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회고록 파문 대응 무책임ㆍ무능 보여…대선 ‘악재’ 작용할 수도

文 위기관리능력ㆍ정체성ㆍ연대 한계 드러나… ‘무대응 전략’오판

‘문재인 대세론’ 대신 ‘문재인 대안론’ 부상할 수도 있어

‘북한 변수’ 어느 대선때보다 크게 작용…반기문 총장 반사이익

與 ‘색깔론’ ‘종북몰이’ 등 지나친 수구적 행태 대선에서 역풍 불러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대선가도에 큰 악재를 만났다. 2007년 11월 노무현 정부가 유엔의 북한인결권의안을 채택하는 과정에서 북한의 의사를 먼저 확인한 뒤 기권 표결했다는 내용이 담긴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송 전 장관은 2007년 11월 18일 청와대 서별관 회의에서 당시 김만복 국정원장이 “기권 여부 결정과 관련 북한에 물어보자고 제안했고,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전 대표는 “일단 남북 경로로 알아보자고 정리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진술이 사실이라면 문 전 대표는 ‘대북 사전 문의’에 사실상 동의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당시 송 전 장관과 함께 회의에 참석했던 김만복 국정원장, 이재정 통일부 장관, 백종천 청와대 외교안보실장의 주장은 다르다. 이들은 11월 16일 노무현 대통령이 주재한 회의에서 기권 결정이 이미 정해졌고, 18일 회의에서는 “대북 사전 문의”가 아닌 “ ‘사전 통보’를 하자”는 것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구나 “문 전 대표는 다수의 의견을 따랐을 뿐 자신의 의견을 먼저 말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이런 반격에 대해 송 전 장관은 “진실은 어디가지 않는다”는 말로 기존 입장을 거듭 재확인했다.

정권 비선 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씨가 관여한 것으로 의심받는 미르 재단, K스포츠 재단으로 수세에 몰렸던 새누리당은 문 전 대표를 향해 파상 공격을 시작했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송민순 회고록이 사실이라면 이는 대한민국의 주권 포기이자 심대한 국기문란 행위”라며 “국정조사, 국회 청문회, 특검, 검찰수사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그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했다.

한편, 야당은 문 전 대표 방어에 적극 나섰다. 추미애 더 민주 대표는 “우리나라 대통령과 집권당, 검찰 권력은 한참 낡은, 정말 환멸스러운 종북몰이 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르고 있다”고 비난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도 “정부ㆍ여당과 청와대가 시도 때도 없이 색깔론으로 계속 매도하려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거들었다.

정치권은 ‘송민순 회고록’이 진실 공방을 넘어 대선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파문으로 문재인 전 대표는 대선 후보로서의 치명적인 한계를 드러냈다. 첫째, 위기관리 능력의 한계다. 이번 회고록 파문의 핵심 쟁점은 “북한 인권 결의안에 대한 의견을 북한에 물어 봤느냐 여부이다. 그런데 문 전대표는 핵심을 비켜나간 채 대응 방식에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무책임한 행동을 보였다. ‘송민순 회고록’ 파문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그 질문은 안 하기로 했지요”라며 대답을 피하면서 “기억이 좋은 분들에게 들으라”고 반응했다. 이것은 국민을 무시하는 처사다.

심지어 문 전 대표는 파문 초기에 “박근혜 정부는 노무현 정부를 배우라”고 충고까지 했다. “새누리당은 북한 덕분에 존속하는 정당”이라며 “허구한 날 종북 타령과 색깔론을 국정 운영의 동력으로 삼고 있으니 우리 경제와 민생이 이렇게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비판까지 했다.

하지만 북한 측과 협의하자는 결정을 내렸다는 핵심 의혹에 대한 해명은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문 전 대표를 향해 자신이 책임져야 할 일을 남 이야기 하듯이 하는 유체이탈의 정수를 보여 주었다는 비판마저 나오고 있다. 심지어 유체이탈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문재인 = 남자 박근혜’라는 조롱마저 등장했다.

문 전 대표의 무대응 전략은 정쟁화를 노리는 여당의 의도에 말려들지 않기 위한 고육책으로 보인다. 하지만 더민주 내부에서도 이런 문 전 대표의 대응 방식에 대한 논란이 일어났다. “아무리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해도 당시 함께 회의에 참석했던 노무현 정부 사람들과 기억을 맞추어야 한다”는 주장마저 나왔다.

