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거의 같은 연대에 탄생하고 한두 해 차이를 두고 돌아가셨던 영남학파 성리학의 두 기둥이 퇴계(退溪) 이황(李滉)과 남명(南冥) 조식(曺植)이다. 하지만 이 둘의 사상적 차이는 컸다. 성리학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하고, 그 바탕 위에서 인간 내면의 심성(心性)수양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이황(李滉)은 조식에 대해 "오만하여 중용의 도를 기대하기 어렵고, 노장에 물들었다"고 비판한다. 이에 이론적 탐구보다는 성리학적 가치관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것을 강조한 조식(曺植)은 “선비들이 공부한다는 핑계로 자신의 부모의 고혈을 짜고, 여러 사람들에게 폐를 끼친다.

요즘 학자들은 물 뿌리고 청소하는 절차도 모르면서 입으로는 하늘의 진리를 말한다.”고 응수했다. 하지만 이 둘의 제자들은 한 때 기호학파인 율곡 이이(李珥)의 제자들과 대립하며 동인(東人)으로 한솥밥을 먹었다. 하지만 두 학파간의 사상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남인(南人)과 북인(北人)으로 나뉘어 향후 치열한 당파싸움의 근간을 이루는 시발점이 된다. 조식은 벼슬길에 뜻이 없고 성리학을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하는 데만 관심이 있어서 몇 번이나 조정에서 출사하라고 했지만 평생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 그런 조식에게 어느 날 이황이 조정에서 같이 일하자고 편지를 보낸다. 조식은 “저는 병치레가 끊이지 않아 부득이 벼슬길에는 나아가지 못할 듯합니다. 요즘엔 눈병이 심해 잘 보이지 않는데 혹시 발운산(撥雲散)을 구해 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답장을 보낸다.

그런데 이게 가관이다. 발운산(撥雲散)은 ‘구름을 없애는 가루약’ 쯤으로 해석이 되는데 반세기 후에 발간된 동의보감에도 나온다. 간장(肝臟)에 풍열(風熱)이 가득 찼을 때 눈이 구름이 낀 것 같이 어른거리면서 뿌옇게 보이는 백내장이나 녹내장 같은 것을 치료할 때 처방되는 한약 중의 하나로 소개되고 있다. 발운산의 처방내용은 없고 다만 그것과 유사한 퇴운산(退雲散), 발운퇴예환((撥雲退?丸), 발운탕(撥雲湯)등이 있다. 조식이 이 말을 한 것은 이황이 눈에 뭔가가 끼여서 조정의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비꼰 것이다.

이 편지를 받은 이황의 답장은 더욱 기가 막힌다. 자신은 발운산(撥雲散) 대신 ‘당귀(當歸)’를 ?고 있다는 것이다. 한약재로 비꼬았으니 한약재로 대답해주겠다는 심뽀다. 당귀(當歸)는 ‘마땅히 돌아갈 것이다.’란 뜻으로 ”당파싸움으로 하루가 조용할 날이 없는 조정이 지긋지긋해서 낙향해서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이다. 한약의 귀경, 기미, 효능 같은 것을 최초로 자세하게 기록해 놓은 신농본초경에 당귀(當歸)란 한약재가 수록되어 있는데 감숙성(甘肅省)에서 산출되는 당귀(當歸)를 말한다. 하지만 중국 전역이 오랫동안 전쟁으로 몸살을 앓으면서 한약의 수급이 원활하지 못하게 되고 중국 내 각 나라들은 당귀와 비슷한 한약재를 가져다가 당귀(當歸)로 쓰기 시작했다. AD500 년경 양(陽)나라에서는 당귀를 대체해서 사용하게 된 한약재를 역양당귀(歷陽當歸)라 부르면서 당귀 대용품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반면에 원래 기원식물인 감숙성 당귀는 중국당귀(中國當歸)라고 불렀다. 본초학은 넓은 땅덩어리에서 온갖 한약재가 자생하는 중국에서부터 발달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한약재라고 해 봐야 기껏 20종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결국 중국으로부터 당재(唐材)를 수입할 수밖에 없었는데 중국 국내사정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 향약구급방(1236년)은 그래서 나온 의서다. 향약이란 비싸고 수급이 어려운 당제를 대체해서 사용할 수 있는 우리나라 한약을 말한다.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을 피해 강화도로 갔으니 당제는 당연히 공급이 어려웠을 것이고 그렇다고 백성의 질병을 내팽개칠 수 없어서 나온 대안 이었던 것 같다. 팔만대장경을 편찬할 때 같이 편찬된 것으로 보인다. 편찬의 의도는 “나라에서는 백성들을 치료해 줄 여력이 없으니 백성들은 이 책을 보고 약재를 구해서 스스로 치료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백성이 그나마 볼 수 있도록 이두식 한자로 같이 표기해 놓았다. 거기에 중국당귀 대신 당귀채(當歸菜) 단귀초(旦貴草)로 불리는 우리나라의 참당귀를 쓰라고 나와 있다.

하늘꽃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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