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나면 데모로 일관했던 민중저항의 시기였던 70년대만 해도 좌우사상이 그 시대를 지배하던 때라 피 끓는 젊은이들이 공개적으로 성(性)에 대해 말하면 의식이 떨어진 사람으로 취급 받았다. 80년대 전두환 정부는 우민화(愚民化)정책의 일환으로 3S(Screen, Sex, Sports)정책을 시행한다. 이로 인해 성(性)은 상품화되고, 돈으로 거래되어 소중한 성(性)에 대한 담론이 또 한번 음성화된다. 다행히 요즘은 중고등학교에서 공개적으로 성교육을 한다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최근 어떤 블로그에서 우스개 서러운 항목을 주고 댓글로 의견을 묻는 것을 우연히 본 적이 있었다. 그 항목인 즉 슨 숫자 300을 주고 그걸 세 가지 항목으로 나눈다면 당신은 어떻게 분배하겠느냐는 것이다. 그 3가지가 키와 아이큐와 음경의 길이다. 가령 키를 180, 아이큐를 100으로 하면 음경의 길이는 20센티가 되는 격이다. 똑똑해지려니 키와 성기능이 떨어져서 ‘밥만 먹고 사냐’라는 말을 들을 것 같고, 성기능을 올리자니 ‘그것 잘한다고 밥이 나오냐 돈이 나오냐’는 말을 들을 것 같다. 독자들의 생각이 궁금한 대목이다. 댓글은 대개 골고루 분배해서 무난할 정도로 평범했지만 가끔 한쪽으로 치우쳐서 단 댓글도 심심찮게 보인다. 아마도 그 항목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거나 마음껏 누려보지 못한 것에 대해 한풀이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지금 남성호르몬이 철철 넘치는 스트롱맨(Strongman)인 트럼프의 등장으로 꽤나 시끄럽다. 미국의 남성들도 정력이 넘쳐서 강철체력이라는 뜻이 있는 스트롱맨이라는 말을 무척 좋아하고 그렇게 불리기를 좋아한다. 아마도 강철체력의 대표주자하면 물개가 아닌가 생각된다. 평시에 각자 살던 물개들이 번식기인 6월이면 한곳에 모이고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수컷들의 전쟁이 벌어진다. 물개의 번식은 승자 독식주의의 치킨게임이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유일한 수컷이 암컷을 독차지하는 일부다처제의 사회구조다. 일평생 한번이라도 챔피언이 못된 물개는 자신의 유전자를 남길 수 없는 구조다. 보통 한 마리 수컷이 최대 60마리의 암컷을 감당한다. 이런 이유로 옛날부터 일당백의 정력을 가진 물개 수컷의 생식기(음경·수정관·고환)를 그늘에서 말려서 정력제로 사용했다. 이것이 천연 비아그라인 해구신(海狗腎)이다. 여기서 신(腎)은 음경을 가리킨다. 해구신를 올눌제(??臍)라고도 많이 부르니 참고하기 바란다. 필자도 햇병아리 시절에 해구신을 딱 한번 써 보고 그 이후로는 아직까지 써본 기억이 없다.

모든 동물의 수컷에 있는 고환은 남성 호르몬을 생산해서 남성다움을 유지하고 2세를 낳는데 필요한 정자를 생산하는 공통기능이 있다. 해구신의 성질은 열(熱)이 많다. 그래서 신장(腎臟)을 따뜻하게 해서 양기(陽氣)를 북돋아준다. 이를 난신장양(煖腎壯陽)이라 한다. 오랫동안 정신적 육체적으로 과로하거나, 대인관계로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받아서 성기능이 극도로 떨어져서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 쓰면 시들해진 양기를 보충해서 정력을 강화시켜 발기부전을 치료하고 정자가 활발하게 움직이도록 활동성을 부여하고, 장시간에 걸쳐 지속되는 스트레스나 피로를 견딜 수 있도록 해 줘서 강철체력을 만들어 준다.

발기부전을 치료할 때는 보골지, 파극천, 육종용, 토사자, 음양곽, 부자등과 함께 쓰고, 조루(早漏)를 치료하고자 할 때는 여기다 산수유, 오미자, 연자육, 복분자 등 새는 것을 틀어막는 삽정약(?精藥)을 함께 사용한다. 해구신의 맛은 짜다. 짠 맛 또한 그 약효가 신장으로 가게 한다. 해구신은 술에 넣었다가 구워서 쓰거나 뜨거운 모래나 활석가루에 넣어서 볶아서 쓴다. 원래는 갈아서 분말로 만들어서 환제(丸劑, 알약)나 산제(散劑, 가루약)로 만들어서 복용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방법인데 다른 한약재와 함께 탕제(湯劑, 물약)으로 만들어서 복용하기도 한다. 해구신은 개체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어 보호하지 않으면 곧 멸종될 수 있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 동물이다. 동의보감에도 구하기 힘든 해구신을 대신해서 황구(黃狗)를 쓰라고 되어 있다. 황구란 누렁이인데 똥개다. 해구신의 효능을 가지려면 3개 정도를 써야 한다고 되어 있다.

하늘꽃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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