문 전 대표는 위기를 맞이했을 때 최고의 전략은 침묵이 아니라 정직이란 점을 잊은 것 같다. 국민들은 대선 주자들을 평가할 때 위기를 관리하는 능력, 더 나아가 일을 처리하는 태도를 중시한다. 위기관리 능력이 현격히 떨어지는 사람은 대통령으로써의 자격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지난 2002년 대선에서 지지도 고공행진을 보였던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호화 빌라 사건으로 곤혹을 치렀다. 이 총재 일가가 100평에 달하는 초호화 빌라 주택 3개를 차지하고 그 가운데 두 개를 사돈으로부터 무상으로 사용한 것이 드러났다. 이 총재 일가족이 초호화 빌라에 살면서 과연 서민들이 겪는 경제적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지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더 큰 문제는 이 총재와 한나라당이 위기를 대처하는 방식이었다. 중앙당은 허둥지둥했고, 어느 하나 이회창 총재에게 직접 확인하고 답변 받지 못했다. 이 총재의 폐쇄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었다.

현재 문 전 대표의 위기 대응 방식도 당시 호화 빌라 사건의 데자뷔라 할 정도로 흡사하다.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트레이드 마크는 ‘법과 원칙’이었다. 이것이 이회창 대세론을 떠받쳤던 큰 무기였다. 그런데 호화 빌라 사건은 국민 감정과 정서에 배치되는 행동으로 이 총재의 ‘법과 원칙’ 이미지에 적지 않은 상처를 입혔다. 이로 인해 이회창 대세론은 크게 흔들렸다. 그 이후 이 총재는 변화와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됐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외쳤던 노무현 후보가 반사이익을 누리면서 대선에서 승리했다.

문 전 대표가 측근들과 만나서 나온 대응 반식이 전략적 침묵이라면 문제가 있다. 또한

송 전 장관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측과 연결돼 문재인 전 대표를 흠집 내려 했다는 더 민주 일각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우왕좌왕과 침소봉대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둘째, 정체성의 한계이다. 누누이 강조하지만 남북한이 대치한 상황에서 확고한 대북 안보관을 갖고 있느냐는 아주 중요한 대통령의 덕목이다. 지난 2012년 대선 직후 한국갤럽에 실시한 조사에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지 않은 유권자의 5명 중 1명은 그 이유로 ‘친북 성향’(12%)과 ‘좌편향’(8%) 등 정체성 문제를 꼽았다. 회고록 파문에 대해 문 전 대표는 추잡한 색깔론과 종복몰이라고 비판하고 있지만 자신의 안보관 정체성에 대한 또 다른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카민즈와 스팀슨 교수는 선거에서 불거지는 쟁점의 유형을 크게 ‘쉬운 쟁점’(easy issue)과 ‘어려운 쟁점’(hard issue)으로 구분했다. 전자는 기술적이기 보다는 상징성이 강하며, 정책 수단보다는 정책 목표에 관련되고, 장기간에 걸쳐 현안이 된다. 그런데 쉬운 쟁점이 부각되면 정치적인 관심과 지식 수준이 낮은 사람들도 이에 근거해 지지 후보나 정당을 선택할 가능성이 커진다.

반면, 어려운 쟁점에 대한 인지와 견해의 정립은 상당한 수준의 정치 관심과 지식이 필요하다.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의 아들 병역 비리 의혹과 호화 빌라 사건은 쉬운 쟁점으로 전환되어 ‘이회창 = 특권층, 노무현 =서민 대변’, ‘이회창 = 개혁대상’, ‘노무현= 개혁 주체’라는 프레임이 만들어졌다.

북한 인권 결의안 사전 문의 의혹은 쉬운 쟁점이다. 사전에 북한에 물어보았느냐 아니냐와 같이 파문 내용이 쉽고 안보 이슈가 걸려 있어 보수 지지층을 결집시키기에 호재로 작용될 수 있다.

더불어, ‘문재인 = 대한민국 정체성을 위협하는 세력, 새누리당 후보= 대한민국을 지키는 세력’으로 프레임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이런 프레임이 작동되면 문 전 대표가 중도층으로 외연을 확장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 질 수 있다.

지난 2012년 대선은 유권자의 관심이 문재인-안철수 간의 야권 후보 단일화와 관련된 선거구도에 집중돼 다른 이슈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에서 아산정책연구원이 실시한 패널 조사에 따르면, 대선 후보간 정책적 차별성이 없었다. 가령 대북정책에서 ‘박근혜 후보가 낫다’는 비율은 46.1%, ‘문재인 후보가 낫다’는 비율도 36.3%였다. 정책 자체에 대해 ‘잘 모르거나’(8.6%)나 두 후보 간의 ‘정책적 차이가 없다’(7.8%)고 응답한 비율이 16.4%나 됐다.

하지만, 내년 대선은 북핵 위기로 촉발된 대북 정책이 핵심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그럴 경우 대북관과 안보관이 흐릿해 보이는 후보는 크게 고전할 것이다.

