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남과 북의 경계인 자처, 실체에 상반된 평가, 이념갈등 불 지펴

[송두율 미스터리] 양심적 학자인가 거물간첩인가?
스스로 남과 북의 경계인 자처, 실체에 상반된 평가, 이념갈등 불 지펴

남과 북의 ‘경계인(境界人)’을 자처한 재독사회학자 송두율(59ㆍ뮌스터대 교수)씨 파문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양심적인 학자’라는 평가에서부터 ‘거물 간첩’이라는 상반된 평가가 대립하면서 송씨의 ‘참 모습’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1944년 10월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 중동고를 거쳐 63년 서울대 철학과에 입학했다. 졸업 이듬해 독일로 유학을 떠나 1972년 프랑크푸르트대에서 ‘헤겔, 마르크스 그리고 막스 베버에 있어서 동양세계의 의미’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논문 지도 교수는 세계적 석학 위르겐 하버마스였다.

송씨는 학위논문을 쓸 때부터 한반도를 둘러싼 역사 현실에 관심을 가진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치하로 유학생들 사이에선 자연스럽게 ‘반정부’ 성향의 모임이나 토론회가 형성됐고 송씨는 그런 모임에서 주도적 역할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73년 9월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한다. 그는 “당시 남한은 유신체제가 선포돼 암울한 상황인데 반해 북한은 독일과 서구 학계에서 지속적인 발전 가능성을 보여 주는 나라로 평가받고 있어 조국의 하나인 북을 직접 보고 학문적 탐구를 위해 방문했다”고 설명했다.


국정원 사실상 '간첩' 결론

그러나 그의 첫 방북에 대해 국정원은 다른 분석을 내놓았다. 독일을 거점으로 활동하던 북한 공작책 이재원에게 포섭돼 입북했다는 것. 그리고 초대소에서 2주간 주체사상학습 및 공작원 교육을 받고 노동당에 입당해 사실상 ‘간첩’이 됐다는 것이다. 송씨는 그러나 노동당 입당과 주체사상 교육은 70년대 북한 방문자들에게는 통과의례에 불과했다고 반박한다.

당시 송씨의 행적과 관련, 주목되는 것은 74년 독일 유학생을 규합해 결성한 재독 민주사회건설협의회(민건협). 국정원측은 송씨가 민건협을 통해 내재적 북한 접근법을 제시, 친북이론을 전파하고 북한으로부터 정기적으로 활동자금을 받아왔다고 밝혔다. 송씨는 79년 재입북해 협의회 활동상황을 보고하고 1,000달러를 받았으며 88년 다시 입북, 조국통일에 힘써주고 유능한 유학생을 연결시켜 달라는 부탁과 함께 또 1,000달러를 받았다는 것이다.

정치국 후보위원 여부도 송씨를 이해하는 중요한 코드다. 국정원측은 송씨가 90년대 초반부터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권력서열 23위)인 김철수로 활동했다고 주장한다. 그가 91년 5월 정치국 후보위원 선임을 통보받았고, 김일성과의 면담 때도 ‘김철수’라는 이름을 사용한 사실도 자백했다고 국정권측은 밝혔다.

실제로 북한은 94년 김일성 장례식 때 송씨를 ‘김철수’로 초청했고 송씨도 이를 인정했다. 그는 이듬해 오진우 인민무력부장 장례식 때도 방북했다.

하지만 송씨는 10월2일 기자회견에서 “내가 그 자리(정치국 후보위원)에 임명돼 있음을 사후에 알기는 했지만 후보위원직을 수락한 적도 없고 활동한 바도 없다”고 반박했다.

송씨에 대한 국정원의 자료는 상당히 구체적이다. 그는 18차례 입북, 독일 유학생 포섭 및 조국통일사업을 위한 지식인 중심의 조직결성 등을 지시받았는데, 그때마다 1,000-2,000달러를 활동비로 받았으며, 91~95년 재독 북한 공작원을 통해 연구비 등의 명목으로 매년 2만-3만달러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는 것이다. 이는 그가 노동당 당원 차원을 넘어 ‘간첩’으로서 실질적인 활동을 한 증거로 제시됐다.


북의 돈, 활동비냐? 연구비냐?

그러나 송씨는 “92~94년 독일내 한국학술연구원 회생을 위한 경비 목적으로 매년 2만~3만 달러씩 총 6만~7만 달러를 받고 73년부터 91년 사이에 7~8차례의 왕복항공비 2만달러 등을 받았을 뿐 공작금 차원의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항변했다.

그는 또 국정원 조사 마지막날인 9월27일 독일에서 함께 활동한 오길남씨와 대면했다. 86년 독일에서 오길남씨의 입북권유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국정원측은 오씨가 독일로 망명신청을 하려할 때 송씨가 그에게 재입북을 권유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송씨는 “오씨의 입북을 권유한 적도, 재입북을 강요한 적도 없다”며 “입북을 권유한 사람은 야채상 모씨”라고 반박했다.

송씨에 대한 조사는 3일 검찰로 넘겨졌다. 검찰은 국정원의 조사결과와 상관없이 원점에서부터 철저히 수사할 방침인데, 송씨가 김철수 후보위원으로 임명돼 활동했는지를 입증하는데 초점을 맞출 계획이라고 한다. 또 그가 북한으로부터 받은 돈의 액수와 사용처 등에 대해서도 철저히 규명할 방침이다.

송씨가 김철수라는 가명을 사용하고 노동당에 입당한 사실이 밝혀진 뒤 정치권은 물론 여론도 부정적으로 흐르고 있다. 한 언론사의 네티즌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70% 이상이 송씨를 ‘법대로’ 처벌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자신의 저서 ‘경계인의 사색’에서 자신을 ‘경계의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지 못하고 경계선 위에 서서 상생의 길을 찾아 여전히 헤매고 있는’ 존재(경계인)로 규정했다. 하지만 송씨가 경계인으로 ‘상생의 길’을 찾기엔 남과 북에 그가 설 공간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송두율 약력

· 1944년 도쿄에서 출생 · 63년 서울대 철학과 입학 · 65년 한·일회담 반대시위 · 67년 독일로 유학 · 71년 뮌스터대·하이델베르크대·베를린 자유대학 등에서 철학 강의 · 72년 하버마스 교수 지도로 철학박사 학위 취득 · 73년 9월 입북, 노동당 입당 · 74년 재독 반유신단체인 ‘민주사회건설협의회’ 초대 의장 · 91년 북한 사회과학원 초청으로 방북 · 93년 독일 국적 취득 · 94년 김일성 조문차 방북 · 2003년 37년만에 귀국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3-10-10 11:43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