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만원 가진 전두환 전 대통령, 세 아들은 무슨 재주로 수백억원 모았나?자금출처 의구심으로 가득, 꼬리 드러내는 '비자금 2000억원' 실체

[대통령의 아들] 아버지와 아들의 냄새나는 '돈의 마술'
29만원 가진 전두환 전 대통령, 세 아들은 무슨 재주로 수백억원 모았나?
자금출처 의구심으로 가득, 꼬리 드러내는 '비자금 2000억원' 실체


드디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고 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온갖 재앙과 질병으로 가득찬 ‘상자’를 열어 젖히는 판도라 역에는 대통령의 아들이, 열지 말라고 당부했던 제우스신은 전두환 전대통령쯤 될 것 같다. 전 전대통령이 ‘비자금’을 담아 넘겨주었던 ‘상자’는 10여년간 평화로운 나날을 보냈으나 아들 재용씨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부동산 투자에 나서는 바람에 열리고 말았다. 아차! 하고 급히 닫았으나 이미 대검 중수부(부장 안대희 지검장)는 ‘상자’속을 들여다본 상태. 이제 내용물을 끄집어내는 일만 남았는데, 대통령의 아들은 뒤늦게 구치소에서 가슴을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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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년여간 ‘소문의 벽’에 갇혀 있던 이른바 ‘전두환 비자금’의 꼬리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대검 중수부는 지난 10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씨의 차명계좌에서 발견된 괴자금 167억원 중 73억5,000여만원이 ‘전두환씨 비자금’으로 확인됐다”고 밝히고, 재용씨를 특가법상 조세 포탈 혐의로 구속 수감했다. 검찰은 이튿날 ‘비자금 몸체’라고 할 수 있는 전 전 대통령을 소환 조사키로 했다.

우리 현대사에서 역대 대통령의 비극은 늘 아들과 관련이 있었다. 어떤 대통령의 아들은 ‘소통령(小統領)으로 불렸고, 어떤 아들은 ‘소황제’로 군림했다. 아들이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권력으로 향하는 부나비들의 타깃이 됐고, 정권의 막바지에 몰락하곤 했다.

그나마 주목을 덜 받았던 재용씨마저 이번에 ‘전두환 비자금’으로 추락하자 대통령의 아들이 타고난 운명은 ‘불행’이라는 주홍글씨를 달게 됐다.

재용씨의 괴자금이 단서가 된 ‘전두환 비자금’의 얼개는 1995년 ‘전두환 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수사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검찰은 당시 “전두환씨가 재임 중 9,500억원대의 자금을 거둬 이중 2,000억원에 가까운 비자금을 수백개의 가ㆍ차명 계좌에 분산 예치하거나 무기명채권을 구입하는 방법 등으로 은닉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 전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추징금(2,205억원) 확정판결에 의한 재산명시 재판에서 “내 현금재산은 29만1,000원이 든 예금통장이 전부”라고 반박했다. 재용씨의 차명계좌에서 발견된 돈이 바로 7년전 검찰이 추정한 ‘가차명계좌 은닉물’인 셈인데, 이에 따라 ‘29만원’ 대통령은 세 아들과 함께 수사 대상에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렸다.

△ 출판계의 대통령 전재국

첫번째 타깃은 역시 전 전대통령의 세 아들 중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장남 재국씨다. 출판사업의 규모를 넓히는 그의 ‘자금력’과 관련해 오래 전부터 아버지의 비자금 관련설이 끊임없이 나돌았다. 아버지의 성격을 닮아 당당하고 거침이 없다는 평을 듣는 재국씨는 원래 정치에 뜻을 두었다고 한다. 주변인물들에 따르면 그는 전 전대통령이 12ㆍ12 사건과 관련해 구속을 앞두고 연희동 자택앞에서 발표한 ‘연희동 골목길 성명’을 작성했으며 아버지의 구속이후 가족회의를 주재하고 구치소에서 아버지와 향후 대책을 논의하기도 했다. ?전 대통령의 한 측근은 “전두환 대통령이 12ㆍ12 사건으로 구속됐을 때 5공 부활을 위한 ‘JJ(전두환ㆍ전재국)프로젝트’에 재국씨의 역할이 있었다”고 귀띔했다. 그 다음 총선 때 재국씨가 전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합천에 출마하는 방안은 그래서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재국씨는 미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정책학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귀국한 뒤 달라진 정치 환경을 받아들여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1990년 출판사 ㈜시공사 를 세워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등 베스트셀러를 잇따라 펴내 ‘대통령의 아들’이 아니라 ‘전재국’이란 이름 석자를 알렸고, 97년에는 계열사 시공코믹스를 통해 만화시장에 진출했다. 또 ㈜리브로를 설립해 전국 10여개 온라인 서점을 열었으며 2000년에는 서울에서 네 번째로 큰 을지서적을 비롯해 화정문고 등 대형서점을 차례로 인수했고, 전국 유통망을 가진 동국출판의 대주주가 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인터넷게임 포탈사이트와 펜션사업까지 진출하고 있다.

재국씨가 출판, 서점, 유통 등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데는 엄청난 자금이 소요됐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그에게 그러한 거액이 있을 리 만무했다. 출판업을 시작한 ㈜시공사 适測?본래 전 전 대통령이 88년 ‘대 국민 사과 성명’을 내고 백담사로 쫓겨가면서 국가로 반환하기로 약속한 땅이었다. 그러나 그는 백담사에서 돌아오자마자 시가 50억원에 이르는 그 땅을 장남 재국씨와 차남 재용씨에게 공동증여 했다.

