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질환에 대해 그 원인에 따라 여러 가지 치료법을 사용하는 것이 한의학의 최대장점이자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동의보감, 방약합편, 청강의감 등의 여러 의서(醫書)를 보면 가령 환자가 기침을 치료할 목적으로 내원했다면 그 환자의 상태나, 체질 뿐 아니라 기침의 원인에 따라 각각 투여하는 한약처방을 다 다르게 기재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지금 그 환자에게 꼭 맞는 약은 한의사의 진단에 따라 처방된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맞춤형 한약이 그것이다. 이를 동병이치(同病異治)라고 한다. 같은 병에 대해 여러 다른 치료법으로 치료한다는 뜻이다.

한의학의 또 다른 장점은 한 가지 처방을 무수히 많은 질환에 사용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기운이 없어 숨이 가쁜 소기(少氣), 몸을 에워싸서 지키는 기운인 위기(衛氣)가 힘이 부쳐서 관문으로 빠져나가는 진액을 거두어들일 수 없게 될 때 발생하는 자한(自汗,스스로 나는 땀), 마찬가지로 기운이 없어 맥관(脈管)에서 혈이 나가지 못하게 지켜주지 못하면 생기는 각종출혈, 기허요통, 기허이명, 기허해수, 각종 허손병에는 모두 기허(氣虛)에 쓰는 보중익기탕(補中益氣湯)을 투여한다. 이를 이병동치(異病同治)라 한다. 한 가지 처방으로 서로 다른 질환을 치료한다는 뜻이다.

구한말에는 이병동치의 명의(名醫)들이 주로 전라도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전북 구태인 지역의 김창호 선생은 사물탕(四物湯), 전주의 최치문 선생은 오적산(五積散), 전북 운봉의 허창수 선생은 육미지황탕(六味地黃湯), 남원의 김광익 선생은 보중익기탕(補中益氣湯), 함경남도 원산의 정봉조 선생은 평진탕(平陳湯)을 써서 모든 질환을 상대했다고 해서 김사물, 최오적, 허육미, 김보중, 정평진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이들이 쓴 처방이 어찌어찌 공개되었는데 어떤 질환이 있을 때 각자 즐겨 쓰는 처방에 어떤 한약재를 더하고 빼서 쓰는지 박병곤의 ‘한방임상사십년’이란 책에 그 내용이 잘 나와 있다.

‘탕증으로 보는 동의보감’을 보면 동의보감에서 사물탕이 136군데 질환에 쓰였고, 이진탕이 83회, 소시호탕이 78회, 보중익기탕 56회, 육미지황탕이 29회, 오적산 18회 정도의 질환에 쓰여 졌다. 통계를 보더라도 위의 명의들이 각자의 처방으로 여러 질환을 고친 것은 맞는 것 같다. 전라도라는 좁은 공간 안에서 어떤 이는 음혈(陰血)을 보하는 사물탕과 육미지황탕으로, 어떤 이는 기(氣)를 북돋아주는 보중익기탕으로, 어떤 이는 찬 것 때문에 뭉쳐져서 생긴 질병을 치료하는 오적산으로 환자를 치료했다는 것이 연구의 대상으로 보인다.

혈(血)이 부족할 때 쓰는 사물탕에도, 음(陰)이 부족해서 많이 쓰는 육미지황탕에도 숙지황(熟地黃)은 군약(君藥)으로 쓰여 진다. 청나라 때 왕앙(汪昻)이 지은 의방집해(醫方集解)란 책이 있는데, 보양지제(補陽之劑)로부터 시작해서 여러 증상과 그에 대한 처방을 소개했는데 그 첫 처방으로 육미지황탕(六味地黃湯)을 실었다. 인체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보양(補陽)이고 육미지황환이 보양하는데 제일 중요한 처방이라는 뜻일 게다. 육미지황탕은 육미지황환을 탕제로 복용하는 것이다. 육미지황환은 전을(錢乙)이 소아(小兒)에게 쓸 요량으로 장중경이 지은 금궤요략(金?要略)에 나오는 최씨팔미환(崔氏八味丸)에서 부자(附子)와 육계(肉桂)를 빼고 만든 처방으로 소아약증직결(小兒藥證直訣)이라는 의서에 수록되어 있다.

육미지황환은 소이들이 품부(稟賦)가 부족해서 선천적인 질환을 가지고 있을 때 장복하는 것으로 유명한 처방이다. 대표적으로 오연(五軟)증 같은 것이다. 신체의 발육이나 지적 발육 또한 정신적 발육이 다른 또래아이들보다 지연될 때 오랫동안 복용해서 효과를 볼 수 있는 처방 중의 하나다. 또한 신체기능이 점점 떨어져서 노쇠해져가는 노인의 경우도 역시 많이 쓴다. 탕약을 잘 복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환을 빚어서 복용하면 된다. 아니면 숙지황이 듬뿍 들어가서 정(精)을 보하는 경옥고(瓊玉膏)같은 한약을 장기적으로 복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정(精)이나 음혈(陰血)은 쉬 고갈되지 않지만 한 번 고갈되면 다시 채워지는 속도가 비교적 느려서 장기적으로 복용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하늘꽃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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