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관리도 맞춤형 시대, 가족병력 꿰뚫어 '큰병' 조기발견
[가족 주치의] 가족 건강보감 "주치의 있으세요?" 건강관리도 맞춤형 시대, 가족병력 꿰뚫어 '큰병' 조기발견
▲ 가정 주치의는 건강관리 설계사?
최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종양혈액내과 진료실 앞에서 만난 두 환자의 이야기다. 같은 위암 환자이자 평소에 건강 관리에 무관심했던 두 사람의 운명이 이처럼 극명하게 엇갈린 이유는 무엇일까. 더욱이 A씨는 아픈 몸을 이끌고 대형 병원을 찾아다니며 많은 돈과 시간을 쏟아 부은 반면, B씨는 스스로 자신의 병을 찾아낼 노력을 하지 않았다. 답은 간단하다. 주치의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다. 평소 건강을 자신해온 A씨는 가족의 건강 관리를 책임지는 주치의를 두지 않았으나 B씨는 건강 유지와 질병의 예방 및 치료를 위한 동반자로 가족 주치의를 두었다. 두 자녀를 두고 있는 A씨는 “나나 애들이나 몸이 아플 때마다 이 병원 저 병원을 찾아 다녔을 뿐 단골로 정해놓은 의사는 없다”고 실토했다.
그렇다면 각종 질병의 공격을 막아줄 파수꾼은 없을까. 가까이 있는 의사를 가정 주치의로 두면 된다. 사업가가 대부분 법무ㆍ세무 상담을 위해 단골 변호사와 세무사를 두고, 또 재테크와 보험 설계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듯이, 한 가족 구성원의 건강 관리를 아예 한 의사에게 맡겨보자는 것이다. 가족 주치의라고 해서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동네병원 가운데 모든 질환을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가정의학과나 일반내과 전문의 중 친절하고 책임성 있는 의사라면 충분하다. ▲ 가정 주치의 왜 필요한가 단골 의사를 주치의로 두면 각종 질병의 진단 및 치료는 물론 예방과 재활, 건강 상담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인 건강 관리를 받을 수 있다.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는 의사라면 그 환자의 직업과 과거 병력, 생활습관 등을 꿰뚫고 있는 데다 집안 환경과 주변 가족의 건강 상태까지 두루 파악하고 있다. 자연히 주치의는 그 고객에게 필요한 조치가 무엇인지를 가장 잘 알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필요할 때마다 양질의 상담과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양윤준 인제대 일산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아주 희귀한 증세의 병은 2, 3명의 전문의사에게 진료 받는 게 현명할 수 있지만 일반인이 앓는 대부분의 질환은 생활 습관에서 비롯되는 만성 질환으로 한 명의 의사에게 맡기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대다수 동네병원 전문의들은 “자주 오는 환자는 몇 마디 말과 얼굴 표정만 봐도 대충 어떤 상태에 있는지 금방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연히 동네 소아과 의원에 들렀다가 유방암을 발견했다”는 어느 환자의 말처럼, 각종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는 것도 주치의의 몫이다. 1,000여명의 환자를 주치의로 관리하고 있는 황가정의학과 의원(경기 고양시)의 황의정 원장은 “단골 여성환자의 경우 감기 증세로 찾아오더라도 유방암 자궁암 등의 검사를 병행, 조기에 발견한 적도 많다”고 말했다. 또 한 질병만을 전문적으로 진료하는 대형병원 전문의와 달리, 각종 질환이나 건강관리 전반에 대해 충분한 상담과 진료도 가능하다. 조정진 한림대 평촌성심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환자들이 병원을 찾는 것은 질병 치료가 일차적인 이유이지만 의사로부터 ‘병이 나을 수 있다’는 등의 위안을 얻으려는 정신적인 요소도 적지 않다”면서 “하지만 대형병원 전문의는 수술 가능 여부 등 자신의 전문분야에만 관심이 있을 뿐 환자의 심리적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의료쇼핑’은 이제 그만. 가정 주치의의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환자들은 경미한 질병에도 대학병원과 명의를 찾아 돈과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이들을 ‘의료 쇼핑족’으로 부른다. 환자들이 의료 쇼핑에 빠지는 것은 “동네병원이 병을 제대로 찾지 못할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에서 출발한다. 특히 상당수 환자는 병세가 급히 호전되지 않을 경우 여러 병원을 옮겨 다니며 중복 진료도 마다하지 않는다. 권용진 대한의사협회 공보이사는 “병을 찾아내는 데는 100번의 검사보다 의사와의 충분한 상담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면서 “그런데도 일부 환자들은 각종 검사를 위해 병원을 찾고 있을 정도”라고 지적했다. 의료 쇼핑은 결국 개인의 의료비는 물론 건강보험료의 낭비로 연결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대학병원의 위암 수술 전문의 진료실 앞에 가보면 간단한 소화 불량 환자가, 뇌혈관 수술 전문의 진료실 앞에는 두통 환자가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무리 뛰어난 의사라도 3~4시간에 200여명의 환자를 만나다 보면 진료가 제대로 될 리 없다. 환자가 그 의사의 명성만큼 진료 혜택을 볼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 게다가 실력 있는 의사가 하루의 절반 이상을 불필요한 의료 쇼핑 족에게 빼앗기는 만큼, 정작 그 명의의 손길이 필요한 중환자들에게 불이익이 고스란히 돌아간다. 전문가들은 “개인이나 국가적 차원의 의료서비스 질을 높이고 평생을 건강하게 살려고 한다면 지금 당장 가족 주치의를 만들어라”고 강조한다. <한국인의 주요 평생건강관리 가이드라인 (무증상 성인 대상 선별검사 권고안)>
입력시간 : 2004-02-03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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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기자 shki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