재국씨는 또 ㈜시공사와 인접한 ㈜뫼비우스(부지만 10억원), 서울 평창동에 시공 아트센타(시가 20억원) 등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부인과 맏아들의 공동명의로 돼 있는 서울 서교동의 ㈜아티누스는 땅값만 20억원대에 이른다. 또한 재국씨의 장녀 명의(10분의7 소유)로 돼있는 강남 논현동의 음식점은 30억원대에 이르는 등 재국씨 일가의 재산은 최소 120억원대를 넘어선다고 한다. 대통령 아들만 되면 맨주먹으로도 이런 재산 형성이 가능할까? 아버지의 비자금이 조금씩 흘러나왔다는 의혹을 받을 만한 대목이다.

△ 판도라의 상자 연 전재용

재용씨는 ‘상자’에 든 막대한 자금을 움직이려다 검찰에 포착됐다. 88년 박태준 전 총리의 막내딸 경아씨와 결혼해 화제를 모았던 재용씨는 2년5개월만에 백담사에 있던 아버지가 “내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이혼만은 안 된다”며 극구 반대한 이혼을 강행, 불효를 저질렀다. 재용씨는 그후 결혼과 이혼으로 순탄치 못했던 미국 유학생활을 청산하고 귀국, 92년 현재의 부인 최정애씨와 재혼해 슬하에 2남을 뒀다.

재용씨는 관심을 가졌던 컴퓨터 사업을 위해 미국을 드나들다 2001년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OR 솔루션즈’를 설립하기도 했지만 지난해 10월 자신의 괴자금 수사가 시작되자 전 전 대통령 측근으로 알려진 손모씨에게 기업을 넘기고 손을 털었다. 그의 재산은 밝혀진 것만 전 전 대통령으로부터 물려받은 시공사 건물(재국씨와 공동소유, 2분의1 지분, 시가 25억원)과 부인 최씨와 공동소유하고 서울 용산구의 60평형대 아파트(시가 10억원) 정도. 주목되는 것은 검찰 수사에서 밝혀진 서울 이태원의 호화빌라 세 채(분양가 48억원)로, 재용씨는 공사 중인 빌라에 계약금 등으로 이미 20억원을 납입한 상태다. 또 미국 애틀란타에 빌딩을 매입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 100억원대 빌딩 소유주 전재만

3남인 재만씨는 형(재국-경제학과, 재용-정외과)과 마찬가지로 연대(경영학과)출신으로 그동안 거의 주목을 받지 않았다. 대학 동창인 한 지인은 “지난해부터 벤처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 형(재용) 문제가 터지면서 올스톱한 상태”라고 귀띔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비자금과 관련해 가장 먼저 주목을 끈 아들은 바로 재만씨였다. 1995년 대한제분 회장 이희상씨의 장녀 윤혜씨와 결혼할 때 이 회장 명의의 160억원 규모 채권이 나타난 것이다. 당시 수사 검찰은 “160억원 규모의 채권 경로를 추적한 결과 114억원에 대한 실소유주가 전두환씨임을 확인했다”고 밝혔지만, 법원이 “문제의 국채는 부친으로부터 증여받은 것”이라는 이 회장의 주장을 수용, 53억9,000만원을 과세하는 선에서 끝났다. 자칫 수면위로 떠오를 뻔했던 전 전대통령의 비자금은 그렇게 다시 잠복하고 말았다.

아직도 재만씨 소유의 서울 한남동 소재 시가 100억원대의 상가 건물과 부인 윤혜씨 소유의 서울 종로구 가회동 경남빌라(시가 15억원)는 여전히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과 관련돼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이에 대해 전 전대통령측은 “한남동 건물(8층)은 재만씨 장인이 재산분배 차원에서 상속해 준 것이며 가치도 100억원대가 아니라 20억~30억원대에 불과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 전씨 처가 비자금도 수사선상에

검찰은 아들 재용씨로부터 포착한 괴자금중에서 아버지의 遲?찾아내는데 수사력을 모을 전망이다. 드러난 73억5,000만원이 재용씨의 차명 계좌에 입금된 경위와 1,600억원대로 추정되는 나머지 비자금의 소재에 대한 수사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재용씨가 외할아버지(이규동씨)로부터 문제의 돈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만큼 괴자금과 이씨와의 관련성도 밝힌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 검찰 주변에서는 5공 시절 이순자씨 등 전 전 대통령 처가쪽의 비리가 심했던 만큼 비자금 소재를 찾기 위해서는 ‘이씨 일가’에 대한 수사도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 외할아버지 이규동씨의 거액 재산이 이순자ㆍ창석 남매에게 넘어갔다는 점에서 두 사람이 비자금의 ‘저수지’라는 소문도 있다. 특히 이창석씨의 성강문화재단이 핵심이라는 지적도 있다.

하여튼 95년 수사에서 그 꼬리를 살짝 보였던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은 추징 판결 후 7년여가 지나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검찰이 비자금의 ‘몸체’를 찾아 판도라 상자의 마지막 남은 ‘희망’을 건져올릴 지, 또 대통령의 아들들을 어떻게 처리할 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4-02-17 14:24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