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출정 앞두고 심각한 내우외환에 휩싸여

혼돈의 한나라, 가시밭길을 가려는가?
총선 출정 앞두고 심각한 내우외환에 휩싸여

“목표는 내년 4월15일 총선에서 다수 후보를 당선시키는 것이다. 만일 노무현 대통령이 이끄는 열린우리당 등에 패해 원내 제 1당이 안되면 정계를 은퇴하겠다”.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는 지난 12월21일 한 방송국의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비장한 어조로 말했다. 최 대표와 한나라당의 명운이 걸려 있는 4.15 총선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총선 결과가 최 대표의 기대대로 될 지는 미지수다. 총선 전망도 갈리고 있다. 낙관론은 총선이 3강구도로 치뤄지고 새해부터 특검정국이 되면 한나라당이 제1당이 되는 것은 무난하다고 본다. 반면 총선구도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한나라당에 불리한 대선자금 정국이 지속되고 있고, 총선용 ‘칼자루’를 여권이 쥐고 있다는 비관론 내지 신중론도 만만찮다.

분명한 것은 총선의 낙관· 비관적 결과 모두 한나라당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한나라당의 내· 외부 사정은 카오스적이다. 대선자금 정국과 특검을 앞둔 정치 지형은 외견상 한나라당에 유리한 듯 하지만 여론과 당내 구조는 취약하고 위험스럽기까지 하다.

실제 한나라당 안팎에는 당을 흔들고 총선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뇌관’들이 적지않게 깔려있다. 이러한 뇌관들을 별탈 없이 제거하지 못할 경우 최 대표가 기대한 제1당은 ‘희망 사항’에 불과하다.

최약한 당내구조, 부패정당 오명

현재 한나라당을 압박하는 대표적인 ‘뇌관’은 총선의 바로미터인 ‘민심(民心)’이다. 지난해 9월말 민주당이 분당, 정국이 신4당 체제로 재편된 뒤 한나라당은 줄곧 정당 지지도 1위를 유지했지만 지난해 말 ‘차떼기 당’으로 낙인이 찍힌 뒤 지지도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12·19 대선 1주년을 맞아 MBC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은 지지율 16.2%로 민주당 19.6%에 3.4% 포인트 뒤진 것으로 나타났다. 열린우리당(16.1%)과는 불과 0.1% 포인트 차이를 보였다.

더 심각한 것은 한나라당에 불리한 대선자금 수사가 진행 중에 있고 새해 벽두부터 대선자금을 유용한 정치인들의 소환이 예고돼 있어 부패정당이란 오명이 덧칠될 경우 한나라당에 대한 민심 이반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총선에서 경쟁력 있는 인사들이 한나라당 입당을 주저하고 있다. 한나라당으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았다는 한 유명 법조인은 “지금의 한나라당으로는 총선에서 가망이 없다. 당 간판을 내리고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여 국민에게 감동을 주어야 희망이 있다”면서 “입당은 그때 가서 생각해보겠다”고 말했다.

김문수 당 외부인사영입위원장도 “내세울만한 거물급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당이 변하면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말해 당이 처한 어려움을 인정했다.

한나라당의 뇌관은 외환(外患)만이 아니다. 내부적으로도 곳곳에 위험 요소들이 도사리고 있다. 한나라당 내부의 대표적인 뇌관은 ‘총선 체제’를 아직 갖추지 못한 점과 당내 갈등을 비롯해 최병렬 대표의 리더십 부재 등을 들 수 있다.

민주당이 지난해 11월말 조순형 체제를 출범시켜 당 지지도 제고는 물론 외부 인사 영입에 박차를 가하고, 열린우리당도 1월11일 전당대회를 계기로 본격적인 총선에 나설 것이 예상되는데 한나라당은 아직까지 분명한 총선 체제를 갖추지 못하고 당내 계파와 세력간 논쟁만이 불거져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총선의 최대 화두가 될 ‘정치개혁’과 ‘세대교체’라는 아젠다를 선점하기 위해 체제 변신을 도모하고 있고, 추미애 의원 강금실 법무부장관(아직 러브콜 단계지만) 등 차세대 여성주자들을 앞세워 정치권 쇄신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는데 반해 한나라당은 ‘구당(舊黨)’, ‘노인당’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공천물갈이, 당내 소용돌이 만들수도

최병렬 대표가 12월28일 공천 작업을 통해 2월쯤 한나라당 간판을 내리고 새 당으로 총선에 나선다는 복안을 밝혔지만 그러한 로드맵이 복병 없이 제대로 전개될 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지난 12월15일 총선준비위가 발족했지만 공천심사위 구성 등에 대해 당내 중진과 비대위, 소장파의 의견이 상충, 단일한 체제정비 마저 이루지 못한 예는 한나라당의 총선체제 정비가 험로를 예고하는 징후들이다.

특히 ‘제2창당’의 핵심이 될 공천 물갈이는 한나라당을 급격한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넣을 수 있다. 지난 12월26일 후보자 자격 규정과 선거인단 구성 등을 골자로 하는 2004년 총선 공천규정 개정안을 발Η償嗤?공천 부적격자 기준이 모호하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등 벌써부터 당내 여기저기서 반발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최 대표가 12월22일 서청원 전 대표와 극비리에 오찬회동을 갖고 공천 과정에서의 도움을 요청했지만 별 소득이 없이 끝났고, 일부 공천문제나 당 운영방식에 대해서는 격론을 벌인 것으로 전해지는 것은 공천 물갈이가 그만큼 쉽지 않다는 방증이다.

