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석 찾아 왔다갔다, 밖을 보니 '어느새 천안'비행기를 탄듯… 최첨단·최고급 시설·서비스

[고속철 시대] KTX시승기 '서울에서 대구까지'
좌석 찾아 왔다갔다, 밖을 보니 '어느새 천안'
비행기를 탄듯… 최첨단·최고급 시설·서비스


기타 메고 완행열차에 몸을 싣고 MT를 갔던 추억, 상경하는 기차안에서 어머니께서 싸 주신 계란을 깨먹던 그 맛, 열차 출발직전 플랫폼에서 가락국수를 먹던 추억들은 이제 기억 저편으로 저물게 됐다. 4월 1일 개통되는 고속철도는 생활 변혁을 불러 일으킬 뿐만 아니다. 기차에 얽힌 모든 추억들도 다시 씌어져야 할 판이다.

깔끔해진 새 서울역사를 들어서자 KTX(Korea Train eXpress) 9999호 서울발 동대구행 열차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기차의 색감도 화려하고 의미도 남다르다. 미래지향성과 진취성, 빠른 스피드, 파워 등을 상징하는 푸른색이다. 1호차부터 20호차까지의 길이도 무려 388m로, 한 번 왕복하면 거의 1Km에 달하는 셈이다. 고속열차의 총 좌석수(일반실, 특실포함)도 935석, 이런 웅장한 규모 때문에 좌석을 찾지 못하고 서울에서 천안ㆍ아산역(26분 소요)까지 간 승객도 있을 정도다.

자동문을 지나 객실에 탑승하니 고급스런 풍취가 한눈에 들어온다. 통로와 앞뒤 좌석의 간격은 생각보다 넓지 않았지만, 마치 항공기를 탑승한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깔끔하다. 고속(高速)주행에 필수적인 경량화와 공기 저항 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인체공학적 설계는 포항공대 연구팀에서 개발했다. 화재 등 사고에 대비한 준비도 철저해 전 차량 객실내부 ,좌석 그리고 커텐은 난연재 및 무독성 소재로 제작됐다. 유리창도 28㎜ 두께의 2중 특수유리로, 각 객실의 모퉁이 좌석 옆 4군데에 배치되어 있는 비상 탈출용 해머도 눈에 띈다. 고속주행 중 혹시나 생길지 모르는 사고를 대비한 배려다.

- 300km 속도에 이명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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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량의 차내에는 좌석 오디오(특실), 인터콤, 냉장고, 오븐, 수화물/짐칸, 공중전화, 팩스, 자동판매기(스넥, 음료)등 편의 시설뿐 아니라, 장애인을 위한 전용 좌석에 화장실과 휠체어 보관대 등도 준비됐다. 깔끔한 내부 인테리어와 승객의 편의를 배려한 화장실(총 18개)은 항공기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단, 식당차는 없다. KTX에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2시간 50분만에 주파하는 고속철도의 특성 때문이다.

대신 승객들은 차내 판매원이 파는 도시락 혹은‘케이터링’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케이터링(catering)’은 식당차가 없는 KTX가 승객을 위해 냉장고, 전기오븐, 간이 조리대 등을 마련해 차내 승무원이 간단한 음식물을 데워서 서비스하는 것을 말한다. KTX에는 ?열차당 4명의‘지상 스튜어디스’들이 탑승해, 각종 음료수·신문 도서 등의 읽을거리·슬리퍼·수면안대·담요·물수건 등의 물품제공과 깨우미서비스·노약자 보조·여행안내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객실 서비스만 본다면 항공기에 탑승한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서울역에서 출발한 열차는 새로 지어진 광명역까지는 별다른 속도감을 내지 않는다. 기존 철로를 이용하기 때문. 그러나 광명역을 지나 고속철도 전용선에 접어들자 KTX는 서서히 속력을 내기 시작하고, 때맞춰 방송이 나온다.“현재 속도는 200km입니다…, 250km입니다…” 몇 분이 되지 않아 나오는 안내 방송 멘트,“현재 속도는 이 열차의 최고 속도인 300km입니다.”말로만 듣던 300km 속도가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순식간에 눈 앞에서 사라지는 풍경들. 이제야 고속철도를 탔다는 느낌이 절로 든다. 열차가 고속으로 달릴 때 공기압이 낮아지는데, 차체의 틈새를 통해 압력이 높은 차안의 공기가 차밖으로 빠져나가 객실내의 공기 압력과 밀도가 떨어져 비행기가 이륙할 때처럼 귀가 멍해진다. 바로 ‘이명현상’이다. 공기압과 밀도의 급격한 변화를 신체가 미처 따라가지 못해 공기압에 민감한 귓속의 고막이 압박을 받기 때문이다.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창문·도어 등의 틈새를 빈틈없이 막아 공기압의 변화를 최소화시켰다고 승무원 김승연(23)씨가 설명했다.

