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권 대한가정의학회이사장"특별한 사람만이 주치의를 둔다는 변견은 버려야"

[가족 주치의] 환자를 잘 아는 의사가 진짜 '명의'
<인터뷰> 이정권 대한가정의학회이사장
"특별한 사람만이 주치의를 둔다는 변견은 버려야"


“주치의는 대통령이나 돈 많은 사람들만이 둘 수 있다는 생각은 편견이다. 정작 주치의가 필요한 사람은 일반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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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정권(49) 성균관대 의대 가정의학과 교수는 ‘가정 주치의’ 얘기를 꺼내자 마자 대뜸 이렇게 말했다. 의료환경이 날로 복잡해지고 급변하는 생활 패턴으로 인해 만성질환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평생동안 건강을 체계적으로 설계ㆍ관리해 주는 단골 주치의가 절실히 요구되는데도, 이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개인은 물론 국가적 차원에서 의료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 주치의를 두는 가정이 늘어나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 교수를 만나 가정 주치의 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 교수는 5,000여명의 가정의 모임인 대한가정의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 '의사쇼핑'은 시간과 돈 낭비

    -환자들을 진료할 때 가정 주치의 필요성을 느낄 때가 많을 것 같은데.

    “당장 오늘(1월 30일)도 참 안타까운 환자를 한분 만났다. 경남 김해에 사는 40대 여성인데, 지난해 8월 ‘여기저기 쑤시고 소화가 안 된다’며 부산의 한 대학병원을 찾아가 위내시경 검사를 한 뒤 이상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도 (암이 아닐까) 걱정이 돼 다른 병원을 찾아가 검사를 했다. 역시 이상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이 환자는 3개월 정도 여러 병원을 돌아다니며 ‘닥터 쇼핑’을 하다가 급기야 삼성서울병원까지 왔다. 대형병원에 대한 막연한 믿음을 갖고서. 하지만 내가 이 환자를 진료해 보니 병리적으로 큰 문제가 없다. 오늘도 남편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상경했는데, 돈과 시간 낭비에다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을까 싶다. 이 환자도 가정 주치의를 뒀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가정 주치의를 두면 어떤 점이 좋은가.

    “우선 경제적이다. 의사 입장에서는 환자를 지속적으로 관리하지 않은 경우 방어 차원에서라도 이것 저것 검사해볼 수밖에 없다. 단골 환자는 새 증상만 이야기해도 이전의 데이터와 비교해 질환이나 병세를 쉽게 판단할 수 있다. 각종 질환이나 건강 관리에 대한 자문을 구하기도 쉽다. 동네병원 의사도, 의사라면 어느 병원 어떤 의사가 어떤 병에 전문가이고, 수술을 잘 하는지 알고 있다. 그 추천을 따라가면 ‘닥터 쇼핑’을 안해도 된다.”

    -가정 주치의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노하우가 있다면.

    “환자 스스로가 의사와 관계를 잘 맺어야 한다. 의사에게 불편한 증세를 자세히 이야기해야 하고, 질문에는 적극적으로 답하는 게 좋다. 어떤 환자는 가족의 병력을 물어보면 ‘남의 사생활을 왜 물어보느냐’고 따지는데 잘못된 생각이다. 의사의 조언이나 지시 사항도 잘 따라야 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환자들은 의사의 지시 내용을 진찰실을 나와서는 반쯤 잊어버리고 집에 가서 또 반을 잊어버린다고 한다. 환자가 의사 말을 지독히 안 듣는다. 또 지시사항 중 모르는 내용이 있으면 반드시 물어봐야 한다.”

    ◈ 동네병원 의사들도 긴장 늦추지 말아야

    -1차 의료기관에 대한 환자의 불신감도 가정 주치의 확산에 걸림돌이라는 지적이 있다.

    “불신감의 밑바닥에는 의사와 환자간의 의사 소통 문제가 있다. 내가 보기에는 동네병원 의사의 실력이 떨어지기 보다는 ‘주의 부족’ 이 큰 원인이다. 대부분이 감기 두통 복통 등의 환자이기 때문에, 암과 같은 큰 병에 대한 생각을 갖고 환자를 대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점에서 동네병원 의사들도 대형병원과 마찬가지로 항상 긴장감을 늦춰서는 안 된다. 주치의가 된다면 의사도 더욱 신경을 쓸 것이다.”

    -명의(名醫)를 찾아 다니는 ‘의사 쇼핑’ 문제가 심각한데, 명의의 기준은?

    “사회경제적 배경이나 생활환경 및 식습관, 가족의 병력 등 환자의 전반적인 상태를 잘 알고 있고, 알려고 하며, 알려는 준비가 돼있는 의사가 진짜 명의가 아닐까.”

    김성호기자


    입력시간 : 2004-02-03 15:21


    김성호기자 shki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