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도박] 지지도 추락… 충격요법이 필요했다?


재신임 파문을 보면서 갖게 되는 궁금증은 도대체 노 대통령이 왜 이 시점에서 그 같은 일을 제안하고 나섰을까다. 노 대통령은 첫날 측근 비리의혹에 따른 축적된 국민 불신, 다음날은 발목을 잡는 야당 때문으로 방향타를 바꾸더니, 12일에는 정치권 전반의 불신과 연계해 국정쇄신을 단행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속내를 털어 놓았다.

다시 생각해 보면 이번 사단은 최도술 전 총무비서관의 검은 돈 수수혐의에서 촉발됐다. 20년 측근이 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시점이라면 우선 어떤 형식으로든 사과를 하거나 책임지는 태도를 보여야 하는데 느닷없이 재신임 국민투표를 꺼낸 것은 대통령직을 담보로 일거에 모든 것을 털겠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현재까지 최씨에게 흘러간 SK의 비자금은 10억원대. 일각에서는 이보다 더한 금액이 오갔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이도 있고, 그 많은 금액중 일정 부분이 정권의 가장 핵심 진영으로 흘러 들어갔을 것이란 예상도 하고 있다. 또 내년 총선을 위한 ‘실탄 비축’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어쨌든 칼날 같은 검찰수사가 계속되면 노 정권의 도덕성은 물론 통합신당의 내년 총선결과도 불을 보듯 자명해지는 상황이다. 게다가 급속도로 추락하는 정권 지지도를 다시 붙잡기 위해서는 메가톤급 곤경 탈출 카드가 필요하고, 노 대통령은 ‘국민의 직접 심판’이란 전략을 선택한 것이라는 가설은 설득력을 갖는다.

더욱 고도의 전략으로 재신임의 명분을 측근 비리가 아닌 정치권 전체에 대한 문제로 물타기를 하면서 ‘개혁과 반개혁’의 구도, 혹은 지난 대선과 마찬가지로 낡은 정치와의 대결 구도로 국민투표를 몰아갈 의도도 엿보인다. 여기에는 당연히 진보ㆍ개혁층의 재결집을 통해 차제에 하락을 거듭하는 통합신당의 인기 만회를 노리는 다목적 이유도 포함돼 있다.

이 같은 가설이 실제와 거리가 있다면 노 대통령의 말대로 국정운영이 어려워져 국민심판을 받겠다는 이유밖에는 남지 않는다. 앞으로 국정운영이 더욱 어려워진다면 그때는 무슨 국민심판을 받겠다는 것인지, 어떤 카드를 내밀겠다는 것인지, 무슨 이벤트가 남아 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입력시간 : 2003-10-15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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