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 물갈이 통한 당 개혁으로 민심잡기, 당 지지도 상승으로 이어갈 표석

[최병렬 리더십] 총선 로드맵…盧 대항마 굳히기 승부수
공천 물갈이 통한 당 개혁으로 민심잡기, 당 지지도 상승으로 이어갈 표석

11월28일 오후 6시 한나라당 대표실 부근에서 초조하게 민주당 전당대회 결과를 기다리던 임태희 대표 비서실장은 조순형 의원이 신임 당대표로 선출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곧바로 단식중인 최병렬 대표에게 달려갔다.

최 대표는 임 실장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엷은 미소를 지으며 “축하 란(蘭)을 보내라”고 지시했다.

이튿날 기자들과 만난 최 대표는 “아주 잠을 잘 잤다. 앞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제대로 정치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해 민주당 전대 결과에 대한 만족감과 노 대통령에 대한 전의(戰意)를 나타냈다.

최 대표가 민주당 전대에 노심초사할 정도로 관심을 보이고, 노 대통령과 일전을 불태운 것은 궁극적으로 내년 총선 전략과 연결돼 있다는 게 정가의 중론이다. 그의 ‘단식’도 한나라당과 자신의 명운이 걸려 있는 총선에 대한 절박함을 행동으로 보였다는 분석이다.

그렇다면 ‘단식’이란 강경투쟁 뒤에 숨어 있는 최 대표의 총선 전략은 무엇일까.

최 대표가 총선에 대해 본격적인 고민을 한 것은 9월말 정기국회 무렵이라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총선 밑그림도 그 즈음에 그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 측근은 “대표가 취임 초부터 ‘정책정당’을 표방하며 견제와 협조라는 야당의 역할을 강조했지만 당내는 물론 국민 지지가 신통치 않은 것에 대해 고민했다”면서 “정기국회를 통해 당 이미지를 쇄신하려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당내에 이른바 ‘친최(崔)’그룹이 없어 당 안팎으로부터 공격을 받은 것도 최 대표의 총선 전략을 앞당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여권 공세에 야당 공조로 대응

최 대표의 지도력이 한껏 빛날 ‘총선 로드맵’의 핵심은 크게 두가지라고 한다. 하나는 자신의 직할체제로 총선을 치루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권의 공세를 다른 야당과 공조해 대응하는 것이다.

한 측근은 이와 관련, “지난 10월28일 구성된 당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위원장 이재오 의원)를 주목하라”고 말했다. 비대위 구성원이 앞으로 ‘친최’ 그룹의 전위부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비대위 구성 면면을 보면 대여 투쟁에 앞장서고 있는 이재오·김문수·홍준표 의원 등이 비대위의 핵심이다. 최근 노 대통령 측근 비리 의혹을 잇따라 제기한 허태열·이주영·이성헌 의원 등도 비대위 멤버다.

’친최’진영에서 지난 10월말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비자금정국 돌파와 총선 로드맵’이라는 문건은 최 대표의 최근 행보를 엿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최 대표 보고용’이라는 이 문건은 모두 A4 용지 9매 분량으로 한나라당이 SK 비자금 국면을 벗어나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민심 잡기와 당 지지도 상승’에 역점을 둘 것을 강조하고 있다.

문건은 비자금 국면을 이회창 세력 제거의 ‘세력 게임’이나 ‘야당 탄압론’으로 맞설 경우 노 대통령의 페이스에 말려들게 된다며 SK사태가 내년 총선과 직결된 사안인 만큼 ‘민심 잡기’가 총선의 관건이라고 분석했다. 문건은 ‘민심 잡기’에서 노 대통령이 한수 앞서 있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한 뒤 당의 전면 개혁을 통해 당 지지도를 끌어올리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당 개혁의 핵심은 소위 ‘물갈이 공천’이다. ‘친최’ 성향의 소장파·중도파·민주계를 전면에 배치하고 그들을 당 중요 실무선에 배치해 당내 입지를 높이고 동시에 지역에서 경쟁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물갈이 전략이며 총선 승리전략이라고 문건은 지적했다.

특히 이 문건에서 주목되는 것은 여권이 노 대통령 일부 측근과 열린우리당 의원 일부를 희생양으로 삼아 야당 전체를 사정하려고 하는 만큼 한나라당에서도 ‘희생양’이 필요하다고 적시한 대목이다. 여기에서 눈여겨 볼 부분은 최 대표측이 파악한 여권의 총선 쨍?전략이다.

노 대통령을 위시한 여권은 검찰사정을 통해 정치권에 빅뱅을 일으키고 이를 총선 승리로 연결시킬 것으로 최 대표측은 보고 있다. 검찰의 전방위 사정에 한나라당이 최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당ㆍ자민련과 연대한 ‘반노 전선’의 구축과 비자금 정국의 최대 무기인 노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법의 관철만이 여당의 총선 승리 전략을 깰 수 있는 방안이라고 여기고 있다.

최 대표는 이미 조순형 대표 체제의 민주당과 자민련에 우호적인 메시지를 보냈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이 당론으로 특검법 재의결에 찬성할 경우 국회 등원 의사를 내비쳤다. 또 자민련에 대해서는 홍사덕 총무를 비롯해 몇몇 인사가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대표의 야당 공조 카드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분권형 개헌이 가장 폭발력이 클 것으로 보인다. 최대표의 한 측근은 “대표가 민주당과 자민련이 관심을 보인 분권형 개헌, 이원집정부제(내각제) 등에 대해 시기상조라며 반대 입장을 보이던 태도를 누그러뜨린 것은 야3당의 연대 고리로 활용하겠다는 복안”이라고 귀띔했다. 야3당 연대가 급물살을 탈 수 있는 카드라는 뜻이다.

특히 자민련에 대해서는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의 연내 제정을 약속해 신행정수도건설 특위 구성안 부결에 따른 반감을 아우르며 특검법 재의결 찬성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특검법 관철로 정국지형 반전 노림수

최 대표측이 우려하는 것은 민주당내 친 여권 인사의 행보다. 열린우리당과 코드가 맞거나 여권 입당 가능성이 있는 민주당 의원의 이탈을 막기 위해서라도 특검법을 통해 하루빨리 정국 지형과 여론을 반전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한 고위인사는 비대위 내부 정보를 토대로 “특검으로 노 대통령의 측근 비리가 밝혀질 경우 대통령이 벼랑으로 밀리는 상황이 올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여론은 한 순간에 바뀐다”고 말해 한나라당이 특검법에 거는 기대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케 했다.

최 대표는 최근 단식 강행에 따른 비판 여론(식물 국회와 민생 외면)과 정치권의 요구를 수용, 국회 등원과 단식을 병행하는 양동작전을 구사할 태세다. 그러나 최 대표의 리더십과 총선 전략이 아직 불안정하고,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와 두 야당의 행보 또한 불확실성이 높아 총선으로 가는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3-12-03 15:21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