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만화책·포스터 영역 확대장기 불황 지속으로 옛날 문화의 그리움 표출복고문화 기류 타고 경매시장서 고가에 낙찰유성기음반 윤심덕의 '사의찬미' 1억원 호가

대중음악 수집품.
좋은 말로 '수집' 속된말로 '모으기 병'에 걸린 사람들을 '마니아'라 부른다. 요즘 온 오프라인의 문화예술품 경매장에 한 번 가보라. 그림 한 점, 고서 한권, 음반 한 장, 만화 책 한권, 영화 포스터 한 장이 어마어마한 가격에 낙찰되는 광경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골동품의 진위와 가치를 따지는 KBS TV '진품명품' 또한 장수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은 지 오래다. 과거 고미술품 위주로만 형성되었던 문화예술품 경매는 최근 온오프라인에 걸쳐 시시콜콜하게 여겨졌던 근현대사 생활용품으로까지 그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왜 이렇게 수집열기가 뜨거워 진 것일까? 90년대 말 IMF외환위기 이후 장기간 불황이 계속되면서 좋았던 시절의 문화와 낭만에 대한 그리움에서 싹 튼 복고문화는 전 방위적으로 그 위세를 떨치고 있다. 과거 문화에 대한 그리움은 소소한 생활용품까지도 가치를 부여하는 인식의 변화로 이어지며 수집문화 영역확대에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복고문화의 기류를 타고 급격하게 형성된 수집문화는 경매의 활성화를 불러왔다. 최근 들어 힘이 빠진 상태이긴 하지만 그림경매만 해도 오래되었거나 최신작 그리고 유명 혹은 신진 작가의 작품 여부에 상관없이 가격이 엄청나게 폭등하는 부작용까지 빚어냈었다.

미술품 수집가들은 자신이 수집한 그림 중에서 제2의 박수근이나 이중섭의 작품이 탄생하는 로망을 누구나 품는다. 타 분야도 마찬가지다. 수집품의 가격이 수직상승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와는 별도로 자신의 안목이 증명되고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길 원하는 측면도 분명 존재한다. 실제로 단순히 투자나 취미로의 수집에 머물지 않고 수집 자료를 모아 연구를 시도해 전문서적을 발표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만만치 않다. 이는 과거 개인의 취미활동 수준에 머물렀던 수집이 하나의 경제, 문화적 현상으로 진보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수집의 역사는 장구하다. 조선 24대 왕 헌종은 인장 수집광으로 유명하다. 폭군 연산군은 당나귀, 양, 개 등 온갖 동물들을 광적으로 수집해 국고가 낭비되고 국정이 피폐해질 정도로 동물수집광이었다. 조선 정조 때 '시. 서. 화 3절'로 불렸던 신위는 돌에 미친 사람이었다. 그는 중국에 사신으로 갔을 때도 "가는 곳 마다 수석을 주워 수레에 싣고 다녔다"고 전해진다. 정조의 사위 홍현주도 먹고 자는 것을 잊을 만큼 그림 수집벽이 남달랐던 인물이다. '조선의 책벌레'로 유명했던 허균 역시 책 수집광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간송 전형필은 국가대표 수준의 수집가로 유명하다. 그가 수집한 소장품이 가득 찬 간송미술관은 일반에 공개되는 날이면 관객들이 장사진을 이룰 정도다. 당대의 간송 전형필은 자신의 수집취미를 부자 집 아들의 돈놀이나 호사로 보는 왜곡된 당대 대중의 비난에 시달렸지만 지금의 시점에서 그가 수집한 문화재들은 곧 '조선의 혼'으로 평가받는다. 이는 개인적 취미나 수집벽 차원을 넘어 민족적, 역사적 사명의식의 차원을 포괄하는 '수집가의 소명의식'을 잘 보여주는 좋은 사례일 것이다.

불경기 때문일까? 대중음악 자료 경매가 활성화되었기 때문일까? 최근 실물을 접하지 못했던 무수한 대중문화자료들이 경매시장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경매는 은근 잠재해 있는 승부욕까지 작동시킨다. 금년 초에 무더기로 온라인 경매에 쏟아져 나온 희귀 유성기음반 때문에 하루 종일 아무 일도 못한 날이 있었다. 수 십장에 달하는 일제강점기 명곡들이 수록된 유성기 음반들이 경매시장에 나왔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사진으로만 봤을 뿐, 실물은 구경조차 못한 윤심덕의 '사의 찬미'는 최근 1억 원을 호가할 정도라 한다.

한류, K-POP으로 한국 대중문화가 위세를 떨치면서 대중음악과 한국영화, 만화, 잡지, 소설 등 근현대 자료들이 몸값을 한껏 불리고 있다. 그 흔했던 60-70년대 대중가요 lp, 선데이서울, 아리랑 잡지 등은 수십에서 수 백 만원을 호가하고 있다. 과거 보존해야 될 대상으로 보질 않아 버리기 1순위였던 근현대사 자료들이 요즘은 소위 돈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걸 두고 상전벽해라 했던가.



글ㆍ사진=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