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기음반 등 유품 267점 공개1935년 오케레코드에 소속돼… 일본·중국 오가며 전설적 활동한국전쟁때 납북 비운의 연주가

오케레코드 조선악극단원 장흥상회 앞 기념사진.
최근 들어 국립민속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등 중요 박물관들은 전시 아이템을 고미술사 중심에서 근현대사로 테마와 이슈를 이동하는 추세다. 자연스럽게 상당 예산을 근현대사 자료수집에 투입하면서 일제강점기 이후 자료들이 몸값을 올리면서 그 가치에 대한 평가도 확대되고 있다. 근현대사가 중심 전시테마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최근 2010년 개관부터 5년간 수집한 자료 8만 여점 중 일부를 두 권의 책으로 묶어 발간했다.

이번에 발간된 소장 자료집들은 박물관이 수집한 자료 중 현대사의 시대성과 상징성을 가진 대표적인 자료를 일반에 공개하자는 공적인 취지에서 기획되었다. 소장자료집 제1권 '런던에서 온 비밀 전보: 1962년 통화개혁의 숨은 이야기'는 1962년 6월 10일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실시한 통화개혁과 관련된 소장 자료 98점을 소개하고 있다. 소장자료집 제2권 '트럼펫 연주자 현경섭'은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에서 오케레코드의 트럼펫 연주자로 활동했던 현경섭의 유품 267점을 최초로 공개했다.

현경섭이란 트럼펫 연주가를 기억하는 대중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일제강점기 최대 레이블이었던 오케레코드에서 운영했던 조선악극단의 핵심 연주가로 음반 녹음과 공연에 참여한 중요 연주가라는 사실에는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1913년에 태어난 현경섭은 22살 때인 1935년에 오케레코드 트럼펫 연주가로 소속되어 전설적으로 회자되는 일본과 중국 공연에도 참여했던 인물이다. 해방이후에도 K.P.K악단 소속 악사로 왕성하게 활동했지만 민족의 비극인 한국전쟁 때 납북된 비극의 주인공이다.

자료집에는 현경섭이 상세히 기록한 2년간의 일기와 당대 대중음악가들의 활동 여건과 시대상을 보여 주는 희귀 문서와 사진, 그리고 최초 공개되는 음원을 포함한 유성기음반까지 4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여 총 267점을 수록했다. 또한 지면의 제약에서 벗어나 유품에 포함된 모든 음반의 음원과 일기의 모든 면의 이미지와 텍스트 등을 DVD에 담아, 보다 쉬운 이해와 함께 연구자들에게 1차 사료로서 활용될 수 있도록 한 점은 평가할 만하다.

자료집에 소개된 유물 리스트의 실체를 보고 나니 놀랍다. 이제까지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자료들이 무수하기 때문이다. 일제의 예술인 통제를 증언하는 일제강점기 기예증이나 각종 음악단체의 인물증명서는 거의 유일본일 가능성이 높다. 다양한 활동을 증언하는 사진들 또한 공개된 것이 극소수일 정도로 처음 보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오케레코드 조선악극단 1930년대 공연모습.
총 115점의 유성기 음반자료 중에 포함된 주로 홍보와 시청을 위해 전국의 도소매 음반 상점에 배포된 견본품과 음반사 내부인사에게만 배포된 시험판의 존재가치는 대단히 중요하다. 실제가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고 정식으로 발매가 되지 않아 그동안 존재조차 몰랐던 남인수, 장세정이 한국어로 함께 부른 버전과 남인수가 솔로로 일본어로 노래한 '경성 룸바', 채규엽의 '남양 아가씨' 같은 진귀한 미발표 곡까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현경섭 자료집 발간을 몇 년 앞서 유품의 존재를 단국대 장유정교수를 통해 인지했었다. 그때 1억 원 이상을 호가할 정도로 유품에는 귀중한 자료들이 즐비하다는 언질을 접했다. 무엇보다 기록보존이 취약한 당대의 대중음악계와 사회 공기를 상세하게 기록한 그의 일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솔직히 이 귀중한 자료가 상업적 대상이 되어 사분오열된다면 끔찍하다고 걱정했었다. 다행히 그 가치를 알아 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수장고 리스트에 추가되었고 근사한 자료집으로 탄생되었으니 천만다행한 일이다.

영영 이름이 사라질 뻔 했던 비운의 연주가는 이 자료집을 통해 1950년 6월 서울 극도극장 K.P.K 공연을 마지막으로 행방불명된 이후 65년 만에 세상 빛을 보게 되었다. 아무도 기억하는 이가 없는 그의 이름 석 자는 망실된 해방이전의 한국대중음악사의 한 부분을 복원시키는 귀중한 유품을 보관해 온 유족들과 박물관의 자료집 발간을 통해 이름 없는 연주가에서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의 대중음악계를 증언하는 전설이 되었다.


현경섭 일기.
현경섭 기예증명서.
현경섭 사진.
트럼펫 연주자 현경섭 자료집.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