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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필요한 사람'에게 제공되는 '보편적 복지'가 정답

2012년 선거 거치며 복지 지출 급증, 기존 논쟁 프레임 벗어나야
'기본적 필요' 충족하지 못한 시민들에게 제공되는 게 '보편적 복지'
조세·사회보험료·본인분담금 등 다양한 복지 재정 수단 검토해야
  • 권혁주 서울대 교수
[권혁주 서울대 교수 칼럼] 자동차세·지방세 인상 철회와 연말정산 파동에 이어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을 둘러싼 잇단 번복 등으로 정부 정책이 흔들리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국회 연설을 통해 "증세 없는 복지는 국민을 속이는 일"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이 그동안 고수해온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새로 선출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중(中)부담·중(中)복지'라는 방향으로 복지 체계를 개편하자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무조건 정책 노선을 바꾸는 것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복지 정책을 재편하거나 증세를 결정하기 전에 먼저 우리나라가 추구해야 할 복지국가의 올바른 방향이 무엇인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2012년 총선·대선 '무상 복지' 논쟁으로 복지 지출 급증

최근 복지 지출이 급격히 증가하게 된 발단은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전후해 '무상 복지' 논쟁이 벌어진 데서 찾을 수 있다. 앞서 있었던 2010년 지방선거에서 무상 급식으로 상당한 효과를 거둔 야당은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무상 의료까지 주장하였고, 이후에 보편적 복지를 가장 중요한 공약으로 내놓았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도 '국민 행복'을 내세우면서 생애 맞춤형 복지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대선에서 이긴 박근혜정부는 이미 시행되고 있던 무상 급식에 더해 무상 보육을 도입했고, 올해부터 기초연금제를 실시하고 있다. 이로 인해 복지 예산이 급격히 증가해 지방정부들은 급기야 더 이상 무상 급식과 무상 보육 예산을 편성할 수 없다고 아우성을 쳤다. 급격히 증가하는 복지 지출을 증세 없이 조달하겠다던 정부가 담뱃세를 인상한 데 이어 연말정산에서 세금을 추가 징수하기에 이르자 일반 국민들은 불만을 터뜨렸고 대통령 지지율은 급락하는 상황에 이르게 됐다.

'기본적 필요' 충족하지 못하는 시민들에게 제공되는 '보편적 복지'

여기서 짚어봐야 할 대목은 무상 복지가 과연 보편적 복지인가 하는 점이다. 소득 수준이나 필요를 고려하지 않고 모든 국민에게 복지 혜택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복지 체제는 재정적으로 당해낼 수 없다. '보편적 복지'는 인간으로서 반드시 누려야 할 기본적 필요를 충족하지 못하는 시민들에게 사회적 권리로서 복지가 제공되는 것이다. 스스로 필요를 충족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도 무조건 제공하는 것이 '보편적 복지'는 아니다. 학교에서 모든 아이에게 무조건 무상급식을 제공할 것이 아니라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에게 급식을 제공하고, 다른 아이에게는 그것이 친구의 권리임을 이해시키고 존중하도록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사회적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민간 어린이집을 급격히 늘리고, 아이를 집에서 돌보는 가정에게도 당장에 보육지원비를 제공하는 것이 보편적 복지로 가는 길은 아니다. 오히려 단계적으로 공립 어린이집을 확대하는 것이 보편적 복지로 갈 수 있는 확실한 길이라고 생각된다. 이밖에도 노인 장애인 등을 위해 사회적으로 필요한 공공 서비스 기반을 구축하여 필요한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 보편적 복지인 것이다.

기존의 보편적·선택적 복지 논쟁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따라서 그동안 우리 정치권과 언론에서 쓰던 개념을 다소 조정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국민 모두에게 제공되는 복지를 '보편적 복지'(universal welfare)라고 부르고, 필요한 사람에게만 제공되는 복지를 '선별적 복지' 또는 '선택적 복지' (selective welfare)라고 주장해왔다. 복지 구조조정 방안과 관련해 우리 사회의 갈등·대립 구조에서 벗어나려면 전통적인 보편적·선별적 복지 논쟁 프레임을 극복해야 한다. 앞으로 지향해야 할 복지 정책의 방향은 '필요한 사람'에게 기본적 복지 혜택이 제공되는 '보편적 복지'가 돼야 한다. 국가가 진짜 필요한 사람에게 '사회적 권리' 충족이라는 차원에서 광범위하게 적극적으로 기본적인 복지 혜택을 부여하는 것이다.

조세·사회보험료 등 다양한 복지 재정 수단 검토해야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납세자인 국민과 기업들도 복지를 위한 세금 부담에 좀 더 적극적인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복지를 위한 조세 부담은 타인뿐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혜택이 돌아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구나 사회적 위험에 노출돼 있고, 그러한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는 것이 복지 제도이다. 복지가 잘된 나라는 사회적 갈등이나 범죄가 적어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된다. 따라서 조금 더 세금을 내는 것이 나중에 더 큰 부담을 줄이는 길이 된다. 정부도 법인세 인상은 안 된다는 경직된 입장을 취하기보다는 다양한 재정 수단을 현실성 있게 검토하고 채택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조세 외에도 사회보험료, 본인부담금, 서비스 사용료 (저소득층은 면제) 등 다양한 복지 재정 수단을 유연하게 구사하여 저소득층의 부담은 줄이면서도 국민 전체적으로 부담의 형평성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이렇듯 국민의 기본적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복지 국가를 지향하면서 재정적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고, 경제성장에도 기여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올바른 복지 정책 방향이다.

■권혁주 교수 프로필
서울대 정치학과, 서울대 정치학석사, 옥스퍼드대 정치학박사-유엔 사회개발연구소(UNRISD) 조정관-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현) 서울대 아시아개발연구소 부소장(현) / <한국에서의 복지 국가(1998)>(The Welfare State in Korea) 등 복지 정책 관련 저서 및 논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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