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신해철은 대중음악계와 사회 적 현안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분명하게 냈던 뮤지션이다. 악성 댓글에 시달릴지언정 자신이 진행한 라디오, 방송 토론회, 온라인에서 독한 표현으로 소신을 밝혔다. 직설적이고 과격한 언어로 인해 '마왕', '교주'란 별명을 얻었지만 그의 노래가사에는 따뜻한 인간미가 느껴진다. 아직도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이 많은 이유일 것이다. 그의 수많은 근사한 노래들과 거침없는 언변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는 결과를 초래했지만 많은 이들은 그로인해 위로 받고 통쾌함을 느꼈다.

음악 안에서 구현된 신해철의 세상은 경계가 없었다. 장르의 편식이 없었고 사랑 타령보다는 삶과 자아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탐구했고, 청춘의 좌절과 희망을 따뜻하게 격려하고 응원했다. 1주기 추모식에서 공개된 묘비에는 '히어 아이 스탠드 포 유'(Here I stand for you)의 노랫말이 새겨졌다. 2010년 신해철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 때 "'민물장어의 꿈'은 내 장례식장에 울려 퍼질 곡이고 노래 가사는 내 묘비명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추모 곡으로 널리 불린 '민물장어의 꿈'이 아닌 유족의 뜻에 따라 이 곡이 결정된 이유다.

서울시는 강북구 번동 '북서울꿈의숲'에 고 신해철의 추모비를 세우기로 결정했다. 이곳에는 드림랜드 시절, 경기도에서 이전해 온 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 노래비가 있지만 '북서울꿈의숲'으로 용도 변경된 이후 대중가수의 추모비는 처음 건립된다. 고 신해철의 노래비는 2008년 암 투병 끝에 숨진 '광화문연가'의 작곡가 이영훈의 덕수궁돌담길에 조성된 지인들이 비용을 댔고 서울시가 장소를 제공한 노래비와 같은 방식을 따랐다. 신해철 팬클럽 '천기군'이 주도한 클라우딩 펀딩은 목표를 초과 달성해 제작비용을 마련했다.

나는 서울시의 요청으로 고 신해철 노래비 건립 심사에 참여했다. 그가 뛰어난 뮤지션이었다는 점에 이견을 달 대중은 없을 것이다. 2차례에 걸쳐 진행된 그의 노래비 건립에 대한 타당성 심사에서도 심사위원들의 분위기도 호의적이었다. 일단 첫 회의에서 팬클럽에서 제시한 디자인 시안은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신해철 노래비 건립 자체에 대한 부적합이 아닌 신해철에 어울리는 더 좋은 장소와 디자인을 위한 숨고르기였다. 당연, 수정안에 대한 2차 심사는 초스피드로 만장일치 통과되었다.

추모비 조성작업은 지난해 팬클럽 회원 정성갑씨가 "기념비를 세우고 싶은데 어떻게 허가를 받아야 할지 몰라 질문드립니다."는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남긴 트윗에 박 시장이 "적극 검토하겠다"고 답하면서 시작되었다. 팬클럽 회원들은 고인이 인디밴드를 위해 공연장을 마련했던 홍익대 앞을 검토했으나 그의 노래 가사와 책을 뒤지다 새로운 단서를 얻었다. 북서울꿈의숲을 둘러싸고 있는 번동에서 태어난 신해철은 고등학교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명반으로 꼽히는 록그룹 넥스트 초기 앨범의 배경은 곧 그의 성장기다.

"처음으로 죽음을 가르쳐 줬던 곳"(날아라 병아리)도, "함께 있지만 외로운 사람들"(도시인)로 상징되는 도시화를 경험한 곳도 바로 번동과 미아리 일대다. '아버지와 나' '인형의 기사' '영원히'도 그의 청소년기 경험에서 나온 노랫말을 담고 있다. 신해철의 노래비는 12월 24일 정문 광장에서 제막될 예정이다. 날짜는 고인이 1988년 '그대에게'를 불러 대학가요제에서 우승하며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낸 바로 그날이다. 신해철의 사유하는 흉상과 문(門)이 추상적으로 결합되어 시민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벤치형태로 제작될 노래비에는 넥스트 3집에 실린 '세계의 문' 가사('흙먼지 자욱한 찻길을 건너/숨 가쁘게 언덕길을 올라가면/단추공장이 보이는/…')이 새겨진다. 시일이 지체되어 일정이 빡빡하다.

신해철의 죽음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아깝다. 이제 한국대중음악계의 영웅 한 명 쯤은 만들어낼 시기가 되었다. 그의 노래비는 그 자체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를 그리워할 수 있는 '신해철 거리'나 고 유재하처럼 뛰어난 뮤지션들을 발굴하는 '신해철 음악페스티발'로 가는 작은 첫 걸음이 되어야 마땅하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