“이번 정차역은 대전역입니다. 곡선형 지붕으로 설계했고 기존의 대전역이 갖고 있는 장소성을 최대한 살려 대전의 관문 이미지를 강조했습니다.”대전역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가운데 서울에서 출발한 지 50분만에 대전역에 도착했다. 최고 속도인 300km로 남쪽으로 내달렸던 KTX는 대전역에서 잠시 몸을 추스린다. 휴식을 마치고 대전역을 출발한 KTX는 다시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 교통문화 바꿀 레일 위의 비행기

고속에 정말 흔들림이 없을까 하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간이탁자 위에 승무원에게 서비스 받은 음료수 잔을 올려 놓은 것은 그 때문이었다. 열차 속도가 다시 300km에 육박한다는 방송이 나오는 와중에도 음료수잔은 약간의 미동만 있을 뿐이다. 고속 주행에도 흔들림 없는 KTX의 비밀은 레일에 숨겨져 있었다. 고속철 전용선로는 기존선과 달리 레일을 용접 연결하여 이음매가 매끈하게 연결되어 덜컹거리지 않는다. 바퀴가 열차의 이음새에 붙어 있는 것도 고속을 내고, 승객들의 쾌적하고 안정된 여행에 도움이 됐다. 이런 최첨단 기술로 고속 주행시에도 열차는 안정적이었고, 터널을 통과할 때만 제외하면 소음도 느끼기 힘들었다.

열차가 김천 부근에 이르자, 바로 옆으로 경부고속도로가 나란히 달린다. 고속도로의 차들도 ‘쌩쌩’달리고 있었지만 고속철의 상대가 되지 못해, 마치 고속도로 위의 차들이 거북이 걸음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땅 위의 비행기’라는 별명이, 고속철도의 진면목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터널 길이가 9,975m로 약 10㎞에 달하는 가장 긴 터널이라는 황학터널(영동-김천 구간의 황학산을 관통)을 통과하는 시간도 순식간. 약 10km에 달하는 터널을 통과하는데 겨우 2분이 걸렸다. 고속철 전용 철로를 놓은 광명에서 신동(동대구 근처)까지는 터널 구간이 무려 48%나 된다. 300km의 속력을 내기 위해서는 직선철로가 필수인데, 유난히 산이 많은 우리 나라 지형상 직선철로를 만들기 위해서는 터널을 뚫을 수 밖에 없었다고.

좌석 여기저기서 고속철도의 진면목을 확인한 사람들이 탄성을 자아낸다. 나이가 지긋한 한 할아버지는“이 속력 그대로 개성까지 갔으면 좋겠다”라며 상념에 잠긴다. 작년 유럽 여행 중 KTX와 형제격인 TGV(떼제베)를 타봤다는 노원 경찰서 민원실장 송영근(51)씨는 “TGV와 비교해봐도 손색 없어. TGV보다 열차 시설도 훨씬 좋고 소음이 없어 더 안락한 것 같아”라며 KTX를 치켜세운다. 서울대 지구환경시스템학부내의 교통학 연구실의 석박사들도 KTX의 속도감에 감탄하기는 마찬가지. 교통학 연구실의 송기한(27)씨는 “고속철은 국내선 항공기보다 접근성이 뛰어나고 요금도 싸다”며 “앞으로 고속철도가 우리나라의 교통문화를 바꿔놓을 것 같다”는 나름대로의 평을 하기도 했다.

- 좁은 좌석간격, 높은 승강장 턱은 ‘티’

그러나 긍정적 평가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고속철도인 ‘신간센(新幹線)’을 타 봤다는 한 대학생은 “KTX는 신간센보다 앞뒤 좌석 간격이 좁은 것 같고, 胎셀?승강장의 턱이 높아 장聆琯湧?타기에는 불편한 것 같다”는 일침을 놓기도 했다. 이렇게 승객들이 KTX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는 동안, 서울을 출발한지 2시간 남짓 해서 어느덧 열차는 종착역인 동대구역에 도착했다.“KTX를 새마을호와 비교하는 분들이 있는데, 대단한 무리수예요. KTX의 속도, 안정성 그리고 서비스는 기존 열차의 수준을 넘어 항공기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기 때문이죠.”KTX 승무원 김성현(23)씨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질 수 밖에 없었다.

홍창기 기자

입력시간 : 2004-03-26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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