셋째, 연대의 한계이다. 회고록 파문이 확산되자 국민의당은 여당의 색깔론을 강력 비판했지만 문 전 대표에게도 칼을 겨누었다. 안철수 의원은 “북한 인권 결의안에 찬성했어야 했다”고 하면서 “문 전 대표가 진실을 밝혀서 빨리 정리되는 게 바람작하다”고 했다. 비상대책위원장는 문 전 대표가 “이 문제에 대해 3일간 말이 바뀌고 있는 것이 문제”라며 ‘일구삼언’(一口三言)이라고 했다. 더불어 “문 전 대표가 당시 관계자들과 협의해서 명확한 사실관계를 국민 앞에 밝히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첩경”이라고 했다.

문재인 전 대표는 올해 초 국회에서 실시된 북한인권법 본회의 표결 때 불참했다. 회고록 파문에서 보여준 안철수 의원이 문 전 대표를 향한 비판과 평소 안보는 보수라고 강조한 점을 감안할 때 대북 정책을 둘러싸고 문재인 대표와 참예하게 대립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향후 있을지도 모를 야권 후보 단일화에도 큰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역대 대선에서 북한 변수는 시대에 따라 달랐지만 유권자의 표심을 뒤흔드는 요인이 됐다. 가령 2012년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 NNL 포기 발언’과 연계된 안보 이슈가 선거 막판에 보수 지지층을 결집시키는데 기여했다. 아산정책연구원의 패널 조사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 NNL 포기 발언’ 이슈가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들의 9.2%를 차지한 정도로 영향을 미쳤다.

그렇다면 송민순 회고록 파문으로 누가 득을 볼 것인가. 당장은 문 전 대표의 강력한 경쟁자로 부각되고 있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될지 모른다. 국내 정치가 여야 간 갈등으로 막장으로 흐르면 흐를수록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14년 7월 이후 오랜 기간 동안 전남 강진에서 칩거하다가 정계에 복귀한 손학규 전 상임고문도 수혜자가 될 수 있다. 후보의 안보 신뢰감이 대선 승부를 결정짓는 핵심 변수가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문재인 대세론’이 휘청거릴 수도 있고 북한 결의안 사전 문의 파문으로 ‘문재인 대안론’이 부상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정치와 경제의 새판짜기에 모든 것을 바치기 위해 더민주를 탈당해 정계에 복귀한 손학규 전 상임고문은 문재인의 약한 고리를 파고 들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보수층은 여전히 안보 문제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여권으로선 회고록 파문을 반전카드로 쓰고 싶겠지만, 극단적인 색깔론이나 종북몰이로 나갈 경우엔 되레 발목이 잡혀 역풍이 불 수 있다. 지난 2010년 천안함 폭침 이후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선거 막판에 “전쟁도 피하지 않겠다”면서 대북 강공 드라이브를 걸었다. 하지만 이런 안보 이슈는 오히려 역풍을 불러일으켰다. 야당이 “전쟁이냐 평화냐” 이슈를 제기하면서 20대 젊은 세대와 아들을 군대에 보낸 부모 세대의 불안감을 자극시키면서 이익을 챙겨 선거에서 압승했다.

지난 2002년 대선 직후 한국선거학회․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지 후보를 변경한 중도층에서 변경 전 이회창 후보를 지적한 사람이 34.7%로 노무현 후보(20.0%)보다 높았다. 그런에 중도층에서 이 후보를 지지하다가 변경한 이유로 55.2%가 ‘이념과 노선이 마음에 안들어서’라고 응답했다.

이러한 조사 결과가 주는 함의는 한나라당이 대선 과정에서 지나치게 수구적인 행태를 보임으로써 중도층이 이탈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해석은 한나라당이 변화와 개혁은 멀리한 채 오직 종북몰이에 매몰되는 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중도층은 보수 안정 성향이 아니라 변화와 개혁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과거 대선 경험에 비춰볼 때 북한 변수는 그 자체뿐만 아니리 다른 돌발 변수와 결합해 대선 판도 예측을 어렵게 만들었다. 내년 대선에서도 ‘대한민국 정체성을 위협하는 세력에 대한 심판론’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중 어느 것이 시대정신에 부합할지는 앞으로 눈여겨 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민순 회고록 파문을 둘러싸고 문재인 전 대표가 보여준 행태는 한마디로 무책임과 무능이다. ‘문재인 대세론’에 도취되어 이런 상식 이하의 무대응 전략을 펼쳤다면 오판이고 결코 정도가 아니다. 문 전대표는 국민은 결코 어리석지 않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 프로필

아이오와대 정치학 박사

한국선거학회 전 회장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치개혁위원회 위원

한국정치학회 이사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정치학)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