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이 넘은 할아버지가 필자의 한의원 문을 빼꼼히 열고서 “알레르기성 비염도 치료가 됩니까?”하고 간호사에게 물어온다. 간호사도 잘 모르는 터라 원장인 필자에게 들으셨죠? 하고 되묻는다. 필자는 호기롭게 “알레르기 비염 그거 별거 아니에요.”라고 말하면 할아버지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병원에서 15년 이상을 못 고친 알레르기성 비염을 고친다니 얼 척이 없기도 할 뿐 아니라 저렇게 말하는 필자에 대해 호기심도 발동했으리라. 물론 알레르기성 비염에서 완치란 말은 없다. 단지 불편한 것을 치료해주고 더 이상 증상이 악화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도록 할 뿐이다. 알레르기성 비염의 대표적인 증상이 재채기 하면서 콧물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흘러내려 하루에도 수십 번 씩 콧물을 풀어 대느라고 일상생활을 못할 정도가 되고, 특히 수능을 앞둔 수험생들에게는 이만한 저주가 따로 없을 정도다. 하도 코를 많이 풀어서 코 주위는 빨갛게 부풀어 올라오는 것도 모자라 헐어버리고 살집이 터진다. 특히 밥상머리 앞에서는 밥과 콧물이 뒤엉켜서 여간 곤란한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 아니다. 점잖은 식사자리는 갖은 핑계로 피하고 싶을 정도다. 2주일 정도쯤 치료하니 평소에는 콧물이 거의 나오지 않다가 찬바람 쐬면 조금 콧물이 나오다가 금방 중지되는 정도에 까지 이르게 되어 만족해했다. 2011년부터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투여되는 한방 보험약이 건강보험에 편입되어 한약을 쓸 수 있어서 그나마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게 되었다. 노인들은 평상시에 고혈압약, 당뇨약 같이 평생을 복용해야 하는 병원 약 외에 자제분들이 몸에 좋다고 해서 사다준 각종 보조제와 본인의 질병과 같은 질병을 앓은 이가 한 번 먹고서 싹 나았다고 알려준 비방대로 달여 온 약 등 매일 먹어야 되는 약들이 너무 많은 데 거기에다 먹어야 할 약이 한 가지 더 늘어난 셈이 되어 시행 초기만 해도 노인들이 한방약을 안 가져가겠다고 해서 곤욕을 치렀다. 그런데 이웃나라 일본만 해도 우리와 사뭇 다르다. 일본에는 꼭 같은 한방보험약을 의사들이 처방하는데 쯔무라제약 한 군데 한방보험약 매출이 1.2조원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매출이 높은 제약회사보다 높다. 일본의사 20만 명 중 80%가 한방약을 처방해서 나온 수치다. 국내에서는 단지 먹기 싫은 여러 약 중의 한 가지 약이지만 외국에서는 대접받는 한약이다. 노인이 겪는 질병은 기본적으로 기허(氣虛)와 혈허(血虛)를 바탕에 깔고 있어서 이 쪽으로 도움을 주는 한약과 치료하는 한약을 같이 써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노인에게 보험약을 쓸 때 한 종류의 치료 처방을 하루치 밖에 못 쓰기 때문에 약효를 내기가 어렵다는 아쉬움이 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면서 약효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하다가 꿀을 이용하게 되었다. 꿀의 종류는 여러 가지다. 벌이 어떤 꽃에서 꿀을 따오느냐에 따라서 색깔과 점도가 달라지고 효과도 차이가 난다. 효과는 그렇다 해도 독성물질이 있는 경우도 있다. 철쭉이나 진달래꽃에서 딴 꿀은 약간의 독성이 있고, 가을에 피는 꽃일수록 독성이 심하고 석청(石淸)은 한 숫갈만 먹어도 혼몽해지거나 응급실로 실려 갈 수 있다. 의외로 꿀에 보톨리누스균이 많이 살아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꿀은 오래 묵힌 것일수록 좋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꿀을 쓸 때는 생 꿀 말고 달여 놓은 꿀을 써야 한다. 앞선 생지황 칼럼에서 꿀을 달이는 것을 말했지만 한 번 더 말하겠다. 꿀을 넣고 불을 때면 꿀이 물처럼 된다. 계속 끓이면 순식간에 꿀이 위로 흘러넘친다. 이 때 쯤 불을 끄고 위에 둥둥 떠 있는 꽃가루와 이물질을 걷어내고 사용하는 데 이를 연밀(煉蜜)이라 한다. 꿀은 비위의 기운을 올려주는 보중(補中)과 건조한 걸 기름칠하는 윤조(潤燥), 팽팽한 것을 누그러트리는 완급(緩急), 해독(解毒)과 통증을 멎게하는 지통(止痛)작용이 있다. 위의 할아버지 환자의 경우 묽게 탄 꿀물에 소청룡탕(小靑龍湯)을 타 먹게 하고 침과 뜸을 놓아서 치료했다. 온몸이 찌뿌듯하거나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구미강활탕을 꿀물에 타서 먹게 한다. 이 처방들이 얼마나 좋은 지는 복용해본 사람만 알 수 있다.

하늘꽃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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