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게이트 비화 사전 차단? 최씨 희생양 삼아 정국 반전 노림수도

[노무현의 도박] '재신임' 불씨된 최도술과 盧
SK 게이트 비화 사전 차단? 최씨 희생양 삼아 정국 반전 노림수도

“최도술이 누구길래…”. 10월10일 노무현 대통령이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SK비자금 수수 의혹과 관련, 전격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에 대한 ‘재신임’을 묻겠다는 폭탄 선언을 한 뒤 국민 대다수는 어리둥절해 했다.

그가 도대체 누구길래 최씨의 비리가 대통령 스스로 ‘재신임’을 물을 만한 사안인가 하는 의문이 첫째고, 두번째는 그의 비리가 대통령에게까지 연결돼 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최씨는 그렇게 하루아침에 유명인사가 됐고, 회오리 바람이 몰아칠 ‘재신임 정국’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노 대통령과 최씨의 인연은 1965년 부산의 한 사설 독서실에서 맺어졌으니 햇수로 40년 가까이 된다. 당시 부산상고 3학년이던 노 대통령은 독서실을 많이 이용했는데, 독서실 총무이자 고등학교 1년 후배인 최씨와 사소한 일로 시비가 붙은 것. 말다툼 중에 최씨가 독서실을 관리하는 총무 자격(?)으로 노 대통령의 뺨을 때리자 격분한 노 대통령은 책상 위로 올라가 독서실 학생들에게 ‘총무의 횡포’를 성토하는 일장연설을 했다.

노 대통령의 논리적인 연설에 최씨는 사과를 하면서도 마지막까지 “선배는 그렇게 말을 잘하니까 나중에 변호사나 하라”고 쏘아붙였다고 한다.

젊은 그 시절이 늘 그렇듯 한바탕 난리를 치른 두 사람은 오히려 노 대통령의 졸업 때까지 더욱 가까이 지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사회은 진출하면서 인연을 끊고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고교시절 첫 인연, 이후 충실한 집사로

두 사람의 인연이 다시 맺어진 것은 1984년. 노 대통령이 대전지법 판사를 그만두고 부산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열자 사업에 어려움을 겪던 최씨가 찾아와 변론을 부탁한 것이다. 노 대통령은 그러나 질 게 뻔한 변론 대신 최씨의 빚 1,000만원을 대신 갚아줬다. 감읍한 최씨는 노무현 변호사 사무실의 사무장이 돼 ‘영원한 집사’의 길로 들어 섰다. 실질적인 인연은 이때부터다.

최씨는 88년 노 대통령이 13대 총선에 출마하자 ‘정치인 노무현’을 내조하는 지구당 사무국장을 맡았고, 92년 총선과 95년 부산시장 선거, 2000년 총선 등 잇따른 낙선에도 노무현 곁을 떠나지 않고 뒷바라지했다. 2002년 대통령선거 때는 부산선거대책위원회 회계 책임을 맡았다.

노 대통령의 당선이후 최씨는 청와대로 들어왔다. 그가 맡은 직책은 청와대 인사조정, 재무관리 등 살림살이를 도맡는 총무비서관. 그의 임명을 놓고 “독서실 총무가 청와대 총무가 됐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정치와 전혀 무관했던, 무명의 그가 청와대에 입성하자 자격 시비와 측근정치 폐해론 등 곱지 않은 시선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청와대 입성후 평소 가깝게 지낸 문재인 민정수석, 이호철 민정 1비서관과 함께 대표적인 막강한 ‘부산 사단’으로 통했다.

40년 가까운 두 사람의 인연은 최근 최씨의 SK비자금 사건 연루 의혹으로 위기를 맞았다. 노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최씨는 20년 전부터 최근까지 저를 보좌해 왔기 때문에 그의 행위에 대해 모른다 할 수 없다”며 사실상 ‘최씨의 행위=자신의 행위’라고 했다.

또 “수사가 끝나면 그 결과가 무엇이든 간에 이 문제를 포함해 그동안 축적된 국민 불신에 대해서 국민에게 재신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뒤집어 말하면 최씨 문제를 전적으로 검찰의 판단에 맡기고, 정면 돌파를 선언함으로써 사실상 최씨 ‘지킴이’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가 참여정부 초기 정권을 뒤흔든 ‘나라종금’ 사건의 당사자인 386 핵심 측근 안희정 전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에 대해 5월1일 대국민토론회서 ‘동지’라 부르며 보호막을 씌운 것과는 대조적이다.


SK돈 '총선용 총알'비축 가능성도

정가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의 이 같은 태도가 ‘분신’으로 여겨왔던 최씨의 행위에 ‘배신감’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오지만 실제로는 ‘말 못할’ 사정이 있어 ‘꼬리를 자르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없지 않다. 최씨가 SK로부터 받은 자금이 ‘SK 게이트’로 비화돼 대통령까지 거명된다면 그 이후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최씨는 노 대통령을 위해 스스로 자기 한 몸을 희생하는 게 아니캑?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실제로 그가 받은 것으로 알려진 SK의 돈은 그 성격과 시점이 미묘하다. 검찰은 최씨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그가 대선 직후 SK로부터 11억원을 받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만일 집권에 따른 ‘축하금’ 명목이라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의 뇌물수수에 해당하고 이 돈의 일부라도 노 대통령에게 건너갔다면 노 대통령은 치명상을 입게 된다.

대선기간에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인 이회창씨에게 기울어 있던 SK측이 새 정부의 로비창구로 활용하기 위해 최씨에게 돈을 건넸을 가능성도 있다.

통합신당 이해찬 창당기획단장은 9일 “최도술이 받은 돈은 당선사례금도 대선자금도 아니며, 돈의 대부분은 최도술을 SK측에 연결한 전직 은행 간부 이모씨와 최도술 본인의 계좌에 있는 것으로 안다”고 주장해 이번 사건을 최씨 개인의 비리로 제한했다. 이 경우 그는 내년 총선에 나설 ‘부산 사단’을 지원하는 ‘총알’로 비축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SK비자금이 대선 전에 최씨에게 전달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검찰은 최씨와 이모씨가 대선 당시 부산지역에서 민주당의 대선후원금 모집에 관여하면서 SK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손길승 SK그룹 회장이 ‘이씨가 최 전비서관보다 더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진술을 했다”고 밝혀 그 같은 사실을 뒷받침했다.

또 두 사람 모두 부산상고 동창인 점을 감안하면 이들이 당과는 별도로 SK측으로부터 후원금을 받았을 개연성도 있다. 실제로 이씨는 대선 때 부산상고 동문을 이끌며 선거운동에도 관여했고 경남 양산에 있는 그의 농원에서 ‘53기획단’(노 대통령이 부산상고 53회)으로 통칭된 부산상고 동문 모임도 여러 차례 가진 것으로 전해진다. 대선전 자금이라면 ‘노 대통령은 모르는 사실’이라고 최씨가 잡아떼면 통념상 대통령은 ‘안전권’에 들어가게 된다.


배신자냐? 영원한 가신이냐?

어떤 경우에 해당하든 노 대통령은 최씨 문제를 그동안 축적된 국민불신의 ‘상징’으로 해석하고 재신임을 묻기로 했다. 최씨는 이제 SK와의 검은 커넥션으로 인해 40년 인연의 끈을 저버린 배신자로 추락하느냐, 주군을 위해 희생하는 영원한 가신으로 승격하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3-10-15 17:22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