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와 중국 북부에서 여진족이 금(金)나라를 세워 송(宋)나라를 침입해서 송(宋)나라는 남쪽으로 가게 되는데 이 때의 송(宋)을 남송(南宋)이라 불렀다. 그 이후 몽골이 금과 남송을 멸하고 중국에 원나라를 건국한다. 이를 한데 묶어 금원시대(金元時代)라 부른다. 금원시대는 중국의 한족으로 보면 치욕의 역사이지만 한의학으로 보면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의학의 시조인 황제내경(黃帝內經)은 한의학의 이론을 밝히는 것인데 반해, 후에 저술된 상한론에 비로소 여러 처방이 나타난다.

상한론은 말 그대로 추위 즉 한(寒)에 상했을 때 나타나는 증상들과 치료에 관해 서술된 책이다. 금원사대가가 나오기 전 까지 한의학치료는 큰 틀에서 내경과 상한론 그리고 신농본초경이 그 중심을 잡고 있었다. 하지만 금원시대에 접어들면서 그 중심의 틀을 깨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게 되는데 그 배경에는 금원시대의 시대상황과 맞닿아있다. 송나라 이전에는 조판인쇄를 했는데 팔만대장경처럼 책 한 면에 해당하는 나무크기에 통째로 글자를 한자 한자 일일이 양각해서 먹물을 묻혀 찍어서 출판하는 형식이다.

이와는 달리 송나라 때 필승(畢昇)이 발명한 활자 인쇄술은 글자 하나하나를 만들어서 조판에 나열해서 만든 방식으로 그 당시 뛰어난 제지술(製紙術)과 결합되어 서적을 대량으로 출판하게 되었고 한의학서적도 예외가 아니라서 누구나 한의학 서적을 쉽게 구입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큰 전쟁으로 여러 종류의 많은 질병이 발생하고 이를 치료하고자 하는 많은 한의사들의 노력으로 한의학 지식과 임상결과물이 더욱 풍성하게 축적되게 된다. 금원사대가는 유완소(劉完素)로부터 시작된다. 그의 이론은 상한론이 외부로부터 들어온 추위(寒)에 촛점을 맞춘 반면 그는 “한사(寒邪)가 인체 내에 들어와서 열(熱)을 일으키므로 그 열(熱)을 잘 처리하는 것이 치료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열을 꺼트리는 찬 성분의 한약을 많이 써서 한량파(寒凉派)라고 한다. 마치 감기가 올 때 해열제를 쓰는 원리와 같다.

장종정(張從正)은 이를 이어 받아서 외부로부터 사기(邪氣)가 들어와서 질병이 된 것이므로 내 몸에 들어온 사기를 밖으로 배출하면 치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사기(邪氣)를 땀(汗)으로, 구토(嘔吐)시켜서, 설사(泄瀉)시켜서 배출하는 한토하(汗吐下)법을 창시하였다. 공격해서 밖으로 몰아낸다는 뜻으로 공하파(攻下派)라고 부른다. 이고(李呆)는 금원시대 교체기에 전쟁이 잦았던 시기에 생존한 인물이다. 그는 전쟁터에서 칼이나 창으로 죽은 것 외에 수많은 백성이 굶어죽거나, 상한 음식을 먹어서 죽거나, 노역(勞役)으로 인한 과로나 전쟁 중 죽음에 대한 공포로 인한 스트레스로 숨진 것을 알게 되었다.

이에 이고(李?)는 그의 저서인 ‘비위론(脾胃論)’에서 한사(寒邪)가 유발한 질병인 외감병(外感病)에 대비해서 내상병(內傷病)이란 개념을 처음 기술하게 된다. 내상병이 있으면 비위(脾胃)의 기능이 저하되므로 비위(脾胃)를 보(補)하면 치료할 수 있다고 하였디. 그 유명한 보중익기탕(補中益氣湯)이 이고의 처방이다. 비위는 토(土)에 배속되므로 보토파(補土派)라고 부른다. 마지막으로 주진형(朱震亨)이 살았던 때는 원나라 시기다. 몽고의 영토는 드넓고 사람숫자가 적은 관계로 그 당시 인구가 1억 명에 가까운 중국이란 점령지를 고작 10만 명으로 통치하게 된다. 문화는 강요하겠지만 백성들의 삶에 직접 뛰어들면 폭동이 일어날 것을 우려해 방치에 이를 정도로 방임하게 되자 백성들은 가장 운택하게 살았던 시기였다. 그 덕분에 살림살이가 넉넉해진 백성들이 기름진 음식을 먹고 방탕한 생활에 이르게 된다.

주진형은 양유여음부족론(陽有餘陰不足論)과 상화론( 相火論)을 주창하고 음식과 색욕을 절제해서 부족한 음분(陰分)을 길러야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자음파(滋陰派)라고 부른다. 원나라 상황은 현대와 너무 닮아있어 현대에서 가장 주목받는 한의학자가 이고와 주진형이다. 이들의 이론은 동의보감에 녹아들어가 그 이후에 한의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자음(滋陰)에 대표적인 한약재가 앞서 말한 당귀와 다음 편에 말할 숙지황(熟地黃)이다.

하늘꽃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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