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일 활동에 쾌감과 애정, 문화 콘텐츠 '생산 주체자' 자부심도

디시 폐인 노일호씨, "디시는 감정적 배설의 공간"
폐일 활동에 쾌감과 애정, 문화 콘텐츠 '생산 주체자' 자부심도

1. 직업 : 알뜰살뜰한 가정 주부
2. 사회 경력 : 여러 가지 알바(아르바이트) 경험과 짧은 기간의 직장 생활과, 대단히 지루하고 기나긴 솔로 생활
3. 나이 : 폐인동(디시인사이드 폐인동호회) 공식 나이 15세 (주민등록상 나이는 곱하기 2)
4. 가족 : 아부지(아버지), 어무이(어머니), 여동생, 로이(ROY)
5. 주량 : 소주 2병 반 + 맥주 2잔 + 소주 반 병 (정확히 순서가 지켜져야 일일 주량이…)
6. 지금 쓰고 있는 카메라 기종 : 후지 파인픽스 6900z, 미놀타 X-570
7. 일일 폐인동 사용 시간 : 알 수 없음
8. 일일 PC 사용 시간 : 약 15 시간
9. 나는 폐인동에서 이런 사람 : 신비롭고 영험한 능력의 소유자, 외로울 때 오프(모임) 주선하는 주당, 산만하고 가벼운 성격의 솔로…

이름을 대신하는 닉네임 ‘R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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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호회 게시판 ‘폐인동 인물 갤러리’에 쓴 자기 소개 글 만큼 그를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은 없을 듯하다. 그는 이런 사람이다. 무인도에 갈 때 세 가지만 가져 가라고 하면 디지털 카메라와 디시(인터넷이 장착된 컴퓨터가 대신하겠지만), 그리고 술(위의 주량을 보시라)을 택하지 않을까 싶다. 디시에 폐인(PAIN) 동호회 창립 멤버로 벌써 2년 넘게 ‘폐인’ 생활을 부지런히 하고 있으니 ‘살아있는 원조 디시 폐인’, 혹은 ‘전형적인 디시 폐인’이라고나 할까.

    올해로 우리 나이 서른 살의 노일호씨(익명의 공간을 활동 무대로 하는 그는 실명이 공개되는 것을 망설였지만, 그의 미니 홈페이지에 실명을 올려 놓은 것을 보니 그리 큰 실례는 아닐 듯 싶다). 직업란의 ‘알뜰살뜰한 가정 주부’는 ‘백수’를 표현하는 그의 다른 방식이다. 이 생활이 벌써 4~5개월 째다. 그렇다고 취업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실업자는 아니다. 캐나다로 1년 정도 어학 연수를 갔다 온 뒤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해 준비의 시간을 갖고 있을 뿐이다. 어찌 됐든 직장이 없다 보니 요즘은 하루에 한번도 집 밖을 나서지 않는 날이 허다하다. 그래서 ‘노일호’라는 인물이라기 보다는 ‘ROY’라는 닉네임으로 지내는 시간이 훨씬 많다. 아니 아예 하루 종일 ‘ROY’로서만 살아가는 날이 더 많을 지도 모른다.

    먹고 자는 일 빼면 모두 ‘디시질’

    오전 7시30분 무렵. 일단 눈을 뜨면 미처 잠에서 해방되기 전, 컴퓨터의 전원 버튼으로 손이 간다. 특별히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오랜 습관일 뿐. “매일 보면서도 금세 돌아 서면 또 보고 싶은 애인 같은 느낌”이다. 그렇게 켜진 컴퓨터는 외출을 하는 날이 아니라면 밤 12시가 됐든, 새벽 2시가 됐든 잠을 잘 때까지 늘 ‘ON’ 상태에 있다.

    그가 컴퓨터로 하는 일의 90% 이상은 이른바 ‘디시질’(디시 활동). 다른 폐인이나 ?자들이 올린 사진을 보고 글을 읽고 또 여기에 적극적으로 리플(댓글)을 달아주는 일이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요즘 말 수가 줄어” 하루에 띄우는 댓글이 20~30건 정도이지만, 한창 때는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수백 건의 댓글을 올리기도 했다. “왜 그렇게 많은 글을 띄우느냐”는 질문은 부질 없다. 일상 생활에서 대화를 주고 받듯 그는 댓글을 통해서 다른 폐인들과 대화를 하는 셈이다. 글 하나 하나에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시시콜콜한 사담이기도 하고, 농담이기도 하고, 때론 사진이나 앞선 댓글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다. 요즘은 컴퓨터 영어 공부에 매달리고 있지만 습관적으로 틈만 나면 링크해 둔 디시를 오가며 새로운 정보를 찾고, 또 글을 남긴다. “뗄래야 뗄 수 없는 생활의 일부”인 것이다.

