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의인' 박남이·송준후·김동식

[2003 아름다운 사람들] 훈훈한 사회 만들어낸 용기있는 삶
'지하철 의인' 박남이·송준후·김동식

지하철은 2003년 최대의 참사를 불러온 진원지였다. 지난 2월 192명의 고귀한 생명이 대구 지하철의 화마 속에서 스러졌다. 이렇게 세상에서 가장 귀한 생명들이 지하철에 흩뿌려져서일까. 올해는 세상을 훈훈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이들 또한 지하철(철도)와 관련해서 많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김행균 씨가 ‘아름다운 철도원’이라면, 박남이(32)씨는 ‘지하철 의인’이다. 사람들로 붐볐던 11월 8일 오후 6시 20분께 충무로역 승강장. 박씨는 지하철이 막 들어오는 순간 술에 취한 노인이 실족해 선로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주저없이 몸을 던졌다. 노인을 승강장 밑 아래 틈으로 밀어넣고 자신도 몸을 웅크려 가까스로 위기에서 벗어났다.

정작 그를 돋보이게 한 건 이런 용감한 행동보다도 그의 겸손함이다. 노인을 구출한 뒤 그는 경찰에서 “사람이 승강장 아래로 떨어지는 걸 보고 본능적으로 뛰어들었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이라도 그랬을 것”이라고 말한 뒤 신분도 밝히지 않고 사라졌다.

‘숨은 의인 찾기’에 언론이 온 힘을 쏟은 것은 당연지사. 11월 10일 언론의 집요한 추적 끝에 모습을 드러낸 박씨는 자신을 향한 쏟아지는 찬사에 극구 손사래를 쳤다. “당연한 일을 한 것인데 높이 평가하는 것은 부담스럽다.”

이번 선행은 그에게는 본능 같은 것이었다.

요즘 젊은이들의 인정이 메말랐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유명해지려 한 일도, 대가를 바라고 한 일도 아니에요. 각박하다고 말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살만 해요. 공익 광고에도 힙합을 추는 젊은이가 노인의 짐을 들어 드리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는 여전히 ‘살만한 세상’이란 그의 믿음을 목숨을 건 용기로 입증했다.

사랑도 전염처럼 번지는 것일까. 그로부터 20일이 채 지나지 않은 11월 17일, 또 한 명의 젊은이가 70대 노인을 구하기 위해 지하철 선로에 뛰어들었다.

지하철 공익요원 송준후(22)씨. 그는 운행중인 전동차가 불과 10여 m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선로로 몸을 던져 극적으로 전모 할머니(73)를 구해냈다.

이날 오후 5시 55분쯤 부산지하철 1호선 남포동역에서 노포동 방면으로 가는 전동차를 기다리던 전씨가 발을 헛디뎌 중심을 잃으면서 지하철 선로로 떨어졌다. 전동차는 급정거했지만 실족지점을 30m 이상 통과했다.

사고 현장 바로 앞에 근무 중이었다는 송씨는 “할머니가 떨어졌을 때 오직 구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며 “내 눈 앞에서 벌어진 일이고 인명 구조는 내 임무여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고 겸손해 했다. 생명을 구하는 데 그 어떤 상황도 장애 요인이 될 수 없다는 얘기다. 단 1~2초가 생(生)과 사(死)를 가를 수 있는 급박한 순간에 이 같은 공익(公益)의식은 진가를 발휘했다.

지하철에서 강도를 잡은 용감한 역무원도 있다. 11월 28일 한적한 새벽 대구지하철 큰 고개역에서 20대 여성을 마구 폭행하고 핸드백을 빼앗아 달아나던 강도를 역무원 김동식 씨가 격투 끝에 붙잡았다. 피해 여성의 비명을 듣고 뛰쳐나온 김씨는 강도와 격투를 벌인 뒤 시민들의 도움을 받아 강도를 경찰에 넘겨 사람들로부터 많은 박수를 받았다.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 2003-12-10 15:45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