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 고등학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며칠 후 이사를 가는데, 집에서 책장정리를 하다가 허리를 삐끗했다는 이야기. 허리를 움직일 수가 없고 숨쉬기가 곤란해서 잠시 앉아있으면서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틀림없이 뭔가 잘못된 것 같긴 한데 119에 전화를 할 지 아니면 좀 쉬면 괜찮아질 수 있는지 정형외과 척추전문의인 필자에게 확인해보려고 전화했다는 것.

우선 전화너머로 들려오는 친구의 목소리로 판단할 때 응급상황은 아닌 듯 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다가 다쳤는지 다시 한 번 물었다. 친구는 잘 들어보라고 신신당부 하면서 필자에게 천천히 허리를 삐끗하게 된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며칠 후에 있을 이사 때문에 필요 없는 책들은 먼저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책장에 장식물처럼 차곡차곡 쌓여있던 잡지, 아이들이 크면서 이제는 더 이상 보지 않는 책, 그리고 가끔 아이들이 들춰보는 시리즈 만화책들이 대상이었다. 보통 이사할 때 버리게 마련인데 이번에 마음먹고 정리하기로 했단다. 책을 한 곳에 다 모은 후 종이박스에 차곡차곡 쌓아서 3-4상자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리고나서 첫 번 째 상자를 드는 순간 허리가 뜨끔하더니 허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잠깐 숨쉬기가 곤란했다는 것이다.

필자의 머릿속을 스쳐간 생각 “아! 급성디스크 증상이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Sapiens)’ 라는 책에 보면, 우리 인간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는 우리처럼 한 공간에서 일하는 정적인 개체가 아니었다고 한다. 대신에 넓은 벌판을 뛰어다니면서 사냥과 먹을 것을 구하는 수렵채집인의 삶을 살았다는 것. 그러다보니 수렵채집인들인 호모사피엔스는 매달 또는 매주 거처와 집을 옮겨다니면서 살았고 가장 중요한 몇 가지 소지품만 지니고 살았다고 한다.

또한 수렵채집인들은 자기 신체 감각이라는 내부세계에 대해서도 완벽하게 터득하고 있었다고 한다. 풀밭에서 나는 미세한 소리까지 귀 기울여 들을 수 있었으며, 최소한의 노력으로 소리내지 않고 이동하고 가장 기민한 방식으로 앉고 걷고 달릴 수 있었다. 그래서 이런 방식으로 신체를 다양한 방식으로 계속 사용한 덕분에 오늘날의 마라톤 선수들 처럼 건강했다고 한다. 그들은 요즘 사람들이 하는 요가나 태극권을 수십 년 수련해도 따라할 수 없는 수준의 건강체였다고 한다.

정형외과 척추전문의인 필자의 생각엔 현대인들도 “나는 호모사피엔스다”라는 생각으로 산다면 디스크 같은 질환은 점차 사라질 것으로 예상한다. 우선 이사 다닐 때 버리고 쌓아야 할 무거운 짐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아울러 앉아서 일 하는 시간도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바쁘게 수렵채집생활을 하면서 칼로리도 과다하게 섭취할 일이 없으니 비만도 없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덤으로 근력까지 좋아져서 책이 가득한 종이박스 1상자쯤은 거뜬하게 들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추측으로는 전화를 건 친구는 아마 가벼운 급성 디스크 증상이 아닐까 생각할 수 있겠다. 아마도 가벼운 진통소염제를 하루 이틀 복용하면 많이 호전될 것으로 생각되었다. 필자가 정리해 본 허리를 삐끗한 친구를 위한 처방은 다음과 같다.

1. 증상이 조금씩 호전되고 있다면 119에 전화할 필요는 없음. 2. 가벼운 진통소염제를 구해서 먹고 안정을 취할 것. 3. 내일 아침에 일어났을 때 허리가 아파서 움직이기도 어렵거나 증상이 심해지면 다시 필자에서 전화한 후 병원에 내원할 것. 4. 마지막으로 안하던 일 하지 말고 이사는 전문인에게 맡길 것. 이상 총 4가지였다.

전화를 끊고나서 필자는 곰곰 생각했다. 우리가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결책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 인류의 조상이라는 ‘호모 사피엔스’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면 거기에 해답이 있지는 않을까? 필자의 머릿속엔 거친 정글과 초원을 누비며 야생동물을 사냥하는 호모 사피엔스의 모습이 하루 종일 맴돌았다.

달려라병원 이성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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