급기야 이재오 사무총장이 12월27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지금은 한 시대를 정리할 시간”이라며 5· 6공 출신 인사들에 대한 ‘집단 물갈이’를 제기하며 ‘총대’를 멨지만 곧바로 해당 의원들로부터 “공천탈락 1순위는 최병렬 대표”라는 반격에 직면하는 등 공천 갈등은 당을 내홍 상태로까지 밀어넣을 수 있을 만큼의 힘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러한 어수선한 상태에서 당을 통솔해 짜임새 있는 총선 준비를 하기 위해서는 최 대표의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지만 현재 당 안팎의 중론은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쪽이다.

지난해 11월말 노 대통령의 측근 비리 특검법 재의결 거부에 대해 ‘단식’ 으로 맞서 당내 위상을 확보하고 ‘최틀러’ 다운 리더십을 회복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곧바로 대선자금 정국에서 몇 차례 미숙한 행보를 보이고 선거법 개정 과정에서 말바꾸기 등으로 리더십이 크게 흔들린 상태다.

도마 위에 오른 최병렬 리더십

지난해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대국민 기자회견(12월15일)에 이어 노 대통령의 기자회견(12월16일)이 있은 지 다음날(12월17일) 최 대표가 노 대통령과의 대립각을 세우기 위해 새로운 내용도 없이 기자회견을 강행한 것은 미숙한 리더십의 단적인 예. 최 대표의 기자회견은 오히려 전날 있었던 노 대통령의 실패를 상쇄시켜버린 결과를 가져왔고, 기자회견이 당내 비상대책위 강경론자들에 의해 주도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의 리더십은 크게 상처를 입었다.

또한 선거법 개정 과정서 초미의 관심사인 의원정수에 대해 현행 273명 고수 입장을 천명했다가 갑자기 ‘증원’ 입장을 밝혀 대표와 당에 대한 비난여론이 빗발치는 단초를 제공, 당 안팎으로부터 리더십· 안목 부재라는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특히 최 대표 체제 출범 후 친위부대가 된 비상대책위 소속 의원들이 당을 강경투쟁 일변도로 운영한 것도 최 대표의 리더십 부재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중진들과 소장파 의원들 상당수가 현재의 강경투쟁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실익을 얻지 못한다며 투쟁노선의 재점검을 요구했지만 최 대표가 비대위 강경파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묻히고 말았다.

심지어 비대위위원장인 이재오 사무총장이 공천심사위원장 임명과 관련, 박근혜 의원을 의중에 두고 있던 최 대표와 입씨름을 하고 이 총장과 가까운 일부 의원들이 위세를 부리는 등 ‘전횡’ 시비가 일면서 “한나라당이 이재오당이냐”, “대표는 없고 총장만 있다”는 불만이 당 안팎에서 터져나오기도 했다.

특검을 앞두고 가속도를 내고 있는 불법 대선자금 수사도 한나라당을 혼돈스럽게 하고 있다. 새해 초부터 시작될 대선자금 유용 정치인들에 대한 소환조사는 자칫 한나라당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

‘차떼기 당’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한나라당은 대선자금 용처가 파렴치하고 부도덕한 형태로 드러날 경우 ‘결단’을 내려야 할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즉 관련 인사들을 ‘팽’시키느냐, 아니면 대여 투쟁 차원에서 그들을 감싸안고 투쟁수위를 높이느냐 하는 것이다.

최병렬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는 전자(前者)쪽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당내 영향력과 일정 세력을 보유하고 있는 이회창 전 총재 그룹과 서청원 전 대표측 등은 후자(後者)쪽에 비중을 두고 있어 당내 갈등이 총선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최악의 경우 최 대표 진영과 이회창· 서청원파가 결별, 분당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전 총재의 검찰 출두 후 한나라당의 텃밭인 영남권에서 이 전 총재의 영향력이 강화되고 ‘물갈이’ 대상이 주로 영남권 중진이란 점도 분당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일각에선 가능성이 그리 높지는 않으나, 한나라당 분당파와 자민련이 연대, 보수정당을 기치로 ‘나제(羅濟)동맹’이 결성될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제기되고 있다. 그렇게 될 경우 최 대표가 기대한 제1당은 물 건너 갈 가능성이 높다.

민주ㆍ우리당 공조 움직임도 ‘불안’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과 우리당 간에 물밑 ‘공조’ 움직임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과 노 대통령이 “민주당을 찍으면 한나라당에 유리하다”는 발언도 심상치 않은 대목이다.

실제 양당 간에 공조가 이뤄질 경우 최대 표밭인 수도권에서 한나라당은 3자 구도를 전제로 한 기대수치를 대폭 낮춰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또한 우리당의 영남권(특히 부산· 力?과 충청권 잠식이 현실화되고 있어 한나라당의 제1당 가능성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노 대통령의 발언은 총선에 대한 ‘의지’를 표출한 것으로 호남 표심에 영향을 주고 선거 막판에 ‘표쏠림’ 현상이 나타날 수 있어 3자 구도를 전제로 한 한나라당의 총선 전략은 근본부터 수정해야 한다.

4개월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서 최병렬 대표의 한나라당호가 당의 카오스를 정리하고, 제1당에 안착할 수 있을 지 주목되고 있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4-01-02 16:30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