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13대 총선, 민정·평민·민주·공화 4당체제

[지방 민심은 지금] 총선의 추억… 15년 전과 닮은 꼴
1988년 13대 총선, 민정·평민·민주·공화 4당체제

15년 전의 그날을 기억하십니까.

1988년 4월26일 제 13대 총선의 개표가 끝나자 각 언론들은 일제히 ‘4당체제 출발’ ‘3김 정치 부활’ 등의 제목으로 1면 머릿기사를 장식했다. 사상 첫 ‘여소야대’ 정국이란 점도 정치사적으로 큰 의미를 담고 있었지만 그 속내는 지역정치의 본격 시동이란 부정적인 요소를 안고 있었다. 호남을 석권한 DJ의 평화민주당과 부산ㆍ경남을 거점화한 YS의 통일민주당, 충청지역에서 강세를 보인 JP의 신민주공화당의 약진이 당시 총선 결과의 핵심이었다.

통합신당의 출현으로 새로운 구도가 형성된 최근의 정치상황도 15년 전의 그때와 매우 유사하다. 호남을 제외하고 전국에 걸쳐 과반에 가까운 의석을 차지했던 민정당은 그 뿌리를 이어가며 지금의 한나라당이 됐고 의석 수도 단연 제1당을 지키고 있다. 평민당으로 출발해 신민당, 국민회의를 거쳐 지금의 민주당으로 남아 있는 잔류 민주당도 절대 의석을 호남에 기대고 있다.

자민련은 당시 공화당 총재인 JP가 그대로 총재 자리를 유지하며 여전히 충청권에서 토호(土豪)에 올라 있으며, 통합신당이 겉으로는 전국정당을 표방하면서도 PK 점령에 눈독을 들이는 것도 당시 통일민주당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겉모습만 보면 ‘신 4당체제’ 이전에 ‘신 지역주의’의 부활로 흘러가는 셈이다.


호남에 다시 부는 '평민풍(平民風)'

내년 총선의 최대 관심사는 노무현 대통령을 위시한 통합신당이 어느 정도의 의석 수를 확보하느냐에 있다. 신당의 정치 실험이 세대와 이념간 대립 각을 적절히 활용한 진보와 보수간 대결로 선거구도를 이끌어 지역 벽을 뚫는 성공 작품을 그려내느냐가 내년 총선의 초점이다. 하지만 출발선상에 있는 현재 상황을 감안한 전망치는 그리 밝지 않다.

먼저 호남 민심이다. 88년 총선에서 황색 돌풍을 일으킨 평민당은 37곳의 선거구에서 36곳을 휩쓸고 나머지 1개 지역도 기타 3당이 아닌 한겨레당 후보에게 당선을 안겨 줬다. 사실상의 전승. 이곳의 지금 상황도 그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가뜩이나 정권 교체이후 미묘한 상실감을 느끼고 있던 터에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핵심 실세들에 대한 노무현 정부의 ‘소홀한 대접’으로 서운한 감정이 커졌고, 여기에 “이회창이 싫어서 (나를) 지지한 것 아니냐”는 노 대통령 발언이 알려지면서 호남 유권자들의 불만은 더욱 높아졌다.

통합신당에 참여한 호남 출신 민주당 의원의 분포를 보면 광주ㆍ전남에서는 단 3명만 자리를 옮겼고, 그나마 전북에서 남은 자와 떠난 자가 5:5로 동수(同數)다. 현지에서는 전북은 몰라도 전남에서는 신당이 한 석도 가져가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박상천 민주당 대표가 야당을 선언하면서 노무현 정권에 대한 비판의 칼날을 내세우는 것도 이런 지역 민심에 기인한 것이다. 만약 광주ㆍ전남에서 다시 민주당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면 전북지역도 돌아온 ‘평민풍’ (옛 평민당 바람)에 추풍낙엽처럼 신당이 쓰러져 갈 것이란 얘기도 가능하다.


영남ㆍ충청도 13대 결과의 재판?

13대 총선에서 민정당은 대구에서 8곳 전승, 경북에서는 21석중 17곳을 가져갔다. 지금도 한나라당은 TK지역은 그리 걱정을 하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을 위협할만한 후보 중에서 김중권 전 민주당 대표도 신당행을 포기하고 민주당에 남았다. 한나라당의 아성은 13대 총선 결과 이상을 유지할 수 있다. 문제는 신당이 호시탐탐 넘보는 PK지역이다.

당시 YS의 통일민주당은 부산은 15곳중 14곳, 경남은 22곳중 9개 의석을 차지했다. 3분의 2를 당시 야당인 민주당이 가져간 것. 신당은 노 대통령의 고향인 김해와 김두관 전 행자부 장관 등을 앞세운 남해ㆍ하동 등을 시작으로 부산 진격을 꿈꾸고 있다.

여기에 한이헌 서석재 전 의원 등 YS의 가신급 유력가를 대거 영입해 제2의 통일민주당 돌풍을 꾀하고 있다. 지역민심도 아직은 한나라당이 대세를 형성하고 있지만 조금씩 신당에 흔들리는 양상이다. 노 대통령이 YS에 이은 이 지역 출신 두번째 대통령이란 점이 작용한다면 상당한 약진도 기대해 볼 수 있다.

영ㆍ호남에 이어 충청권의 향배도 지난 13대 결과를 답습할 것 같은 전망이라 주목된다. 당시 충북은 9개 지역구중 민정 7 공화 2로 나뉘었지만 대전이 분리되기 전 충남은 18곳 중 13개 의석을 신민주공화당이 휩쓸었다. 자민련이 대선을 거치며 탈당파들이 떨어져 나가면서 세가 약화되긴 했지만 4당의 표가 갈리는 상황이 되면 아무래도 고정표가 확보된 자민련이 가장 ??求? ‘JP여 다시한번’이란 노래가 울려 퍼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여기까지만 보면 4당의 득표 순서나 지역별 의석이 15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문제는 가장 많은 금배지가 걸려있는 서울 인천 경기 등의 수도권이다. 당시에는 서울에서만 민정 10 평민 17 민주 10 공화 3 무소속 2 등 4당이 고른 성적표를 보여줬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다르다. 자민련의 입성이 어려워졌고 호남세를 바탕으로 한 민주당보다는 젊은 층을 아우르는 신당의 바람이 우세할 수 있다.

또 비호남 장년층에서는 한나라당의 선호가 두텁다. 결국 유리한 구도를 선점한 한나라당에 대한 신당의 거센 공격의 와중에서 민주당이 얼마만큼 약진하느냐가 관건이다. 아마도 지난 선거에서 서울 경기 인천을 합한 77개 지역중 민정이 절반 가량인 32, 뒤이어 평민이 18, 민주가 15, 공화가 9, 무소속 3인 결과에서 평민과 공화 쪽 의석이 신당쪽으로 쏠리는 양상이 전개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지역구도 극복을 슬로건으로 내걸며 모험적 창당을 강행한 신당이지만 실제 내용면으로는 지역주의의 부활구도로 흘러가는 구 정치의 복원양상이 되고 있다. 우리 정치가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 느낌이다.

염영남기자


입력시간 : 2003-10-07 11:31


염영남기자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