만들고 특목고 입시생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사설 학원에게 외고와 부정한 거래를 할 수 있게 하는 힘을 부여한다.

지난해 한 외고 입시에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명예만큼 의무를 다한다는 프랑스 격언)’가 출제되었다. 외고는 학생들에게 이를 강조하기 이전에 스스로 되새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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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덕기 교육칼럼니스트 beaba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