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대통령이 취임한지 2개월도 안되었다. 4월9일 총선까지도 20일 밖에 남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을 경선 때부터 지지했던 김영삼(YS) 전대통령은 3월 19일 피곤한 모습이었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의와 절개, 지조를 지키는 것이다. 선거에는 국민의 지지가 제일 중요한 데 한나라당에서 공천했다는 사람보다 여론조사에서 7배나 높은 지지를 받은 김무성 의원을 낙천시키는 것이 공천이냐.…그렇기 때문에 이 버릇을 고쳐야 한다.

‘버르장 머리’를 고쳐서 압도적 다수로 김 의원을 국회로 보내는 일을 해달라” YS가 19일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김무성 의원의 부산 남구을 선거사무실을 방문해 쏟아 낸 ‘버르장 머리’없다는 비난이었다.

이런 ‘버르장 머리’ 비난의 싹은 YS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조선일보에 지금은 ‘김대중 고문’으로 칼럼을 쓰는 김대중 전 주필.<1939년생. 서울 법대. 조선일보 기자(66년), 주미특파원, 정치부장(81년), 편집국장(89년), 주필(90년), 고문(2004년), 시사저널이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1위(96년)> 그는 대선 전인 2007년 12월 2일자 칼럼에서 썼다.

<<2007년 대선은 좌파와 우파의 대결이다. 세계적으로 철이 지난 ‘이념’의 싸움이겠지만 북의 김정일 세력을 머리에 이고 사는 우리에게는 아직은 풀어야 할 마지막 숙제인 셈이다. 새로운 ‘우파의 5년’을 택할 것이냐, 아니면 ‘좌파의 15년’으로 할 것이냐 그것이 이번 대선의 문제다. 인물과 정책과 구호와 온갖 네거티브들은 단지 대리 전쟁을 하고 있을 뿐이다.>>

김 전 주필은 해를 넘겨 이명박 후보가 당선인이 된 1월 4일자에 “이명박의 첫 ‘대북’ 불안하다”는 특별 기고를 냈다. 그는 “이 당선인이 북한의 핵신고 불이행을 따지는 것보다 북한의 신년사설이 한나라당과 이 당선인을 매도하지 않은 것에 안심하는 것”을 비평했다. 그 대목을 요약한다.

<<그러나 사태는 이명박 당선인 자신대로 전개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그가 생각한 만큼 녹녹한 상대가 아니다. 북한 당국은 기실 별로 가진 것도 없으면서 세계 최강의 미국과 친선적인 중국을 상대로 그들을 가지고 놀 정도의 배짱과 능란함을 보여 왔다. 그동안 얻을 것은 다 챙기다가 북핵 신고 약속 만기일에 즈음해 “6자회담 참가국들이 말은 경제적 보상의무 이행이 늦어지고 있다. 불능화의 속도를 조정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다”(현학봉 북한 외무성 미국 부국장)고 오리발을 내밀 정도로 교활하고 담대한 상대다.>>

스스로를 ‘우파’의 언론인으로 보는 김대중 고문은 이 당선인에게 충고했다.

<<그(이 당선인)는 오히려 이것을 좋은 기회로 잡아야 한다. 북한의 북핵 신고 약속 불이행과 신년 사설을 계기로 삼아 그가 전임자와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언제나 남쪽을 윽박지르고 명령하는 ‘버르장 머리’를 지금 고치지 않으면 그의 임기 내내 골칫거리로 남을 것이다. 김정일이 노린 것도 바로 그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 당선자는 북한이 약속시한을 스스로 파기했을 때 엄중히 대했어야 했다. 더구나 북한과의 게임에서 내용(성실신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절차(시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터득했어야 했다. 더구나 북한 당국자의 설명대로라면 미국 등이 ‘경제적 보상’을 해주지 않아서 시한을 안 지키는 것이라는데, 거기다 대고 “성실하고 확실한 신고를 위해서라면 좀 늦어도 괜찮다”는 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상황 파악 능력을 의심케 한다>>

칼럼니스트 김대중이 ‘버르장 머리’라는 말을 YS보다 먼저 썼다. ‘버릇 없는 이’는 김정일 위원장이었다. YS에게 ‘버르장 머리’ 없는 이는 이명박 대통령 이다.

두 사람은 ‘버릇 없는 것’이 바로 잡히기를 이 대통령에게 바라고 있다. 그런 길이 이 대통령에게 있을까?

대답이 될는지 모르겠다. 서울대 명예교수며 ‘창작과 비평’ 창간인이며 현재 편집인인 백낙청. <1938년생. 하버드대 철학박사(72년), 서울대 영문과 교수 (80-2002년), 6ㆍ25 남북공동선언 남측준비위원회 상임대표(2005년부터), ‘백낙청 회화록’(2007년).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2006년) 저자>. 그는 3월 3일 나온 창작과 비평 ‘87년 체제의 극복과 변혁적 중도’ 라는 대화록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 ‘버르장 머리’가 어떠했으면 좋을까에 대해 말했다. 주요 대목을 요약한다.

<<북핵문제는 국제적인 현안이고 우리 국민은 대부분이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걸 강조하는 게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건 사실이죠. ‘북핵 해결’이라는 것을 어떤 차원에서 생각하느냐에 따라서는 그동안 햇볕정책을 통해 추진해온 방안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어요. 가령 아직 완료가 안됐지만 불능화 단계가 순조롭게 마무리되고, 다음 단계로의 진행이 확실해지는 정도만 돼도 일단 해결도상에 올랐다고 보고 통 큰 경제지원을 시작하겠다고 한다면, 참여정부의 정책과 레토릭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내용상 큰 차이는 없는 거고요. 더구나 말 그대로 실행에 옮겨진다면 오히려 이명박 정부가 세게 나와서 일을 더 잘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테지요.>>

이 대통령의 통일문제팀은 YS, 백낙청 교수, 김대중 고문과 이 대통령과의 ‘버르장 머리 있는’ 대화기회를 만들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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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