    스스로 문화를 생산하고 소비한다

    그가 단지 디시 문화의 소비자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다른 폐인들처럼 문화 콘텐츠 생산의 주체이기도 하다.

    일찌감치 사진에 재미를 붙인 그가 디지털 카메라를 구입한 것은 2001년. ‘후지 파인픽스 6900z’ 중고 제품을 주변 기기를 포함해 무려 120만원의 거금을 주고 구입했다. 국내에 디카가 제대로 보급되기도 전에 340만 화소의 제품을 구입했으니 ‘얼리 어답터’(신제품을 먼저 구입해 사용해보는 소비자군)의 기질이 다분했다.

    이 때부터 디카의 매력에 흠뻑 빠진 그에게 막 걸음마를 시작한 디시는 날개를 달아 줬다. 수많은 브랜드의 유저들이 올린 사용기와 구입기, 그리고 강좌는 학교 강의나 전문 서적들로서는 얻을 수 없는 내용들이었다. “디카와 관련한 모든 정보는 디시로 집중됐다고 보면 된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대학에서 정보통신을 전공한 그가 디카에 미쳐 지냈으니 디카와 인터넷의 만남에 열광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디시 폐인을 자처했고, 그 해 12월 만들어 진 폐인 동호회의 창립 회원이 됐다(지금은 폐인이라는 말이 보통 명사가 돼 버렸지만 최초의 폐인은 디시 폐인이다).

    어디를 가든, 심지어 화장실에 갈 때 조차 디카는 그의 필수품이다. 그림이 된다 싶어야 셔터를 눌렀던 필름 카메라 시절과 달리, 일단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 사진으로 담는다. 그리고 이 사진들을 고스란히 디시 갤러리에 올렸다.

    그가 최근 올린 사진 한 장. 직접 집에서 만들었다는 떡볶이 사진이다. ?자들과 달리 ‘하오체’는 쓰지 않지만 사진에 달린 설명이 재미 있다. “전에도 같은 사진을 올렸었는데 더욱 매콤하게 뽀뽀샵(포토샵)으로 양념을 해봤습니다. 원래 윤기가 좌르르~ 흐르게 찍었어야 하는데 당췌 실내 조명이 안 좋아서리~”

    디시는 생활의 전부

    그의 디시 활동이 온라인 상에만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디시가 곧 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디시가 오프라인 공간의 일상 생활에도 깊숙이 파고 든 때문이다.

    그는 수시로 모임을 갖는 폐인 동호회의 연락책. 동호회 회원들은 20대 초반에서 30대 중반의 컴퓨터 관련 전문직종 종사자가 대부분이다. 현재 고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폐인들은 40~50명 수준. 오프 모임을 갖게 되면 적게는 10여명에서 많게는 20명까지도 참석을 한다. 함께 사진을 찍으러 가기도 하고, 여느 모임이나 다름없이 밤 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인생을 논하기도 한다. 요즘은 겨울이라 사진 촬영 모임이 뜸한 편이지만 1월 초엔 몇몇이서 선유도로 촬영을 다녀 왔다.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편인 그는 디시를 통해 밴드 활동도 하고 있다. 그가 맡은 것은 기타와 보컬. “어려서 부터 익힌 기타 연주 실력은 수준급”이라는 것이 그의 자평이다. 순수 아마추어 밴드이지만 지난해에는 한 폐인이 운영하는 서울 압구정동 카페에서 3번 씩이나 공연을 가질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했다.

    그의 캐나다 어학 연수는 이르면 2월 초가 될 듯하다. 그렇다고 그의 폐인 활동이 여기서 멈추는 것은 아니다. “이곳은 마음껏 배설할 수 있는 공간이다. 거기에 쾌감을 느끼고 애정을 느낀다. 연수 기간은 물론 나이 50이 되더라도 디시가 없어 지지 않는 한 폐인 생활은 계속될 것 같다.” 폐인은 혹시 열정과 정열의 다른 표현이 아닌가 싶었다.

    이영태기자


    입력시간 : 2004-01-27 15:03


    이영태기자 yt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