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퍼의 스타일은 좋건 나쁘건 골프를 시작한 최초의 1주일 안에 만들어진다.”

‘스윙의 시인’으로 칭송받는 영국의 프로골퍼 해리 바든(Harry Vardon)의 명언이다.

브리티시오픈에서 여섯 차례나 우승하며 '근대 골프의 시조'라고 불리는 바든은 스윙 폼이 유려하고 우아한 것으로 정평이 났다. 현대 골퍼의 대부분이 채택하고 있는 오른 손 새끼손가락을 왼손 인지와 중지 사이에 위치시키는 이른바 '오버래핑 그립'을 고안했다. 미국 PGA투어에서 매년 시즌 최소 평균타수를 기록한 선수에게 ‘바든 트로피'를 수여하는 것도 그의 스윙의 아름다움과 효율, 그가 고안한 ’바든 그립‘의 탁월함을 기리기 위함이다.

LPGA투어에서 평균 최소타수를 기록한 선수에게 주는 베어 트로피는 미국의 여자 골프선수 글레나 콜레트 베어(1903~1989)를 기려 제정되었는데 그는 19연승이란 대기록을 세우며 1920~30년대 LPGA를 지배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연습에 열중하는데도 도대체 골프실력이 향상되지 않는 골퍼가 의외로 많다. 구력이 10년, 20년이 넘었는데도 만년 보기플레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골퍼들도 흔하다. 이들은 간혹 싱글 스코어를 치기도 하지만 실력이 향상되어서라기보다는 그날의 컨디션이 특별히 좋았거나 운이 좋아서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골프야말로 부단한 자기훈련이 없이는 실력향상은 물론 현상유지가 안 되는 운동이다. 골프 재능은 결코 천부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타이거 우즈나 로리 매킬로이를 두고 ‘천부적인 골퍼’라고 말하지만 이는 이들의 뼈를 깎는 훈련과정이 생략된 찬사일 뿐이다.

그렇다면 많은 골퍼들이 이를 악물고 연습을 하는데도 어떤 사람은 일취월장의 실력을 보이며 ‘골프신동’으로 불리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같은 땀을 흘리고도 실력향상이 안되어 ‘골프지진아’로 남아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골프의 밑그림 때문이다. 처음 골프를 배울 때의 밑그림이 어떻게 그려졌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골프행로가 좌우된다.

완전 백지상태에서 교과서적인 스윙과 오염되지 않은 골프철학으로 밑그림이 그려졌다면 자신이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 한 빠르게 실력이 향상돼 골프의 묘미를 맛보게 된다. 반대로 어설픈 골프지식을 갖고 레슨프로나 선배의 가르침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남의 돈 따먹는데 재미를 붙여 제멋대로 엉터리 밑그림을 그려버리면 평생 땀을 흘리고도 골프의 신선세계를 맛볼 수 없다. 학교에서 그리는 그림은 연필로 윤곽을 대충 그리는데 마음에 안 들면 지우고 다시 그릴 수 있다.

그러나 골프의 밑그림은 연필로 그려지지 않는다. 골프의 밑그림은 지울 수 없는 조각칼로 새겨진다. 골프채를 잡은 뒤 최초의 1주일, 혹은 한 달간 휘두르는 한 샷 한 샷은 바로 조각칼로 근육과 두뇌에 골프의 밑그림을 새겨 넣는 기간이다. 이때 밑그림이 이상적으로 각인되면 나중에 그 각인이 지워지지 않고 더욱 뚜렷해지도록 연습하면 즐거운 골프행로로 들어설 수 있지만 잘못된 밑그림이 각인되면 그것을 메우고 새로이 각인해야 하는데 이것이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는데도 골프실력이 향상되지 않는 것은 바로 잘못 그려진 밑그림을 바탕으로 연습을 하기 때문이다. 밑그림이 잘못 그려졌다면 아무리 심혈을 기우려봐야 제대로 된 그림이 그려질 까닭이 없듯, 연습을 아무리 해도 더욱 나쁜 습관을 굳히기만 할뿐 좋은 스윙이 만들어질 수가 없다. 엉터리 설계도를 바탕으로 지은 부실건물이나 다름없다.

잘못된 스윙자세가 굳어버린 사람은 연습을 하면 할수록 고치기 힘든 고질병에 깊이 빠지고 만다. 이때는 차라리 한동안 골프채를 놓아버려 잘못 그려진 밑그림이 지워질 때까지 기다리는 게 더 낫다. 한동안 골프채를 안 잡은 사람이 모처럼 골프장에 나가 산뜻한 출발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바로 잘못된 스윙습관이 잠깐 잊혀 졌기 때문이다. 여러 홀을 지나면 서서히 샷이 망가지기 시작하는데 이 역시 옛날의 골프습관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증거다.

골프를 평생운동으로 즐기려면 과감하게 잘못된 밑그림을 뜯어고쳐야 한다. 워낙에 잘못 그려진 밑그림의 각인이 깊기 때문에 이를 메울 정도로 철저한 지도와 연습을 해야 한다. 필드에 나가서도 스코어에 연연해하지 말고 배운 대로 샷을 날릴 수 있는가를 점검하는 기회로 여겨야 한다. 스윙을 바꾸기로 해놓고 막상 골프코스에 나가면 내기가 걸리는 바람에 스코어에 집착해 요령을 피우며 잘못된 옛 골프습관을 되살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야말로 금물이다. 골프에서도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

훌륭한 연설가이기도 했던 예수는 비유를 사용하여 사람들을 가르쳤다. 호숫가에 모인 군중에게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한 농부가 들에 나가 씨를 뿌렸다. 그런데 어떤 씨는 길가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어떤 씨는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곧 싹이 나왔으나 해가 뜨자 뿌리를 내리지 못한 그 싹은 곧 타서 죽었다. 또 어떤 씨는 가시덤불에 떨어졌는데 가시나무가 자라 그 기운을 막으므로 열매를 맺지 못했다. 그러나 어떤 씨는 좋은 땅에 떨어져 싹이 잘 나고 잘 자라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었다.”(마가복음 14장)

제자들이 그 뜻을 설명해달라고 하자 예수가 대답했다.

“씨를 뿌리는 농부는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은 길가에 떨어진 씨와 같아서 말씀을 들어도 즉시 사탄이 와서 그의 마음에 뿌려진 말씀을 빼앗아 가버린다. 또 어떤 사람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진 씨와 같아서 말씀을 듣지만 이 세상 걱정과 재물에 대한 유혹과 그 밖의 여러 가지 욕심이 마음에 들어와 말씀을 막아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좋은 땅에 뿌려진 씨와 같다. 그런 사람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는다.”(마가복음 14장)

골프의 씨앗도 좋은 땅에 뿌려야 한다. 좋은 땅이란 좋은 신체조건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좋은 마음가짐을 말한다. 당장의 욕심보다는 끈기와 인내를 가지고 아름다운 골프를 완성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질 때 골프의 씨앗은 훌륭한 열매를 맺는다.

방민준(골프한국 칼럼니스트)

(골프한국 프로골프단 소속 칼럼니스트에게는 주간한국 지면과 골프한국, 한국아이닷컴, 데일리한국, 스포츠한국 등의 매체를 통해 자신의 글을 연재하고 알릴 기회를 제공합니다. 레슨프로, 골프업계 종사자 등 골프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싶으신 분은 이메일()을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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